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경험 구입이 완료되었습니다
많은 명사들이 행복과 관련된 강연이나 서적을 통해 물질 대신 경험을 구매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물질구매'는 말 그대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전자기기나 옷, 악세서리와 같은 것들이 해당된다. 반면 '경험구매'의 대표적인 예로는 여행이나 콘서트, 외식, 공원 입장료 등을 들 수 있다. 소비하고자 하는 여윳돈이 있다면 갖고 싶었던 물건을 구매하는 것보다 여행을 떠나고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과 같이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 행복의 관점에서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물질구매와 경험구매를 구분짓고 경험구매의 이점을 이야기하였던 심리학자들이 꼽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에 비해 경험은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인 재해석이 가능하고, 경험은 물질과 달리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경험구매는 타인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것이다Van Boven & Gilovich, 2003. 지난 십여 년 동안 많은 연구들이 이를 직, 간접적으로 입증하였다.
행복은 마음 먹기 나름?
개인적으로 물질보다는 경험을 구매하라는 조언은 행복이나 불행을 마음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여러 이야기에 비해 와 닿는 면이 크다고 느껴진다. 행복이나 불행은 분명 마음의 문제이지만 그 원인은 보다 다양하며, 무엇보다 사람 마음은 마음 먹는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행복은 마음 먹기 마련'이라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말들은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공원을 걷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예쁜 동네에서 맛난 음식을 먹는 일은 누군가에게 보다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경험구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
물질구매가 더 행복한 사람들
하지만 인간에게 100% 적용되는 이론은 역시 없을 것이다. '물질보다 경험구매'라는 새로운 개념을 강조하다 보니 많은 연구자들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 바로 경험구매가 늘 좋은 선택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3년 연구에서는 학력과 소득에 의해 경험구매의 이점이 증가, 혹은 감소되는 것이 관찰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이루어졌다Lee et al., 2018. 그 결과, 한정된 자원으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 낮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에게는 경험구매보다 물질구매가 오히려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혹은 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이나 소득, 좋은 일자리와 같은 자원이 부족할 때에는 경험구매의 이점이 적용되지 않으며, 이 때에는 오히려 생활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것이 더 큰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이 아닌 경험을 구매하라는 조언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멋진 조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을 가지라'는 말만큼이나 공허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mind
<참고문헌>
- Lee, J. C., Hall, D. L., Wood, W. (2018). Experiential or material purchases? Social class determines purchase happiness. Psychological Science, 29(7), 1031-1039.
- Van Boven, L., & Gilovich, T. (2003). To do or to have? That is the ques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6), 1193-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