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기쁨, 고진감래의 미학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육아의 기쁨, 고진감래의 미학
  • 2020.02.27 12:00
육아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육아는 힘들다. 마음만 힘든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쇼쇼의 『아이 키우는 만화』 

내가 즐겨 보는 웹툰이 하나 있는데, 바로 쇼쇼 작가의 『아이 키우는 만화』이다. 작가가 아기를 낳아 키우며 실제로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에서 오는 애환이나 어려움, 소소한 즐거움 등을 담백하게 그리는 온라인 만화이다. 이 웹툰의 포인트는 책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던 실전 육아의 힘든 점들을 하나하나 여과 없이 보여주는 데에 있다. 이 웹툰을 보며 실제로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 대부분 엄마들은 격한 공감의 댓글을 남긴다. 작가가 아이 키울 때 남들은 잘 몰라주는, 엄마만 아는 힘든 점과 어려운 점들을 진짜 현실적으로 잘 설명해 줘서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들이다. 또 다른 종류의 댓글들도 있는데, 이는 아이를 낳아 키워본 적 없는 사람들(대체로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의 놀라움의 댓글이다. 즉, 아이를 키울 때 이렇게 힘든 점이 많은지 미처 몰랐고,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런 종류의 댓글들은 자신을 낳고 키워주신 엄마에 대한 감사로 이어질 때도 많다.

19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

나는 두 가지 종류의 반응 중, 공감하며 만화를 보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한다. 나도 19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매일 출근 전과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딸의 엄청난 애교와 웃음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만 같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심지어는 아침과 저녁이 다를 정도로 몸과 마음이 폭풍성장을 하고 있는 시기이다 보니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딸아이의 개인기들 덕에 어쩔 수 없는 딸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어제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단어를 오늘 처음으로 하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육아일기에 이를 적으며 기뻐하곤 한다.

Pablo Picasso, 'Mother and Child', 1901. Harvard Art Museum, USA.
피카소는 생각보다 많은 모자상을 남겼다. 이 모자상은 피카소 청색시대(Blue Period, 1901~4)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푸른색 기조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자애로움을 느낄수 있다. Pablo Picasso (1881~1973),  'Mother and Child', 1901. Oil on Canvas, 112 x 97.5 cm, Harvard Art Museum, USA.

육아는 힘들다

그렇다고 육아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육아는 힘들다. 마음만 힘든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실제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지난달에 딸을 안다가 허리를 다쳐 2주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지냈다. 그래서 수많은 엄마들이 쇼쇼 작가의 아이 키우는 만화에 폭풍공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육아가 힘들긴 하지만 아이 때문에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 때문에, 아이가 없었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쩌면 마음 속으로 은밀하게 ‘육아를 행복하게 여겨야만 좋은 부모이며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쁜 부모야’ 라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일단 사람들은 자녀가 행복의 근원이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한국 사람들만의 것도 아니고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실제로 50여년 전에 미국에서 수집된 대규모 자료에서도 사람들은 최상의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녀"를 꼽은 사람이 29%나 되었다Cantril, 1965. 아이러니는 최악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도 “자녀”는 12%나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자녀가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삶의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행복해질까? 

그렇다면 실제는 어떨까? 육아는 부모를 행복하게 할까 아니면 반대로 불행하게 할까?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할까? 아니면 사람마다 다를까?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육아가 부모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정말로 육아는 행복한 것이고 자녀가 행복의 근원일까?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보면 육아와 행복의 관계가 생각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행복하다는 연구들도 있으나 의외로 아기가 생기면 부부의 행복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많다. 아이의 유무와 부부의 행복에 관해 이루어진 90개의 연구를 종합해서 분석한 트웽게와 동료들의 연구 결과, 아이가 없는 부부가 아이가 있는 부부보다 결혼 생활이 더 만족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Twenge et al., 2013.

아이 없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는 결과를 보고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영유아를 키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전에 누리던 부부의 자유와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좀 크면 혼자서도 잘 놀고, 신경 쓸 것이 줄어들기 때문에 점점 손이 덜 가게 된다. 그러나 어린 아기들은 정말 부모의 시간과 주의와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한다. 우선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몇 년 간은 편안한 밤잠을 포기해야 한다. 아기는 짧게 자고 자주 깨고, 자주 먹기 때문이다.

부부가 오붓하게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쩌다 한 번 외식이라도 하려면 분위기 좋은 곳 보다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팔고 아이가 좀 떠들어도 민폐를 안 끼칠만한 식당 위주로 선택하게 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아기 먹이면서 동시에 물 쏟기, 소리지르기, 숟가락 떨어뜨리기 등을 막느라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한 번 그렇게 외출을 하고 들어오면 온몸의 기가 쭉 빠져 버린다.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나와 남편은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주말이면 자전거를 참 많이 탔다. 그러나 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전거를 타러 나가지 못했다. 나중에 우리 딸이 좀 더 크면 자전거를 함께 타러 가자는 원대한 희망만 바라보며 버티는 중이다. 부부가 집안일이나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오붓하고 자유롭게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부부의 행복과 부부관계 만족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양육은 이런 시간을 사치로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발끈 하며 아이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고 말할 부모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아기는, 자녀는 순수한 기쁨 덩어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도 물론 있으나, 아이로 인해 새롭게 얻게 되는 행복들도 많다. 나는 딸의 얼굴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아직 어설픈 발걸음의 딸이 두 팔을 벌리고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뒤뚱뒤뚱 달려와 엄마 품에 포옥 안겨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낀다. 딸과 함께 하는 시간에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카네만의 실험

그런데 이처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도 착각이라는 놀라운 연구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은 동료들과 함께 어제 하루 동안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각 경험을 할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아보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 연구를 실시했다.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고, 특정한 경험을 할 때 실제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사실에 가깝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 결과,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의 “아이를 돌볼 때 행복하다”는 믿음과는 달리, 연구에 참여한 미국의 워킹맘들은 아이를 돌볼 때 보다는 친밀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사람들과 대화할 때, 편히 쉴 때, 먹을 때, TV 볼 때, 쇼핑할 때, 전화 통화 할 때에 긍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 돌볼 때보다 긍정적 정서를 덜 느끼는 활동은 이메일 체크하기, 집안일, 회사일, 출퇴근 밖에 없었다. 반대로 부정적 정서는 회사일 하기에 이어 아이를 돌볼 때 가장 많이 경험했다. 아이 돌보는 활동이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실제 경험과는 달리 아이 돌볼 때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여기에 대해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댄 길버트Dan Gilbert는 한 강연에서 야구경기의 예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다). 야구장에 가서 8회까지 점수도 잘 나지 않는 지루한 경기를 구경한 한 야구팬 A. 그런데 9회에 극적이고 짜릿한 홈런이 터지며 A가 응원하는 팀이 통쾌한 승리를 거머쥐고, A는 강렬한 희열과 기쁨을 느꼈다. 그는 집에 오며 ‘오늘 경기는 정말 끝내주게 재밌었어!’ 라고 생각한다. 1회부터 8회까지, A는 야구 경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을 지루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절정 부분에서 경험한 긍정적인 정서가 너무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경기 전체를 즐거웠다고 평가한다.

짧고 강렬한 행복의 순간들

길버트 교수는 육아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육아 시간 대부분은 지치고 피곤하고 지루하고 힘들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상처럼 아기가 “엄마” 하고 불러 주는 짜릿한 순간, “꺄르르” 하고 웃어 주는 기쁨의 순간들과 같은 짧고 강렬한 행복의 순간들이 주어진다. 이러한 짧지만 강렬한 행복의 순간들로 인해 부모들은 대부분의 육아 시간을 힘들게 보내지만 육아 전체가 행복하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 결과들을 이미 알고 있는 나 자신도 여전히 아이를 돌보는 동안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마치 착시 현상의 숨은 비밀을 알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착시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괜찮다. 육아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착각은 내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소중히 키울 수 있게 해 주는 진화의 선물이니까 말이다. 아이를 돌보는 동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내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해 주면 된다. mind

   <참고문헌>

  • Cantril, H. (1965). The patterns of human concerns. New Brunswick, NJ: Rutgers University Press.
  • Kahneman, D., Krueger, A. B., Schkade, D., Schwarz, N., & Stone, A. A. (2004). A survey method for characterizing daily life experience: The Day Reconstruction Method. Science, 306, 1776–1780.
  • Twenge, J. M., Campbell, W. K., & Foster, C. A. (2003). Parenthood and marital satisfaction: A meta-analytic review.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65, 574–583.
임낭연 경성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연세대에서 사회 및 성격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행복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였다. 현재 경성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2015년에 한국심리학회에서 수여하는 김재일 소장학자 논문상을 수상하였다. 행복 및 긍정적 정서 연구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범죄피해 진술조력(2018), 범죄피해 조사론(2018), 심리학개론(2019)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