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기내 소동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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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기내 소동에 미치는 영향
  • 2019.07.09 10:55
비행기와 같은 불평등 상황에 노출된 사람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왜 그들은 폭력적일까? 최근 심리학 연구가 그 연관성을 말해주고 있다.

‘땅콩 회항’으로 유명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기내 난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사건 외에도 기내 난동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한다. 라면 때문에 승무원을 폭행한 상무가 있는가 하면 해외 유명 가수가 술 취한 한국 승객의 난동을 목격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불편한 자리, 갑작스러운 비행 지연 및 취소, 긴 비행 시간 등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 기내 난동의 증가와 연관되어 있다.

소득 불평등과 기내 난동의 연관성

그런데 사회 불평등은 어떨까?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이 기내 난동과 관련이 있을까? DeCells와 Norton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렇다. 이런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행기가 부(富)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비행기하면 여행의 설렘, 하늘을 나는 놀라움,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과 같은 낭만적인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비행기만큼 사회 계층 간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도 없다. 비행기의 좌석은 일등석과 일반석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일등석 승객들은 비행기에 먼저 타고 내릴 수 있으며, 넓은 좌석에서 좋은 음식과 양질의 서비스를 받는다. 착륙 후에도 먼저 수화물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일반석의 승객들은 비행기를 탈 때나 내릴 때 더 많이 기다려야 한다. 좁은 좌석에서 그저 그런 음식과 서비스를 받게 된다. 누구나 일등석을 이용하고 싶겠지만, 문제는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이다.

DeCells와 Norton은 한 항공사의 비행 기록을 조사하여 일등석이 있는 비행기에서 일등석이 없는 비행기에 비해 기내 난동이 약 4배 정도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럴까? 불평등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좁고 불편한 자리에서 고생하며 편안하게 서비스를 즐기는 일등석 승객들을 바라보는 일반석 승객들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아마도 좀 짜증이 날 것이다. 그럼 일등석의 승객들은 어떨까? '나는 좀 특별한 사람'이라는 그 어떤 자부심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이런 짜증과 자부심이 맞물리는 덕에 일등석이 있는 비행기에서는 기내 난동을 부리는 경향이 증가했다는 보고다.

이처럼 불평등을 경험하는 것이 기내 난동을 증가시킨다면, 일반석 승객과 일등석 승객이 서로 마주칠 기회가 많은 비행기에서 기내 난동이 더 많이 일어날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일반석과 일등석 승객들이 격리되어 서로 보기가 어려운 비행기와 탑승 경로 등을 통해 서로를 볼 수 있는 비행기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격리된 비행기에 비해 그렇지 않은 비행기에서 기내 난동이 약 2배 정도 더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기내에서 경험하게 되는 불평등은 정말 기내 난동과 같은 폭력적인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이 불평등을 비행기에서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월간 노동리뷰 2017년 2월호에 홍문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최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전체의 48.5%로 역대 최고 수치이며, 최상위 1%의 소득 비중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소득 양극화는 한국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의 사람들은 나머지 99%의 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소득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입고 있는 옷, 사용하는 전화기, 몰고 다니는 차 등등에서도 사회 계층 간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의 사회 계층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렇게 일상 생활에서 불평등에 노출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 분노 등의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며 기내 난동과 같은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도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불평등과 위험한 의사결정

불평등이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부정적인 반응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을 위험한 의사 결정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런 차이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겠는가? 혹시 그런 차이에 조급함을 느끼고 한 방에 그런 차이를 줄일 수 있다면, 돈을 잃을 위험이 있는 투자 상품이나 로또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최근 연구에서 이런 경향이 확인되었다. 대학생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수익이 눈에 띄게 불평등하게 분배되도록 유도된 집단의 참여자들이 당첨금은 낮지만 당첨 확률이 높은 안정적인 도박 보다는 로또처럼 당첨금은 높지만 당첨 확률이 낮은 위험한 도박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불평등한 지역에 사는 미국인들이 Google에서 ‘복권’이나 ‘담보 대출’ 같은 위험한 옵션에 대한 검색을 ‘저축’이나 ‘대출 상환’과 같은 안정적인 옵션에 대한 검색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이런 경향은 그저 심리학 실험실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떨까?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 연구실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먼저 불평등 조건의 참여자들은 강남 지역의 집값이나 프리미엄 샵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한 질문에 답하였고 통제 조건의 참여자들은 빈부 격차와는 관계가 없는 중립적인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한 질문에 답하였다. 그런 후에 참여자들에게 실험 사례금 5,000원을 걸고 도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구체적으로, 참가자들은 5,000원을 그냥 갖고 가거나 아니면 그 중에 일부 혹은 전부를 걸고 주사위를 던져서 원하는 숫자가 나오면 배팅한 금액의 6배를 갖고 갈 수 있었다. 연구 결과 강남 기사를 통해 빈부 격차를 실감한 불평등 조건의 참여자들이 통제조건의 참여자들보다 더 많이 도박에 참가하였다.

한국 사람들도 불평등에 노출되면 안정적인 수익보다는 위험한 도박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는 비트 코인 광풍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토록 비트 코인에 열광했을까? 소득 양극화가 심해져 안정적인 방법으로는 소득 격차를 해소하기 어려워진 한국 사회의 현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에 큰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공격적 행동의 원인

지금까지 진행된 심리학의 연구들은 불평등에 노출된 사람들이 공격적이고 조급하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밝혀왔다. 그런데 이런 반응들은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까? 아니다. 사실 그 반대로 오히려 불평등을 유지 및 심화시킬 수 있다. 불평등에 노출된 개인이 성급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며 기내 난동과 같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그 사람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다. 또한 불평등을 단숨에 해소하기 위하여 위험한 옵션에 돈을 투자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위험한 옵션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얻은 소수의 사람이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잃게 된다. 결국 여러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대가로 선택 받은 소수가 큰 부자가 되는 구조란 이야기다.

실제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도 주사위를 던져 큰 당첨금을 획득한 참여자가 일부 있었다. 하지만 그 돈은 결국 도박에 참여한 다른 참여자들이 도박에서 잃은 돈이었다. 즉,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을 유지하거나 심화시킬 수 있는 심리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저렇게 공격적이고 불만에 가득 차 있으니’ 혹은 ‘도박을 하거나 복권이나 사려고 하니까 그런 처지가 되었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차이, 즉 불평등이 존재할 때 사람들은 자극을 받고 더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불평등의 원인이고 무엇이 불평등의 결과인지 조금 더 함께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mind.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 Ph.D.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 및 사회 계층 차이와 사회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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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 2019-11-03 13:18:05
실제로 기내난동과 불평등 간의 관계를 본 연구가 있다니 정말 재밌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