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에서, 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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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서, 너를 만났다
  • 2020.02.26 09:00
급작스런 이별은 더 깊은 그리움에 사무치게 만든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 만날 수 없을까?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는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있는지 궁금해요."

지난 26일 방영된 <MBC 스페셜 특집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7세의 어린 딸 나연이를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잃은 어머니 장지성 씨가 가상현실 세계에서 그 때의 딸을 만나는 이야기다. 방송 전 예고 영상이 이미 온라인에서 약 90만 조회수를 기록하였고 방송 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클립 영상은 211일 현재 천만 조회를 넘어 화제의 중심에 있다.

MBC
MBC 특집방송<너를 만났다> 홍보화면 모습. 

나는 2월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에서 한 참여자가 "너무너무 궁금한데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프로그램 예고 영상을 언급해 알게 되었다. 모임에서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고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로 시작하여 무당을 찾아가 간접적으로 고인을 만났던 경험, 무당의 권유에 천도제를 지낼 뻔 했던 일, 고인으로부터 잘 지내고 있다는 어떤 신호라도 받고 싶어 간절히 기도를 했던 사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이들이 고인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는 비슷했다. "잘 있는지 궁금해요."  

떠난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

애도 상담에 오는 내담자들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고인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사별자일수록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해 사별자들이 고인에게 말하고 싶은 것, 확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자조모임의 참여자들처럼 어떤 내담자는 고인이 그 곳에서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한다. 이승의 고통을 피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인의 영혼이 혹여 평안을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다시 만난다면 좋은 곳으로 갔는지, 그곳은 여기보다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내담자는 제대로 고인과 작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라고 한다. 예기치 못한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고인과 이별한 사별자들은 고인의 외롭고 고독했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그래서 다시 만난다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했노라 말하고 싶다고 한다. 물론 자살이라는 죽음의 특성상 왜 그랬는지를 묻고 고인의 답을 듣고 싶다는 사별자들도 있었다.

가벼운 증상인 줄만 알았던 나연이는 길지 않은 투병 생활 끝에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나연이의 동생은 세상을 떠났던 나연이의 또래가 되었고 엄마의 팔뚝엔 나연이의 생일이 새겨져 있지만, 엄마는 나연이의 기억이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지성 씨는 하루만이라도 딸을 다시 만나 좋아하던 미역국을 끓여준 뒤 사랑한다고, 한 번도 잊은 적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영원히, 너를, 기억하고, 사랑한다

지성 씨의 소망 역시 내가 만났던 사별자들과 비슷했다. 그리고 엄마의 간절한 소원은 무당이나 영매, 신에 대한 기도의 응답이 아닌 현실에서, 가상현실로 이루어졌다. 제작진은 가장 최신의 기술인 인공지능, 가상현실, 실감 콘텐츠 등을 활용하여 나연이가 자주 입고 좋아했던 옷과 신발, 엄마와 나연이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구현했다.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짧은 상호작용이 가능할 정도의 분량으로 나연이의 목소리도 구현했다. 나연이와의 만남에서 지성 씨는 함께 생일파티를 했고 나연이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영원히 너를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방송 후, 해당 영상에 대한 엄청난 조회수와 시청자 반응은 최신의 기술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했던 제작진에 대한 기대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게시판에는 자신도 꼭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며 연락처를 남긴 사람에서부터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힘들었다는 의견, 과연 고인을 이런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 사별자에게 치유의 효과가 있는가, 더 나아가 이런 경험들이 오히려 고인이 없는 현실에서는 더 큰 슬픔과 허망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을지 궁금해한다.

아주 특별한 추모의식 너머

정신건강의 영역에서도 가상현실을 활용한 치료는 공포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서 그 효과가 검증된 바 있으며 복합애도상태에 있는 내담자에게 VR를 적용한 사례를 발표한 연구도 있다Botella et al., 2012, 2019. 그러나 애도에 치료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엔 축적된 연구 결과가 빈곤하며 참여자에게 어떤 심리적인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엔 방송 이후 지성 씨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상현실로 나연이의 모습을 구현해 내야 과정에서 제작진과 가족들이 소환해야 했던 나연이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들이 분명 애도 과정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물론 가족 각각의 나이와 애도 상태에 따라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어쩌면 가상현실에서 마련된 엄마와 나연이와의 만남은 그 과정의 끝에 마련된, 떠나보낼 준비가 된 마음 상태에서 내 손으로 떠나보낼 수 있는 일종의 추모의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는 좋겠다, 울 수 있어서."라고 속삭였던 나연이 동생의 말이 남는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감정과 생각은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지극히 사적이고 고유한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을 경험한 나이에 따라서도 몹시 다르다. 따라서 각각이 느끼는 감정을 존중하며 저마다의 속도에 맞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연이 엄마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자 했던 제작진의 의도처럼, 먼 훗날 언니를 만나는 엄마를 지켜봤던 그 순간의 경험이 나연이 동생에게도 부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길, 그리고 나연이 가족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mind

    <참고문헌>

  • Baños, R. M., Etchemendy, E., Castilla, D., García-Palacios, A., Quero, S., & Botella, C. (2012). Positive mood induction procedures for virtual environments designed for elderly people. Interacting with Computers, 24(3), 131-138.
  • Fernández-Álvarez, J., Rozental, A., Carlbring, P., Colombo, D., Riva, G., Anderson, P. L., Botella, C. & Cárdenas, G. (2019). Deterioration rates in Virtual Reality Therapy: An individual patient data level meta-analysis. Journal of anxiety disorders, 61, 3-17.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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