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하는 고생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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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하는 고생의 재미
  • 2020.01.30 06:00
우리는 종종 최선의 선택과 다소 먼 행동을 하며 산다. 어느 때는 남들 하는 것은 나도 해보겠다고 나서서 부대끼고 치대면서 사서 고생이다. 뭐 하러 그러나 싶지만, 그 재미를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연말연시 가족과 함께 한 대만여행

지난 연말연시에는 여행을 떠났다.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좀 그래 보기로 했다. 가족들과 한 해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며, 여행지에서 지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몇 달 전 항공권을 예매할 때만 해도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 그렸는데, 정작 떠날 땐 연말에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고단했기 때문에 별 준비도 못한 채로 여행 짐조차 새벽에 쓸어 담듯 해서 겨우 출발했다.

여행지는 대만이었다. 가서는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매일 비가 왔고, 음식은 입에 안 맞았다. 어딜 가나 걷다 보면 스멀스멀 밀려오는 취두부 냄새에 며칠이 지나도 적응이 안 돼서, 결국 우리 전통 발효 음식 앞에서 코를 막는 외국인들을 무식하고 무례하다고 욕했던 것을 반성했다.

연말연시에 내 집 두고 왜 남의 나라에서 비싼 값을 치르며 이 고생을 하나 어이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라는 지우펀九份은 그래도 가고 싶었다. 만화 속을 걷는 듯한 환상적인 경험을 하고 싶은 동심이 과로로 메마른 내 심신에 그나마 남아 있는 촉촉한 부분이었다.

지우펀은 사람이 많고 복잡해서 '지옥펀'이라고 불린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찍이 당신의 둘째 딸을 두고 '똥인지 된장인지 지가 먹어봐야 아는 아이'라고 하셨다. 그 아이가 커서 이제는 그럴 때마다 함께 해주는 외동딸과 남편이 생겼으니 그나마 참 다행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2001년)의 모티브가 된 지우펀의 밤풍경.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2001년)의 모티브가 된 지우펀의 밤풍경.

비 내리는 지옥펀

지우펀에서도 물론 비가 왔다. 비가 오니 우리가 겪은 혼잡함과 불편함은 객관적으로도 소문보다 훨씬 더했던 것 같다. 만화영화에서처럼 홍등이 걸려 있는 좁은 오르막길을 왜 오르는지,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떠밀려 가고 또 가야 했다. 길은 다만 세 사람 정도가 나란히 서서 갈 수 있는 폭이었고, 그나마도 올라가는 행렬과 내려오는 행렬이 좌우편을 갈라 써야 했다. 길의 양쪽 옆에는 상점들이 빽빽해서, 겨우 전진하다가도 앞 사람이 어떤 상점에서 멈춘다면 속수무책으로 같이 서 있거나 정렬을 바꾸어 비껴가야 했다.

비는 조금씩 내리다 많이 내리다 했는데, 타이베이의 여느 길처럼 상점과 상점 사이는 비나 해를 막아주는 가림막이 있다가 없다가 했다. 그래서 우산을 쓴 사람들은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우산을 한 쪽으로 치워 조신하게 물기를 털고 추스를 만한 공간도 없었으니, 서로의 옷이 젖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비를 입은 사람들은 그나마 좀 편해 보이길래 사 입어 보니, 이번엔 다른 사람들의 우산에 찔려 구멍이 생기는 걸 피할 도리가 없었다.

여길 대체 왜 올라가야 하나, 산이라면 정상에서 “야호”라도 할 텐데. 지우펀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지역이라는 것 외엔 달리 아는 것도 없었던 우리는 사람들을 따라 올라가다가, 이제 안되겠으니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보자 하고 만두집에 들어갔다. 잠시 쉬다가, 좀더 올라가면 치히로가 센이 되어 일했던 온천장의 모델인 티하우스가 있다니까 거길 가보자 하고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지우펀 그 좁은 골목길에 그곳을 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반을 차지하여 끝이 안 보이는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떠밀리듯 어렵게 그 티하우스 앞에 겨우 도착한 우리는, 결국 거긴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대각선 방향에서 사진 한 장 찍은 다음 돌아나왔다.

남들처럼 보낸 연말

내려오는 길엔 오징어 튀김을 파는 청년들이 오징어 튀김을 작게 잘라서 종이컵에 들고 다니며 “마시써효! 존맛탱!”이라고 하길래 그걸 사먹었고, 쇼핑백에 한국말이 써있는 누가 크래커를 세 상자 샀고, 딸에게 가오나시 인형과 버블티 모양의 열쇠고리를 사줬다. 셋이 깔맞춤으로 사 입은 노란색 비옷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고, 비옷을 입으나마나 여기저기 축축했고, 피곤해서 넋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우리는 지우펀 입구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각자 취향대로 사 가지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연말에 지우펀에 간다는 것은, 딱히 정해진 클라이맥스 없이 오로지 그곳에서 그 고생을 하려고 가는 것이라는 것. 12월 30일 밤이었다. 다음 날인 12월 31일엔 타이베이로 가서 101층 빌딩인 세계금융센터의 불꽃놀이를 봤다.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 틈에서 2020년 1월 1일이 되기까지 카운트다운을 외쳤고, 불꽃을 보며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에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 집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곤약 젤리를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행동 선택의 복잡한 이유

사람은 복잡한 존재다. 어떤 행동도 그 이유가 단순하지 않다. 내 선택이 최선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결정을 하는데, 그 ‘최선’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늘 분명치가 않다. 졸린 오후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마시는 것보다 건강에는 덜 해롭겠지만, 달콤하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기분이 반짝 좋아져서 오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 아니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는 때때로 최선이 아님이 분명한 것을 굳이 선택하기도 한다. 사람이 여러 가지 옵션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 위기 상황이나 뭔가가 필요한 때에 어떤 이유를 바탕으로 행동을 결정하는지 등을 연구하는 의사결정 연구는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에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연구 분야이므로,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달려 들어 최신 연구 기법을 활용한 학제간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제껏 수많은 연구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최대화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우리의 뇌 특정 영역에서 의사결정 시 보상의 기대치를 계산하고 매번 추적한다는 것도, 이제는 가설 수준을 넘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최고의 보상만을 얻기 위해 의사결정 하지는 않으며, 우리의 뇌에서는 보상의 가치를 처리하는 영역과 목표의 가치를 계산하는 영역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Frömer et al., 2019.

이 발견은 작년 말에 Nature Communication이라는 과학저널에 발표되었는데, 연구의 실험 디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연구참여자들에게 보상이 가장 적은 옵션을 고르는 것을 목표로 의사결정 과제를 하도록 해서, 행동의 목표를 보상을 최대화하는 것과 불일치하게 한 것이다. 이 연구의 연구자들이 논문에 자신있게 밝혔듯이, 우리의 뇌는 의사결정 시 보상의 최대화와는 별도로 자신의 특정 목표를 따라 행동하게끔 세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 발견을 통해 그간 이루어진 수많은 인간 의사결정 연구의 가설과 실험 결과들이 시종일관 가리켰던, 인간이 '보상 최대화'만을 가치로 여기고 행동을 선택한다는 확고한 가정을 이제는 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서 고생하며 남들 하는 거 하고 사는 재미

지우펀에서 비를 맞으며 모르는 사람들에 이리저리 밀려다닐 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좀 이상한 감동을 받았다. 다들 사서 고생을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떠밀린다고 화를 내거나 남의 우산에 찔렸다고 인상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는, 어차피 1월 1일은 12월 31일의 다음 날일 뿐인데 새삼스럽게 송구영신하는 건 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게다가 그 복잡한 시기에 여행을 가는 데에 쓸 시간과 돈이 있다면, 어차피 그걸 어딘가에 투자하여 수익을 내거나 근사한 성과물을 내는 데에 쓸 게 아니라 휴가에 쓸 것이 정해져 있다면, 따뜻하고 기분 좋게 배부르고 편안하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의 의사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보상을 최대화하는 것과 별 관련 없는 행동을 하며 산다. 뭐 하러 그러나 싶지만, 그 재미를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전에 동네 한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는 재미가 별 거 없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 찾아 먹고, 인기 있는 드라마 있으면 그거 할 때 같이 보고, 그러는 게 재미지.” 

허우 샤오시엔 영화에 초등학생이 나온다면

지우펀에서의 고행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 어느 때는 본격 사춘기인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때는 영락없이 어린이인 로우틴 딸에게 어땠냐고 물었다. 힘들었단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아?” 했더니, 근데 그건 아니란다. 당장은 아니지만 중학교 가면 한번 더 가고 싶단다. “아 그래? 뭐가 좋았는데? 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 아빠랑 우리 셋이 우비 입고 비 맞고 다닌 거.” 이번엔 "아 그래? 그건 집에 가서 비 오는 날 또 해도 되잖아. 그런데 지우펀에 또 가고 싶어?” 하고 물었다. 딸의 대답은 이랬다. “근데 그러면 다닥다닥 붙어서 다닐 수는 없잖아. 나는 우리가 같이 우비 입고 앞사람이랑 뒷사람이랑 막 붙어서 다닌 게 재미있었어.”

집요한 엄마지만 늘 어떤 답을 기대하며 질문을 하지는 않는데, 딸은 언제나 정답을 말한다. 이번 우리의 대만 여행은 노란색 우비를 입은 해맑은 초등학생이 나오는 허우 샤오시엔 영화 같은 느낌으로 남을 것 같다. mind

<참고문헌>

  • Frömer, R., Wolf, C. K. D., & Shenhav, A. (2019). Goal congruency dominates reward value in according for behavioral and neural correlates of value-based decision-making. Nature Communications, 10, 4926.
박혜연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임상심리 Ph.D.
대학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공직자 및 일반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정신건강 문제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이다. 경기도 소방심리지원단 부단장, 보건복지부 전문 카운셀러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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