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도우면 내 고통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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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도우면 내 고통도 잊게 된다
  • 2020.02.04 10:00
내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팍팍한 요즘, 과연 남을 돕는 것의 효용이 있을까?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그 결론은 "있다"로 내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꽤나 대가가 따르는 행위이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다 보면 정작 내 것은 챙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이 개인에게 여러 방면으로 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쓴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해졌으며Dunn et al., 2008,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혈압이 낮아지는 등 건강이 좋아지는 경향을 보였다Whillans et al., 2016. 이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던 사람일수록 5년 후에도 살아있을 확률이 높았다Brown et al., 2003.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나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Jacques-Louis David  (1748–1825), Belisarius Begging for Alms, 1781, oil on canvas, 312 * 288 cm, Palais des Beaux-Arts de Lille.
Jacques-Louis David (1748–1825), Belisarius Begging for Alms, 1781, oil on canvas, 312 * 288 cm, Palais des Beaux-Arts de Lille.

이타적 행동의 고통 감소 효과

최근 권위있는 학술지 PNAS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Wang et al., 2020 연구자들은 이타적 행동의 또 다른 효용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구자들은 이타적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덜 느끼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먼저 일반적인 신체 검사를 위해 피를 뽑는 사람들과 지진 피해자를 위해 의료 목적으로 사용될 피를 뽑는 사람들이 채혈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 정도를 비교하였다. 참가자들은 주사 바늘에 찔릴 때 경험하는 고통의 강도를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타인을 위해 헌혈을 한 사람들은 더 많은 양의 피를 뽑았음에도(200-400ml vs. 3-5ml) 자신을 위해 혈액 검사를 한 사람들에 비해서 고통을 적게 느꼈다고 응답했다. 이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할 때 고통이 더 경감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를 뽑는다는 똑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행위의 목적에 따라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성적인 통증에도 효과가

그렇다면 이타적 행동이 찰나의 고통만을 잊게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만성적으로 느끼는 고통도 경감시켜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만성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암 환자들이 실험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이타적 조건이나 통제 조건에 무선 할당되었고, 7일 간 개인 및 단체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타적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은 병실 동료들을 위해 공용 공간을 청소하였고, 동료들을 위해 영양 식단을 준비하였다. 반면에 통제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은 개인 공간을 청소하였고, 간호사가 진행하는 건강 식단에 관한 워크숍에 참여하였다. 각각의 활동 후에 참가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신체적 고통의 수준을 보고하였다. 흥미롭게도 병실 동료를 위해 청소하고 식단을 만들어준 암환자들이 자신을 위해 청소하고 식단 워크숍에 참여한 암환자들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덜 느낀다고 보고하였다. 이타적 행동이 신체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잠깐의 고통을 넘어 만성적인 고통에까지 적용된다는 증거다.

이타적인 행동으로 인한 고통 감소의 뇌신경학적 증거

이어지는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실험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통해 이타적 행동이 고통을 실제로 경감시키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신경 기제를 통한 것인지 알아보았다. 참가자들은 fMRI 장치 안에 들어가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 과제를 각각 72차례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첫 번째 과제에서 참가자들은 두 가지 종류의 결정을 해야했다. 이타적 조건에서는 금전적 기부를 통해서 고아를 도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었고, 통제 조건에서는 두 가지 선분이 같은지 다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과제에서는 손등에 전기 충격을 받고 나서 고통을 얼마나 느꼈는지 보고하였다. 전기 충격을 받는 두 번째 과제는 항상 첫 번째 과제 이후에 제시되었는데, 이는 참가자들이 이타적 결정과 선분 길이 결정을 내린 직후 고통의 강도를 각각 어느 정도로 느끼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역시나 참가자들은 이타적 결정을 내린 후에 경험한 전기 충격이, 이타적 결정과는 상관 없는 다른 결정을 내린 이후에 경험한 전기 충격보다 덜 고통스럽다고 응답하였다. 더 나아가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이타적 결정을 할 때와 일반적 결정을 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영역을 비교하였다. 이타적 결정을 하는 동안에는 신체적 고통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배측전대상피질dACC;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과 양측섬피질bilateral insular cortex의 활성화 정도가 일반적 결정을 하는 동안보다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이타적 결정을 하는 동안 보상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 ventral medial prefrontal cortex은 더욱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fMRI 결과를 종합해보면 이타적 결정을 내리는 것에서 참가자들은 보상 혹은 의미를 경험하였고(VMPFC 활성화 증가), 이것이 신체적 고통을 덜 느끼는 데(우측 섬엽 활성화 감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남을 위해주고 나서 스스로 받는 보상

필자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나서 그 호의가 되돌아오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도울 때 항상 보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을 받은 후에 입을 싹 씻어버리는 이들을 보면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연구를 보면 실망하기는 이른 것 같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직접적인 보답은 받지 못하더라도 타인을 돕는 행위를 하는 순간 신체적 고통이 완화되는 효과는 얻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몸이 시름시름 아파올 때, 집에 틀어박혀 약에 의존하기 보다는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mind

<참고문헌>

  • Brown, S. L., Nesse, R. M., Vinokur, A. D., & Smith, D. M. (2003). Providing social support may be more beneficial than receiving it: Results from a prospective study of mortality. Psychological science14(4), 320-327.
  • Dunn, E. W., Aknin, L. B., & Norton, M. I. (2008). Spending money on others promotes happiness. Science319(5870), 1687-1688.
  • Wang, Y., Ge, J., Zhang, H., Wang, H., & Xie, X. (2020). Altruistic behaviors relieve physical pai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117(2), 950-958.
  • Whillans, A. V., Dunn, E. W., Sandstrom, G. M., Dickerson, S. S., & Madden, K. M. (2016). Is spending money on others good for your heart?. Health Psychology35(6), 574-583.
최혜원 University of Virginia 사회심리학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 및 사회생태학적 변인과 행복의 관계, 대인 판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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