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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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 2020.02.10 14:00
늘 괜찮으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본연의 감정을 느껴도 됩니다. 이대로 영원할 것 같은 감정도 어느 순간에는 사라집니다. 그냥.. 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얼마 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마음 건강 강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스트레스와 마음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중년의 남성이 불쑥 질문을 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이라 미안합니다. 제가 요즘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자꾸 욱해서 소리 지르고, 어떨 때는 울컥해서 차도로 뛰어들고 싶고..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야기 흐름을 끊는 갑작스러운 질문과 내용에 청중들도 순간 침묵하며 분위기가 엄숙해집니다. 가벼이 답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내용이라 강의가 끝난 후에 따로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하고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중년의 신사는 다시 내게 다가왔습니다. 

저 성격 급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대답해주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갑자기 한 번씩 도로에 확 뛰어들고 싶고, 죽고 싶단 말입니다. 잘 지내다가 암이 재발되서 치료를 받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냥 한마디로 답해주세요

답변을 종용하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다급했고, 매섭게 몰아붙이는 말들은 공격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아니 사실은 절실해 보였습니다.

몇 번의 대화 끝에 그는,

.. 내가 지금 힘들어서 그런 거란 말입니까?..

힘든거다.. 내가 힘든거다...”

한동안 혼자 되뇌던 중년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안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내가 지금 힘들다는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평생 이런 적이 없는데 내가 왜 이러지 싶더란 말입니다.

그렇게 그는 좀 더 머물러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의 저울질

상담을 하다 보면 몇몇 공통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그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감정의 무게를 나의 이상적인 잣대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 같고, '이정도 갖고' 힘들어하는 자신이 약한 것 같아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이 못마땅하고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우울하지 않아야 하는데', '불안하면 안 되는데'라며 부정적인 감정을 쫓아내려 애씁니다.

사실 이것은 비단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치려 할 때 더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문제이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역기능적인 대처들이 역설적으로 나를 더 어려움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도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속에서 가라앉지 않으려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감정에 대한 감정으로 더 힘들어

우리는 간혹 지금의 정서적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에서 시작된 감정이 부풀려지고, 때로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1차적 감정과 2차적 감정이라고 합니다. 1차적 감정은 어떠한 사건을 마주하는 순간 빠르게 경험하는 반면, 2차적 감정은 1차적 감정에 대한 반응, 즉 감정에 대한 감정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괴롭고 힘들어하는 내가 못난 것 같아 한심한 마음이 드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 당황한 것이 수치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2차적 감정입니다.

1차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지만, 오히려 2차 감정은 더 오랜 시간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2차 감정은 1차 감정의 본질을 흐려놓기도 하고, 때로는 본연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차단하기도 합니다

상담을 통해 수용되는 감정들

우리가 소아과에 가면 흔히 보는 풍경이 있습니다. 주사를 맞고 아파하는 아이에게 괜찮지?! 별로 안 아프잖아~”라며 달래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심지어는 주사가 무서워 벌벌 떠는 아이의 두 팔을 잡으며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까. 정작 자신은 주사를 맞을 때면 아픈 엉덩이를 실컷 문지르면서 말입니다. 아주 가벼운 예이지만, 이렇게 우리는 발달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별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그러한 감정을 부정하고 빨리 없애야 한다는 식의 정서에 대한 태도(‘정서도식이라고도 하는)를 은연중에 배워왔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더해 부정적인 감정은 약한 사람이나 느끼는 것이고, 우리는 늘 밝고 괜찮아야 한다는 개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발달과정에서 만들어진 나다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부 좋은 것 또는 나다운 것만 인정하여 경험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우리의 경험 밖으로 내쫓아 버리려 합니다. 물론 이렇게 발달과정에서 만들어진 나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적응적인 측면이 있지만, 부정적인 경험을 마주할 때는 오히려 내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다움은 심리학에서 자기 개념, 도식 또는 스키마schema, 개념화된 자기conceptualized self 등 다양한 용어로 이해될 수 있는데, ‘성공한 사람이라는 자기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지요.

이러한 우리가 낯설고 고통스러운 감정 앞에서 할 일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임을,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거나 나쁜 일이 아님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치료 장면에서는 이를 감정의 타당화validation 혹은 정상화normalization이라고 합니다. 감정의 타당화를 통해서 본격적인 심리치료가 시작되고, 이면의 복잡한 마음들을 살피게 됩니다

George Clausen, 1852–1944. ‘Youth Mourning’, 1916, oil on canvas, 91.4 × 91.4cm, Imperial War Museum.
영국화가 조지 크라우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자신의 딸의 약혼자가 죽은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George Clausen, 1852–1944. ‘Youth Mourning’, 1916, oil on canvas, 91.4 × 91.4cm, Imperial War Museum.

감정 허락

"감정을 허락하세요."

오늘의 주제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해주니 그가 하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어떠한 감정도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내 스스로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허락하세요. 감정을 숨기려 하지 말고 표현할 수 있도록 감정을 허락하세요.

우리는 아플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우울할 수도 있습니다. 아파도 됩니다. 머리 위에 구름이 계속 저렇게 머무를 것 같지만 모습이 바뀌고 사라지듯, 우리의 감정도 대부분 오래 머물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바뀌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늘 괜찮으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본연의 감정을 느껴도 됩니다.

이대로 영원할 것 같은 감정도 어느 순간에는 사라집니다.

나의 감정을 저울질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mind

유은승 국립암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및 상담심리학 Ph.D.
국립암센터에서 처음으로 암환자와 보호자에게 심리치료를 시작한 임상심리전문가. 정신종양학, 행동의학과 더불어 인지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등을 기반으로 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개발과 효과 검증 연구에 관심이 있다. 역서로 <수용-전념치료(ACT) 배우기>, 저서로 <정신종양학입문>이 있으며, <암환자를 위한 스트레스 관리>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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