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이 말하는 정체성의 세 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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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탁석산이 말하는 정체성의 세 가지 특징
  • 2020.01.18 10:00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말할수 있을까.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자기라고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답이 뒤따른다. '나는 의미있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사람'. 

이렇듯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분명 정체성을 향해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모든 답변이 곧 정체성은 아니다. 정체성이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판단이다. 

주관적인 판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정체와 얼마나 유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글을 통해 다루었다 (정해진 나 vs. 결정하는 나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01). 이번 글의 핵심 주제는 자신에 대한 판단 중 어떤 특징이 있는 판단을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심리학자의 입장 역시 존재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철학자의 입장을 살펴 이 논의를 다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페이퍼맨 작가 이주연의 작품. ‘Who Are You 1’ 45.7x35.6cm, Acrylic on canvas, 2012. ©이주연
멀리서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너무나 다른 우리. 페이퍼맨 작가 이주연의 작품. 그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종이 인간의 캐릭터로 만들어서 다양한 스토리를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그것을 가지고 소통하고자 한다. ‘Who Are You 1’ 45.7x35.6cm, Acrylic on canvas, 2012. ©이주연

철학자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이때 탁석산은 한 집단의 정체에 대한 여러 판단들이 정체성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특징은 개인의 정체성에도 적용된다.

첫번째 특징은 현재성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다뤄져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룬다 할 지라도 그것이 현재의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왕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왕정이 없어진 지 이제 겨우 100년이 조금 넘었기에 한국인들은 조선시대 왕을 대하는 느낌으로 오늘날 대통령을 대한다는 가설을 가지고 현재 한국인의 특성을 확인한다면 이 과거 역시 정체성 논의에 포함될 수 있다.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현재성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판단 그 자체는 정체성이 아니다. 현재 자신에 대한 판단이 정체성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있었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오늘날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정체성이 갖는 두 번째 특징은 주체성이다.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렸는지는 그 판단이 주체성으로 포함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주체성은 (단순히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태도나 마음으로 특정 행동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갑돌이와 갑순이를 비교해보자.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수업을 듣고 예습, 복습도 철저히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둘의 행동은 거의 유사하다. 그럼에도 왜, 어떤 마음으로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서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갑돌이가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그의 의사 부모님이 병원을 물려주고자 어려서부터 갑돌이에게 의사의 길을 강요했기 때문이고, 반면 갑순이는 생명을 구하는 의학의 힘에 매료되어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어 의사의 길을 걷기로 스스로 결정했다면, 이 경우 갑돌이보다는 갑순이가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더 잘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탁석산이 제시한 정체성의 세 번째 요소는 대중성이다. 즉, 우리가 한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려할 때 해당 특성이나 평가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에게 중요한지를 고려하게 된다. 판소리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가졌든 얼마나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든 오늘날 한국인의 삶 속에서 많이 향유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심수봉이나 BTS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것들이 한국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다만 이 마지막 특징의 경우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논할 때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대중적인지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대중성이라는 개념은 개인에게 적용될 때는 '중심성'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 같다. 중심성이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인지이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인 특성은 정체성이 될 수 없다. 어떤 특성이 누군가의 중심을 이룰 때 정체성이 된다.

잠깐 시간을 내어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더 중요하게는 당신 자신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변을 위의 세 가지 기준에 비추어 평가해 보자.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남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이 세 가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mind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박선웅 교수는 사회 및 성격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르시시즘 연구로 노스이스턴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한국인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개인적 정체성, 그리고 이 둘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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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2020-02-01 11:34:25
막연히 나는 무엇일까 고민만했었는데 많은 도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