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 게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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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게임을 만나다
  • 2020.01.25 10:00
노인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까? 회상과 관련한 최신연구와 인생 회고와 연관된 게임을 소개한다.

회상 기법, 삶의 의미 깨닫기

넷플릭스 SF 단편 시리즈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인 "샌 주니페로San Junipero"에서는 타임머신과 비슷한 기술을 선보인다. 휘트니 휴스턴과 자넷 잭슨이 히트를 했던 1980년대, 펌프가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 등 연도별로 각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가상공간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선택하여 들어가 마음껏 즐기면서 사는 것이다. 물론 기술이 발달하면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모든 감각을 가상공간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거라는 SF적 상상이 더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 시스템의 목적은 향수 체험 치료에요. 추억 속의 세상에 보내서 알츠하이머병을 고친다고 하잖아요.” (넷플릭스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 “샌 주니페로”의 대사)출처: imdb.com
“이 시스템의 목적은 향수 체험 치료에요. 추억 속의 세상에 보내서 알츠하이머병을 고친다고 하잖아요.”- "샌 주니페로"의 극중 대사 (사진 출처: imdb.com)

인생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을 회상Reminiscence이라고 한다. 회상 기법Reminiscence Therapy은 특히 노인이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게 하는 것인데, 회상 기법은 정서 기능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해 주고, 구체적인 사건 기억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상의 하나인 인생 회고Life review는 출생, 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 등 흐름에 따라 자신의 인생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려 보고 그 의미를 성찰하는 것으로, 마치 한 권의 자서전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인생 회고는 에릭슨Erikson의 발달 단계에서 노년기 과업인 “자아통합Ego-integrity”을 성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아통합은 자신의 과거를 수용하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여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나와 화해하고, 과거의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기여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인생 회고를 하는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기뻤던 일,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들을 회상하며 그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값진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게임으로 과거를 되돌아보다

회상 기법에는 치매 환자들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림, 사진, 음악, 비디오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가 활용되었는데, 최근에는 태블릿 PC를 이용한 앱이나 VR기기 등을 활용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다른 사람과 함께 놀면서 자연스럽게 회상을 해 볼 수 있도록 “게임”을 회상에 적용해 본 연구들이 있다. 아직 획기적으로 시선을 끌 만한 것은 없지만, 여러 나라에서 속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캐나다의 아넥도트Anecdote라는 보드게임은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곳으로 이동해서 거기에 쓰인 주제에 맞는 본인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에게는 만져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보거나 할 수 있는 물체가 주어져 회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대만의 메모어 모노폴리Memoir Monopoly라는 게임은 이러한 보드게임을 태블릿 PC에서 할 수 있도록 구현한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의미가 있는 개인적인 물품을 직접 촬영하여 게임에 담아 과거의 사진, 음악 등을 감상하고 퀴즈도 풀 수 있다.

미국에서 만든 메모리 매터스Memory Matters라는 게임도 미국의 1930년대~1960년대 사건, 대중문화 등을 퀴즈 형식의 태블릿 PC 게임으로 만들어 노인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며 옛날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대만 연구자들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통해 옛날 사진, 음악, 감동적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노인들이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왼쪽부터 아넥도트(Anecdote), 메모어 모노폴리(Memoir Monopoly), VR 회상 체험
왼쪽부터 아넥도트(Anecdote), 메모어 모노폴리(Memoir Monopoly), VR 회상 체험 프로그램

회상에 상상을 더하다

연구자들이 전통적인 회상 기법에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적용하고자 했다면, 게임 개발자들은 좀 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인생을 회고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고 있다. 먼저, 올드 맨즈 저니Old Man's Journey라는 게임은 노인이 편지 한 통을 받은 후 여행길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아름다운 배경 화면의 퍼즐을 풀면서 노인의 여행길을 터 주고, 중간중간 제공되는 노인의 회상 씬을 감상하게 된다.

올드 맨즈 저니(Old Man's Journey) 게임 장면
올드 맨즈 저니(Old Man's Journey) 게임 장면Steam, Android, iOS 등 출시

라이프 이즈 어 게임Life is a game은 작은 선택들이 어떻게 인생을 변화시키는지, 조금은 코믹한 톤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처럼, 주인공 캐릭터는 아기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달리고 그 가운데 순간적으로 내리는 선택에 따라 엔딩이 달라진다. 

라이프 이즈 어 게임(Life is a game) 게임 장면
라이프 이즈 어 게임(Life is a game) 게임 장면Android, iOS 출시

롱 저니 오브 라이프Long Journey of Life라는 게임은 작은 돛단배가 태어나서 아동기와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일생을 은유하는 스토리이다. 오른쪽으로 가기, 왼쪽으로 가기 두 가지 버튼밖에 없어 게임이라기보다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오히려 쉬워서 어린이나 노인 누구나 플레이해 볼 수 있다. 흑백의 화면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운드로 돛단배의 여정에 자신의 인생을 대입해 보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롱 저니 오브 라이프(Long Journey of Life) 게임 장면
롱 저니 오브 라이프(Long Journey of Life) 게임 장면. iOS 출시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게임

게임은 흔히 젊은이들의 문화로 여겨지지만, ‘회상’이라는 주제와 결합한다면 노인들을 대상으로도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큰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만든 게임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고, 상업적으로 출시된 게임들은 UX나 게임 난이도가 젊은 세대에게 맞춰져 있어 노년층이 즐기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장기적으로 게임 개발자들이 노년층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 게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단기적인 해결 방안도 있다. 바로 젊은 세대가 노년층에게 게임을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두 세대가 함께 인생을 회고하는 게임을 한다면, 노인은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지혜를 전하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고, 젊은 세대는 생활 역사를 배우는 것은 물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는 회상과 인생 회고를 하면 노인에게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듣는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질문하고, 들어주는 과정 자체에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 정서적인 교류가 회상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듣는 사람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회상 치료를 통해 간병인이나 가족들은 치매 환자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가 이전에 얼마나 강했었는지 되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함께 플레이하며 환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을 꺼내주는 게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성숙해질 수 있는 그런 게임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mind

<참고문헌>

  • Anecdote - The Reminiscing Game for Seniors. Retrieved from https://www.cdsboutique.com/en/anecdote-the-reminiscing-game-for-seniors.html
  • De Mul, J. (2015). The game of life: Narrative and ludic identity formation in computer games. In Representations of Internarrative Identity (pp. 159-187). Palgrave Macmillan, London.
  • Haber, D. (2006). Life review: Implementation, theory, research, and therapy.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Aging and Human Development, 63(2), 153-171.
  • Ingersoll-Dayton, B., Kropf, N., Campbell, R., & Parker, M. (2019). A systematic review of dyadic approaches to reminiscence and life review among older adults. Aging & mental health, 23(9), 1074-1085.
  • Memoir Monopoly: Improving Rehabilitation Activities for Elderly People with Dementia. User Experience Magazine. Retrieved from http://uxpamagazine.org/memoir-monopoly/
  • Tsao, Y. C., Shu, C. C., & Lan, T. S. (2019). Development of a reminiscence therapy system for the elderly using the integration of virtual reality and augmented reality. Sustainability, 11(17), 4792.
  • Yu, F., Mathiason, M. A., Johnson, K., Gaugler, J. E., & Klassen, D. (2019). Memory matters in dementia: Efficacy of a mobile reminiscing therapy app. Alzheimer's & Dementia: Translational Research & Clinical Interventions, 5, 644-651.
이세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중노년 웰빙및게임 연구
어떻게 하면 IT기술이 시니어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지, 어떻게 서로 다른 세대를 연결시켜 줄 수 있을 지 관심이 많다.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Games and Life Lab에서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기반으로 노년층과 게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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