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진로선택, 최대한 미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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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진로선택, 최대한 미루세요.
  • 2020.01.31 10:00
경험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식이나 경험치도 없고 탐색할 시간도 없어요. 헷갈리는 진로선택,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분야는 있지만 그와 관련된 과목을 잘하지 못할 때, 혹은 자신 있는 분야가 따로 명확하게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는 고등학교에 재직하며 자주 보았던 고민 중 하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학창시절,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름으로 인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경험이 있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워 보이는 분야는 '현실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자리가 별로 없거나, 어떻게 해서든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분야도 있지요.

우리 시조카의 경우가그렇습니다. 내년에 고3이 되는 조카는 뮤지컬 배우라는 꿈이 있는데, 이를 둘러싼 엄마와의 갈등이 상당합니다. 그 갈등의 핵심은 '대학에 꼭 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 있습니다. 조카는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고, 고등학교 시절을 자신의 꿈과 관련이 없는 공부를 하며 허비하고 싶지 않아 합니다. 연기학원에 등록해 뮤지컬 배우라는 꿈에 매진하고 싶고, 만약 대학에 가더라도 지금 당장 연기에만 집중해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수능점수나 내신점수를 보지 않는, 예를 들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은) 곳에 진학하고 싶어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학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 생각하고 있고요.

반면, 조카의 엄마는 줄곧 뮤지컬 배우가 되기 전 아무 학과라도 좋으니'대학진학'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대학 졸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날은 조카의 진로문제에 대한 모녀의 대화에 어쩌다 제가 끼여들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저에게 시누 언니가 갑자기 화살(?)을 돌린 것입니다. 

"아후, 얘가 너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글을 보고 더 이렇잖아~네 생각에는 얘가 대학에 가는 게 좋겠니 안 가는 게 좋겠니?"

실제로 작년 출간 한책에 저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택하라'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 심리학과의 엔젤라 덕워스Angela Duckworth 교수가 쓴 『그릿GRIT』이라는 책을 인용하였는데요. 그릿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고난도 견디는) 근성, 용기, 집념, 투지'라는 뜻을 지닙니다. 덕워스 교수는 그릿의 구성요소를 열정과 끈기라고 보고 있는데, 한마디로 오랜 시간 장기목표를 위해 열정적이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을 그릿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그는 10여 년동안의 연구결과로 ‘성취=재능*노력2’라는 이론을 정립하였습니다. 이 방정식을 보면 노력은 재능의 배로 중요하다는 점을 쉽게 볼 수 있지요.덕워스 교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변함 없고 끈기 있게 기울이는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이에 저는 좋아하지 않는 일에는 끈기 있는 노력을 기울이기 어렵다는 점을 들며 아직 많은 가능성을 품은 나이에는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덕워스 교수 또한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불안한 부모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내가 말하는 그릿의 의미를 오해한다는 인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내가 그릿의 절반은 끈기라고 이야기하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한다.”(p.149)

아무튼 그래서 저는 시누 언니의 질문에 어떻게 답했을까요? 일단 공부도 열심히 하고 대학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했습니다. 그리고 꼭 연극영화과가 아니더라도 조카의 성향 상, 사회에 나와서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는 학과도 좋을 것 같다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라며 이게 왠 말일까요? 조카는 믿었던 저까지 편을 들어주지 않자 다소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미안^^).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 이라면, 저는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조카의 꿈을 응원하지 않는 바도아닙니다. 일단 대학에 가라는 이야기는, 미래에 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최대한 넓혀놓으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지난 달, 한 고등학교에서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연 전에는 학생들이 저에게 가졌던 질문들을 미리 받아볼 수 있었는데,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고등)학생 때는 좋아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지식이나 경험치도 없고 탐색할 시간도 없어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는 조카와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고등학생 때에는 최대한 선택지를 넓혀 놓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며 질문자의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고말했습니다. 물론 선택지를 넓히는 방법이 학생 개개인에게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좋은 성적을 받아 두는 것이겠지요.

Thomas Couture, 1815–1879. ‘Soap Bubbles’, 1859, oil on canvas, 130,8 x 98.1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공부하다 잠시 한눈을 파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정이라면 잠시 미루는것이 필요하듯이. Thomas Couture, 1815–1879. ‘Soap Bubbles’, 1859, oil on canvas, 130,8 x 98.1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우리 조카의 경우와 같이 꿈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경우에도 같은 지향점을 두고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면 저는 미래에 가장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창 꿈 많았던 시절에는 저도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뚜렸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고 나니 사람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연구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나이를 먹으며 달라진다고 하지요. 젊은 시절에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흥분의 느낌으로 경험되던 행복이 나이를 먹으며 점차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로움의 느낌으로 경험된다고 합니다Aacker et al., 2011. 지금 내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미래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지요.

마인드에 기재하였던 제 첫 글의 제목이'좋아하는 일을 찾는 법'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관심 가는 대로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경험만이 가장 확실한 이정표, 혹은 기준이 될 것이라고요.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거나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때에는, 선택을 최대한 미룰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혀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배우가 꿈인 조카에게 무조건 공부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꼰대같이 굴기는 더더욱 싫습니다만, 저도 나이 먹은 티가 나나봅니다. 일단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는 게 좋겠다고했습니다.mind
 

   <참고문헌>

  • 앤젤라 더크워스 저 김미경 역(2016) 《그릿(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인 끈기의 힘, Grit)》. 비즈니스북스.
  • Aacker, J., & Rudd, M., Mogilner, C. (2011). If money doesn't make you happy, consider time.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1(2), p.126-130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사회 및 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지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의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저서로는 '민사고 행복 수업(2019)',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심리학 교과서(2020)'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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