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행동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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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행동 이해하기
  • 2020.02.17 12:00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기고 핥아대며 애교를 떠는 강아지의 행동이 어쩌면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얼마 전 명절에 왠 손님이 하나 늘었다. 형님 댁에 강아지를 한 마리 들였는데 주인 따라온 것이다. 간신히 넉 달 정도 지난 강아지에 불과한 이 녀석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족보타령부터 기질 타령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TV 방송에서 모 강아지 전문가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개의 표정과 행동을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마세요. 개의 세상은 인간과 다릅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기고 핥아대며 애교를 떠는 이 녀석의 행동은 어쩌면 사람들을 좋아해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행동에 의미 부여하기

그렇다고 전혀 밉지 않은 이 녀석의 행동을 이해할 만한 단초가 될 연구가 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The University of Iowa 심리학과의 블룸버그Mark S. Blumberg 교수는 갓 태어나 어미의 보살핌을 받는 새끼 쥐들infant rats의 행동을 관찰했다Blumberg & Sokoloff, 2001. 그가 주목했던 것은 어미와 함께 둥지에 있던 새끼들 곁에서 어미 쥐가 떠났을 때 내는 특이한 울음 소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어미가 자리를 떠났으니 털도 없고 앞도 안 보이고 꿈틀거리기만 하는 새끼들이 어미를 찾아 울어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 싶다. 이런 관점에서 블룸버그 교수가 주목한 첫 번째 가설은, 어미가 없으면 새끼들은 체온 저하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며 그로인한 정서적, 신체적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어미를 둥지로 다시 불러들이는 울음 소리distress call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동물행동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가설이 지배적인 지지를 받았다.

아르놀피니 부분의 초상화에 순종을 상징하는 개가 등장하고 있다.
아르놀피니 부분의 초상화에 순종을 상징하는 개가 등장하고 있다. Jan van Eyck (1390~1441), 'The Arnolfini Portrait', 1434, Oil on panel, 82 * 59.5 cm, National Gallery, London. 

엄마를 찾는 게 아닐 수도

그러나 블룸버그 교수는 심리학자로서 매우 이채로운 가설을 제안하는데 구체적으로 그는, 동물의 행동은 감정적, 신체적 스트레스와 같은 인간의 관점에서 정의된 심리적 변인을 기준으로 해석하기 어려우며 특정 자극과 연합된 반사적 행동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미의 둥지 이탈로 인한 새끼 쥐들의 체온 변화는 그 자체로 새끼 쥐들에게 체온 상승을 추구하기 위한 특정 신체 행동을 촉발시키며 이 과정에서 동반되는 새끼 쥐들의 울음은 어미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 신체적 스트레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블룸버그 교수의 실험은 그 논리가 매우 간단했다. 먼저 어미 쥐의 둥지 이탈은 새끼들의 체온을 저하시키고 뒤이어 새끼 쥐들의 격렬한 울음을 촉발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새끼들의 울음은 어미 쥐의 둥지 이탈 여부와 관계없이 둥지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것만으로 금세 잦아들었다. 다음으로 어미 쥐의 이탈로 인해 새끼들이 울음 소리를 낼 때 체온 변화의 기전을 관찰했다. 그 결과 울음 소리를 낼 때 흉부 근육의 움직임으로 인해 새끼 쥐들의 혈압과 혈류 변화가 초래되고 그 결과로 새끼 쥐들의 체온이 즉각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즉 새끼 쥐들은 어미의 둥지 이탈과 체온 저하로 인한 정서적, 신체적 스트레스가 아닌 체온 저하라는 환경적 변화에 대해 가슴 근육을 쥐어짜듯이 간헐적으로 긴장시켜 직접적인 체온 상승을 시도한 것이다.

강아지는 그렇고, 사람은?

이처럼 새끼 쥐들의 쉴 새 없는 울음소리의 원인이 어미의 부재가 아닌, 체온 상승을 위한 반사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해석은 심리학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인간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심리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가정되지만, 동물들의 행동이나 더나아가 발달 초기의 인간 행동은, 환경적 자극에 대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반사적 반응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 꼬리치고 핥아대는 형님 댁의 강아지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간의 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그저 환경적 자극에 대해 유전자가 결정한 반사적 행동에 대한 강화reinforcement 결과에 충실하고 있을 뿐인데 괜히 우리가 넘겨짚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소 섭섭하기도 하지만 TV 방송에서 강아지 전문가가 이야기한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듯 싶다. 즉 강아지들의 행동은 오로지 강아지들 끼리만 이해할 수 있으며 이걸 인간의 관점에서 호불호를 가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미할 수 있다는 소리다.

큰 애가 갓 태어났을 때가 생각난다. 막 신생아실에서 나와 담요에 꼭꼭 쌓인 아이가 자다 말고 방긋방긋 웃는 것을 보고 내가 좋아서 그러나보다...’라고 착각했던 적이 있다. 큰 의미가 없는 반사적인 웃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름 섭섭해했던 경험이 있는데 아마도 인간의 경우 또한 발달 초기의 다양한 행동들이 앞서 새끼 쥐들처럼 반사적일 가능성이 있다.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이 괜한 말이 아닌 듯 싶다. mind

<참고문헌>

  • Blumberg, M. S., & Sokoloff, G. (2001). Do infant rats cry? Psychological Review, 108(1), 83-95.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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