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 심리학은 의식에 대한 학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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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 심리학은 의식에 대한 학문이 아니다!
  • 2020.02.28 10:00
'심리학 고전읽기'를 통해 중요한 논문이나 연구을 정리해서 공유한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첫번째 글에서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토대를 닦은 존 왓슨의 1913년 논문을 소개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Watson, J. B. (1913). Psychology as the Behaviorist Views It. Psychological Review, 20, 158-177.

***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은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씨의 별명은 개통령', 즉 개들의 대통령이다. 재미있는 별명에 맞게 그는 반려견들의 문제행동에 숨겨진 원인을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가 사용하는 훈련법을 보면 행동주의의 원리가 보인다.

개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 간식과 같은 보상이 주어지면 그 행동을 더 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주인의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처벌을 받게되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보상에 따라 특정 행동을 더 하게 되는 것을 '강화'라 하고, 처벌이 두려워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소거'라고 한다.

이러한 원리로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을 행동주의라 한다.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을 정초한 이가 존 왓슨John Broadus Watson, 1878~1958이다. 당시까지 심리학 연구에서는 실험참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직접 보고하거나 기술하게끔 하는 실험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를 내성법introspection 이라 한다. 그러나 왓슨은 심리학도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객관적 실험대상과 절차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했다.

그는 쥐와 같은 실험동물로 많은 동물 실험을 수행했으며, 아동 양육, 광고 분야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행동주의자가 본 심리학은 내성법을 주로 사용하던 기존의 심리학을 비판하고 그가 원하는 심리학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John Broadus Watson, 1878~1958

행동주의 심리학자의 내성법 비판

왓슨은 "행동주의자로서 바라보는 심리학은 순수하게 객관적이고 실험적인 자연과학의 갈래(p. 158)"라고 말한다. 그는, (1) 심리학의 이론적 목표는 행동의 예측과 통제이고, (2) 내성법은 심리학의 방법론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며, (3) 의식이라는 개념을 가정하고 해석한 내성법 자료(data)의 과학적 가치도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왓슨은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의식 현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고 생각해 왔다(p. 158)"고 말한다. 자연과학자가 관찰하고 연구하는 '물리적 현상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를 등가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왓슨은 정서를 예로 든다. 정서는 정신적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정서를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지, 구성요소는 무엇인지, 어떤 강도와 순서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물리적 현상과 달리) 몹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거나 화가 난 것 같다고 짐작하기는 하지만 좋은 기분이나 자체를 관찰할 수는 없다. 왓슨은 그때까지 심리학 연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연구방법이 내성법이었겠지만, 이러한 가정 아래서 얻은 자료는 가치를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식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적어도 비유적이거나 간접적인 관련이라도 있어야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끔 이러한 비유적 관련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심리학자가 있다고 왓슨은 말한다. 자신에게 인간 심리학과 동물실험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으며, 자연스럽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왓슨이 하는 일이 과연 필요한 일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깔린 질문이기 때문이다.
왓슨 자신은 자신의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심리학과 질문한 사람이 생각하는 심리학 사이의 관련성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백을 통해 더 이상 거짓을 말하지 않고 일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행동주의자들이 동물행동 연구로 인간에 대한 이론에 기여한 바가 적기는 하나 그렇다고 실험방법에 대해 공격할 여지를 남기지도 않았으며, 어떤 타협이 필요한데, 심리학이 의식에만 치중하는 시각을 바꾸어 행동연구를 받아들이든지, 행동연구가 완전히 분리된 과학으로 독립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이어 왓슨은 "행동연구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연구대상이 되는 동물의 의식을 '상상을 통해' 구성해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빠지게 된다(p. 159)"고 말한다.

자신은 동물실험을 통해 동물의 학습능력과 방법, 현재의 반응에 대한 과거 습관의 영향, 일반적인 반응 범위, 실험실에서 반응하는 범위까지 모두 알아보고 나서도,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결과를 해석하기 전까지는 연구가 끝나지 않았고 결과가 쓸모 없다고 느끼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껏 연구를 다 해 놓고도) 불편하고 찜찜한 느낌이 들고, 동물의 정신적 과정에 대해 뭔가 추측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온도나 촉감 같은 자극을 쥐와 같은 실험동물에게 주었을 때 과연 쥐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지에 대해 말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연구자로서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약 실험동물에게 의식이 있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여기에서 왓슨이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사용하는 행동 관찰 연구 결과가 기존 심리학의 의식이라는 틀 안에서만 해석되고, 그것이 모순이라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왓슨은 자신은 행동주의자로서 소외감을 느끼며, 의식의 존재 증거를 찾을 수 있는 행동에 대해서만 연구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가 글을 쓰기 몇 년 전만 해도 심리학 연구자들은 어떤 동물들에게는 연합 기억associative memory이 있고, 다른 동물들은 이것이 부족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동물에게 연합 기억이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까?

왓슨은 다시 한 번 '의식의 기원에 대한 탐색에는 허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유기체가 반사적, 본능적 활동으로 자기 보존에 실패할 때 의식적인 수준에서 대처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완벽하게 적응한 유기체는 의식이 부족한 것인가? 그런가 하면 연구를 통해 어떤 활동이 습관 형성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또 그때엔 동물이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습관을 형성하는 것처럼 말하면서 의식의 존재를 정당화한다"며(p. 160~161).

이렇게 동물의 의식은 비상시에만 발동한다고 하다가, 습관 형성을 설명할 때는 갑자기 의식 개념을 편리하게 끌어오는 자기 모순적인 논의는 자신이 행동을 연구하기 시작한 때부터 부담이 되었고, 사람들이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행동 문제를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을까 두렵다고도 말한다.

의식이라는 유령

이러한 자기고백에 이어, 왓슨은 "그동안 행동주의자들은 행동연구를 의식에 대한 분야로 규정하고 의식적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이러한 시도를 포기하고 행동 연구에는 유령(will-o’-the-wisp) 같은’, 보이지 않는(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p. 161)"고 말한다.

이어서 누군가는 의식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신은 짚신벌레가 빛에 반응하는 것인지, 하루에 5번 학습실험 대상이 되는 쥐가 1번 되는 쥐보다 빨리 학습하는 것인지, 인간 아동의 학습곡선에서 지연기가 나타난다고도 말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왓슨이 현상의 원인을 보이지 않는 의식에서 찾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실험실에서의 직접관찰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p. 161)"고 말한다.

왓슨은 인간의 의식과정을 동물의 의식과정에 비유하며 의식을 모든 행동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는 다윈 시대의 생물학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보았던 당시의 시각을 따르지 않고 인류의 출현은 완전히 자연적 현상으로 특별한 창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험적인 이론이었다. 왓슨에 따르면, 다윈은 자연 선택의 다양한 형태를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살펴본 뒤 인간의 기원과 인종의 분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왔고, 이러한 인간 중심성을 벗어난 시각이 오랫동안 생물학 분야에만 머물러 있던 것이 의아할 정도라 말한다.

왓슨은 "실험생물학과 비교했을 때 자신을 포함한 심리학자들은 여전히 연구대상이 사람인지, 동물인지를 구분해야 하는(필자 주: 사람을 다른 동물과는 다른, '의식'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보는) 학문적 발달단계에 머물러 있다(p. 162)"고 말한다.

이건 의식적인 반응이 아닌, 반사야”, “이건 심리학이라고 할 수 없는 순수한 생리학적 사실이야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심리학자들이 동물의 적응과정 전체를 파악하고 다양한 반응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 반응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한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이 의식과 상관이 없어보이면 필요가 없다고 하고, 실험설계가 의식과 상관없어 보이면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왓슨은 유명한 심리학자가 그가 재직하던 존스 홉킨스 대학의 동물 실험실을 보고 내뱉 듯 한 말을 회상한다.

이걸 심리학 실험이라고!”

왓슨은 자신은 "불필요하게 심리학을 비판할 생각이 없지만, 심리학이 자연과학으로서 논란의 여지없이 인정받을 수 있는 실험법을 확립하는 데는 실패했다(p. 163)"고 한다. 심리학 방법론이 실제로 매우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자가 나의 발견을 재확인하지 못하면 실험 조작이나 통제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 연구자의 내성법이 덜 훈련되었기 때문이라 비판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결과를 재검증할 수 없는 경우 실험도구가 적합하지 않았다든지, 순수하지 못한 화학물질을 사용했다든지 하는 실험조건에 대해 비판을 하는데 (이런 식의 비판을 하면 실험방법을 개선하여 재검증을 할 수 있는데), 유독 심리학만 관찰자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는 지적이다.

왓슨은 이제는 심리학에서 "의식에 대한 연구를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p. 163)"고 말한다. 이제 보이지 않는 정신적 상태가 관찰대상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왓슨에 따르면-) 행동주의 연구법이 있으므로!.

왓슨은 '심리학자들이 의식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가 같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심리학자는 시각적 자극의 특성을 질(얼마나 깨끗하게 보이는지), 지속시간(얼마나 유지되는지), 강도(얼마나 강렬한지)로 구분할 수 있지만, 다른 심리학자는 거기에 찬성하지 않고 명확성(다른 자극과 얼마나 잘 구분되는지)이라는 기준을 더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 이 심리학자들이 과연 어떻게 합의를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왓슨은 색채에 대한 예도 드는데,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 색채자극은 엄청나게 많은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네 가지인데 그 변화의 폭이 다양한 것인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노란색은 간단하기 이를 데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빨간색, 초록색 빛을 겹쳐 비추면 노란색의 빛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 노란색은 그냥 노란색인 걸까, 아니면 노란색이라고 하지 말고 빨간색+초록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 모든 색을 전부 다른 색채자극이라고 한다면, 색채자극이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기 때문에 심리학 연구에 색채자극을 사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실제로, 만약 노란색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보려고 하는데, 노란색 자극이 수십, 수백 개이고,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일이 다 실험해 보아야 한다면 퍽 힘들 것이다

왓슨은 미국에서 내성법과 가장 격렬히 싸운심리학자인 티치너(Tichener)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티치너는, 감각과 그 특성에 대한 의견 차이가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보았다. 세상에 몇 가지 노란색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왓슨은 성장하는 과학 분야는 답이 없는 질문으로 가득하지만, 답을 얻기 위해 싸우고 고통받으며 헌신한 사람만이 언젠가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농담처럼 한 마디를 덧붙이는데, 자신은 내성법이 폐기되지 않으면 심리학자들은 200년 후에도 청각자극의 특성이 뭔지, 색채자극을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지와 같은 논쟁을 수백 개씩 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는 것이다.

뒤이어 왓슨은 당대를 풍미하던 기능주의 심리학(functionalism psychology: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환경에 대한 능동적 적응이라는 관점을 취한 심리학 학파) 역시 비판한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구조주의 심리학자(structural psychology: 심리학을 정신적 경험에 대한 과학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경험의 구조를 내성법을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심리학 학파. 철학과 구분되는 최초의 심리학 학파로 봄)들이 사용하는 개념을 비판하고, 의식을 분리할 수 있는 요소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보다 의식 '과정'의 생물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왓슨은 최선을 다해서 기능주의 심리학과 구조주의 심리학의 차이를 이해하려 했으나, 둘 사이의 차이점이 분명해지기보다 혼란이 더해졌다고 말한다. 자극, 지각, 정서 같은 개념을 기능주의 심리학자들도 구조주의 심리학자들만큼이나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왓슨은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이 이전부터 사용하던 개념에 과정(process)이란 말을 더해서, 개념의 사체를 치우고 그 자리에 기능을 남겨 놓았다(p. 165)”며 신랄한 농담을 던진다.

즉 개념 자체가 관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도, 내성법을 사용한다는 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이 구조주의 심리학자들의 지각과 자신들의 지각과정을 확실히 구별 짓지 않았는데, 왓슨은 기능주의 학파가 구조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들의 개념을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 비논리적이고 불공평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즉, 사람들은 심리학을 ‘(정신)행동의 과학이라고 하면서도, 감각, 지각, 심상 등의 개념은 비판 없이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이 과학으로 인정받으려면?

왓슨은 '이제는 심리학자들이 의식, 정신상태, 마음과 같은 개념을 사용하지 말고 자극-반응, 습관 형성 및 통합 같은 말을 쓰자,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p. 155~167)'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심리학은 세 가지 가정에 기반하는데, 먼저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기체(사람과 동물)는 모두 유전과 습관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p. 167)’,
둘째, 유기체가 완벽하게 작동한다고 가정할 때 반응으로 자극을, 자극으로 반응을 예측 가능하다(p. 167)’.

왓슨은 이 두 가정을 제안하기 위해 자신이 미국 토르투가스(Tortugas) 군도 국립공원에, 희귀한 새 연구를 하러 갔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새들에게 나타나는 특이하고 부적응적인 행동이 습관인지 유전의 결과인지 알기 위해 새끼를 부화시켜 길렀는데, 현장연구에서는 동물 대상 실험실 연구에서처럼 음식, , 사회적 관계, , 온도 등의 조건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들의 '알과 새끼'를 자극으로 이용하여 습관과 유전의 영향을 연구했다고 한다.

(왓슨의 생각에, 한 나라의 원주민 연구도 비슷한 방식으로 할 수 있으나,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 사회적 자극이 더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 습관의 영향, 복잡성이 더 높아질 것이며, 만약 더욱 복잡한 삶을 사는 도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실험을 한다면 아마 이번 생에 끝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왓슨이 추구하는 심리학의 마지막 세 번째 가정은, '(심리학의) 목표는 의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행동 통제(p. 168)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표는 추상적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 의사, 법 전문가, 사업가들이 심리학 데이터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심리학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심리학에 불만이었던 것 중 하나는 정신에 대한 이론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었다고 덧붙인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실험심리학(약물, 광고, 법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 실용적인 심리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이들을 단지 응용심리학으로 보는 것은 큰 실수이며, 미래에는 심리학을 활용하는 독립된 분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왓슨은 이들 분야야말로 인간 행동의 통제라는 목적에 맞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약학심리학 연구를 통해 카페인이 일의 속도와 정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고, 법정심리학 연구를 통해 시간이 경과하면 증언의 정확성이 달라지는지를 확인하고, 목격한 물체가 서 있거나 움직이는지, 색깔이 있는지가 증언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제로 검증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실용적 과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심리학자들은 일단 이러한 실용적 문제의 과학적 목표를 모르는 것이고, 또한 인간의 삶을 바꾸는 심리학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도 비판한다. 당시 응용심리학에서 유일한 실수는 실험법이 아닌 내성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행동연구를 사용한 객관적인 결과가 훨씬 가치 있을 것이며, 일단 이렇게 되면 동물과 직접 비교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예를 들어 자신의 연구실에서는 쥐의 학습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고, 하루 실험을 1, 3, 5번 수행하는 집단을 비교하고 있는데, 이런 실험을 사람에게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과학자들과 같이, 과학에서 실험절차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왓슨에게도 역시 매우 중요한 과업이었다. 과학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실험결과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실험방법이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하듯, 사람에게 음식을 주거나 처벌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통제조건과 비교조건이 다른 반응을 유발하지 않을 때까지 참여자에게 이를 물어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pp. 171~172)'고 왓슨은 말한다.

그에게 이러한 실험법은 '내성법과 전혀 다르다(p. 171)'. 예를 들어 참여자가 통제조건과 실험조건에서 사용한 색채자극을 구분하지 못할 때, 두 자극이 달라 보이는지 물어보면 두 개가 똑같다고 말하겠지만, 통제조건을 선택하는 경우 처벌을 주고, 실험조건을 선택하면 처벌을 주지 않고, 자극의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면서 여러 번의 시행을 반복하면, (참여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닌) 두 가지 조건을 구분할 수 있는지의 능력치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부학과 생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적, 신경생리학적으로도 그러한 자료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인지심리학 연구에서 뇌에 대한 생리학적 자료, 예를 들어 fMRI 영상 등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왓슨의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다).

왓슨의 관점에서 당시의 심리학은 더 복잡한 행동, 예를 들어 기억, 상상, 판단, 추론 등에 대해서도 의식의 내용에만 집중하는 듯 보였다. 심리학자들은 50년 넘게 의식 연구만을 해 오며 문제를 한 가지 방식으로만 보고 있지만, 이제 상황을 똑바로 보고 지금의 방식대로는 실제로 행동을 연구할 수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왓슨은 말한다. 내성법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으며, "우리가 연구방법을 개선하면 더 복잡한 행동도 연구할 수 있고, 우리가 지금 미뤄두고 있는 문제도 다시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p. 175)"이라며.

행동을 심리학의 중심으로

왓슨은 순수한 정신(의식)의 영역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모르지만, 당시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의식 개념에 따르면 내 제안은 '의식을 무시하자'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 정신의 영역이 실험적 검증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왓슨은 이 글에서 이 문제를 계속해서 다루려면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더 나아가지는 않겠지만, 만약 독자가 행동주의자들이 다른 자연과학자들이 하듯이 객관적 관점에서 의식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의식 개념을 계속해서 사용하고자 한다면 자신은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자신은 20년 동안 동물연구를 해서 편향되었을 수도 있고,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싸워온 것일 수도 있으며, 사실 자신도 비판했던 심리학자들과 똑같을 수도 있으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주장을 고려해야 한다(p. 175)'는 점을 분명히 한다. 심리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의식이 아닌 '행동'을 심리학의 핵심으로 만드는 것이며, 이 일은 일단 시작하면 곧 가능해지리라는 희망적인 예측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글을 나가며 

반려견 훈련의 원리가 행동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행동주의에는 아주 중요한 함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한 측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 즉 식욕, 수면욕, 성욕, 그리고 공격성은 우리의 인지적 능력,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이타성만큼이나 인류 역사에서 많이 나타났으며 연구되어 왔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명쾌한 실험설계를 통해 강화와 처벌의 강력한 힘을 입증했다. 우리는 모두 쾌락을 주는 것에 다가가고, 불쾌한 것을 피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행동주의자들 이전에 이 사실을 그토록 명확하게 보여준 사람들은 없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에게는 빛(밝은 면)과 그림자(어두운 면)가 있으며, 빛만을 쫓기보다 그림자를 인식함으로써 진정으로 밝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여러 측면 중 하나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의 숨겨진 모습에 대해 아는 것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동물과는 전혀 다른 고결한 존재라고 믿는다면, 사람들이 이러한 믿음과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필요 이상으로 충격을 받고 반응하게 될 수도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을 즐기는 냉혈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도 사실은 아니다. 이 글에서 나타나는 왓슨은 심리학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왔던 말을 작심하고 하나씩 풀어내는 듯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중요한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역시 행동주의 심리학의 원리를 적용한 교육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그의 이상주의자적 면모는 저서인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Beyond Dignity and Freedom)에 잘 나타나 있다. 분명, 행동주의 심리학은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그 시대는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는 인지혁명의 시대로 이어진다. 지금의 심리학은 행동과 인지, 정서 등 의식에 대한 연구 모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이 글과 그 이후의 심리학 역사를 생각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의견도, 상대방의 의견도 모두 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과 인지심리학, 그리고 다른 관점을 취하는 심리학 모두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찾아냄으로써 우리의 생각은 더 넓고 깊어질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그만큼 풍요롭고 신비로운 인간의 비밀을 과학이라는 언어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mind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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