남자아이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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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 심리학
  • 2020.01.05 16:57
요약: 말하자면, 남자아이 심리학, 그런 건 좀 멀리하셔도 된다는 말씀..

몇년 전 다른 책을 사다가 끼워넣었던 책을, 오늘 책장 정리를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굳이 다 읽고는 누적되어 있던 언짢음이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이 번역서는 남아의 심리에 대한 내용이었고, 책은 어떻게 남자아이를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남자아이는 언제 남자가 될까? 남자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가족을 사랑할까? 친구들은 어떤 남자를 좋은 남자로 그리고 있는 것 같니? 남자로서 너의 강점들은 뭘까? 
그냥 '사람' 혹은 '좋은 사람, 좋은 어른'으로 바꿔도 될 질문들을 남자라는 이분법에 맞춰 인지적 틀을 주입합니다.

목차는 이렇습니다. 남자아이는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한다. 소녀는 관계를 파괴하고 소년은 건물을 파괴한다. 소년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뜨거운 에너지가 있다. 아들아 넌 나의 영웅이다. 남자아이는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여자아이 혹은 다른 젠더의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요? 세상을 구하고 싶어하고, 건물을 파괴하고 싶고, 도움이 필요한 뜨거운 에너지가 있고, 영웅일 수 있으며,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그럴 것인데요.

이런 식의 접근은 지정성별이 남자로 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편항된 자의식을 만들어 줄 뿐입니다. 조금 더 큰 '좋은 사람'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아이들을 '좋은 남자'의 틀 (실제로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안에 욱여넣습니다. 주양육자에게도, 남아와 여아는 엄연히 다르다는거나 혹은 남자로 태어나 (특히 아버지나 세상으로부터)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들을 애처롭게 생각하게끔 합니다. 

결혼 11년차, 고단한 매일을 보내는 남편과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측은히 여기고 연대하며 버티면서, (그리고 굳이 그렇게 키우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변신 로봇과 공격놀이를 좋아하게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다만 바라는 것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들이 부디 우리 세대부터라도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들에서 확인되었듯 이런 이분법에 도취된 나라의 전체 국민의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는 낮습니다. 이런 성별 구분법이나 성별에 따른 (소위) 심리학적 접근법은 결국 남자에게 더 많은 불필요한 짐을 부과하고, 여자는 사회로부터 이미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가족 생태계에 더 기여해야 한다 여기게끔 암시하면서 결국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그냥, 인간 대 인간. 한 명의 개인.

실제로 태아기때부터 뇌내 연결성은 성별에 따라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몇달 전 발표되었던 한 MRI 연구에 따르면 여성으로 보이는 태아의 뇌는 전반적으로 더 많은 연결성을 광범위하게 가지고, 남성으로 보이는 태아의 경우 운동을 담당하는 소뇌 영역에서만 국소적인 연결성을 가집니다. 뇌의 발달 속도에서도 차이가 나, 남성의 경우 여성의 뇌 발달보다 2, 3년 정도 속도가 늦어 20대 중후반까지 전두엽이 발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단 성별의 차이를 떠나서, 개인 바이 개인으로 이러한 뇌 내 피질의 성장과 연결성은 매우 큰 개인 간 차이를 보입니다. 한 반에서 지내는 아이들 간 발달마저 3년까지도 그 차이를 보입니다. 

남아냐 여아냐 와 같은 접근은 그 원래 목적과 달리 실제 개인의 특이성을 말살합니다. 실제 그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며 남성으로 정체화를 할 지 여성으로 정체화를 할 지, 아이의 불안과 우울수준은 어떤지, 공격성과 산만성은 어떤지, 이런 개별 성향들을 모두 무시한 채, '남아는 원래 공격성이 높고 몸이 먼저 나가고 지배욕이 강하고..', '여아는 옥시토신 분비로 원래 다른 사람들을 더 지지하고 챙겨야 하고..' 따위로 나누는 것은 저마다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아이의 최적의 발달을 오히려 저해할 뿐입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의 교육은 궁극적으로는 각기 다른 개인의 성향에 맞는 접근법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TV에서 심심찮게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은, 과 같은 식으로 어떤 심리적 접근을 해야 하는지 설파하는 사이비들을 봅니다. 그게 꽤나 쉽기도 하거니와 입에 발린 말로 지쳐 있는 양육자들의 지갑을 열기도 괜찮은 모양인데, 응당 사회화되어야 하고 더 세련/세공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매너,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태도를 무시한 채 '업자들의 가짜 심리학'으로 키워낸 아이들이 결국 사회에 어떤 의미로 되돌아 오게될 지 생각할 수록 마음이 몹시 슬퍼집니다. 모든 아이는 적절한 자기주장성과 적절한 공감능력에 대해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상냥한 '(그럭저럭) 좋은 사람'으로 자랄 권리가 있습니다. 그 성별이 무엇이든지간에.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한국인지과학회 총무이사.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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