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박보검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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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박보검이 있다면...
  • 2020.03.15 11:10
우리가 사람 얼굴을 볼 때, 눈, 코, 입을 하나 하나 따로 보며서 누구인지 알아채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람부는 언덕이 서 있는 여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금방 알아볼 수 있을까?

심리학은 꿈을 이뤄주는 학문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고 말을 하면, 이렇게 답하는 친구들이 많다. '예뻐야 사랑을 하죠.' 뭔가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수 있으니깐.

학부 때 사회 심리학 수업을 수강하는데, 교과서의 한 챕터의 제목이 '매력'이었다. '그래 심리학이 나의 매력을 높여줄지도 몰라'라는 설렘을 갖고 교과서를 폈으나, 그 챕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요인이 바로 '외모'였. 외모가 빼어나면, 매력이 높단다. 그걸 누가 모르나... (심리학이란 꿈을 이뤄주는 학문이 아닌, 팩트 폭격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와이프와 함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별로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와이프가 너무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심코 한 마디 한다. '저 아이 너무 예쁘다.' 당시 화면에 나오고 있었던 배우는 택이 역할을 하던 박보검 배우. 그 후에 그 분이 여행을 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었다. 박보검이 비행기를 타고 내렸는데, 두 손에는 뭔가 먹을 것이 잔뜩 들려 있었다. 같이 갔던 (연예인) 동료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승무원 누나들이 줬다는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얼굴 안의 박보검

미국 유학 시절 그렇게 국제선을 타고 다녔지만, 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 아니, 뭐 나야 일반인이라 치고, 다른 연예인들도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힘. 다름 아닌 박보검의 외모. (박보검의 매력은 외모 뿐이 아니지만, 글의 전개상 이렇게 적는다. ^^;;;) 내 얼굴 안에 박보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겠지? , 까짓거 한 번 해 보지. 전공이 시지각이고, 특기가 포토샵인데! 그런데.. ... 박보검 어디갔지?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은 누구인가?

위의 사진이 누구처럼 보이는가? 수업 시간에 이 사진을 보여 줬더니, 젊은 윤종신씨라는 대답이 나왔다. 정답은 바로, 나와 박보검이다. 나의 얼굴 윗부분과 박보검의 얼굴 아랫 부분을 이은 것이다. 이 얼굴에서는 나의 얼굴도 박보검의 얼굴도 찾기 힘들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래의 사진을 보면 두 얼굴 모두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얼굴 상단부와 박보검 배우의 얼굴 아래 부분의 결합

이 사진은 나의 얼굴과 박보검의 얼굴을 엇갈리게 이은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두 얼굴 모두 보이지 않나? 참고로 옆에는 두 얼굴의 원본 사진이다.

우리가 사람을 쉽게 알아보는 이유

세상이 좋아졌다. 요즘은 핸드폰이 얼굴 인식을 해서 잠금이 풀린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를 봐도, 우리는 그 친구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린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주름도 늘어 나이 먹은 얼굴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쉽게 알아 볼 수가 있다. 화장을 풀메이크업으로 한 얼굴은 물리적으로 매우 다르게 변화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구인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사실 무척이나 신기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긴 그 똑똑하다는 핸드폰도 이제 겨우 안면 인식을 가능할 정도니... 우리가 동일한 덩치에 동일한 색상을 가진 두 마리의 리트리버를 본다고 하자. 과연 그 얼굴만을 보고 두 마리의 리트리버를 구분할 수 있을까? 얼굴의 작은 차이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동일한 크기에 동일한 피부톤을 가진 두 명의 한국인을 얼굴만 보고도 쉽게 구분 가능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의 뇌를 보면, 사람의 얼굴을 다른 사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며, 특히 사람의 얼굴만이 처리되는 특수 영역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특별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다른 사물을 볼 때와는 달리, 우리가 사람 얼굴을 볼 때, 그 얼굴에서 눈, , 입을 하나 하나 따로 처리하지 않으며, , , 입을 전체적으로 처리하는데, 이를 전역적 처리holistic processing라고 한다. 이 때 특별히 중요한 것이 눈, , 입의 전체적인 배열이다. 그러니깐, 쉽게 말하면 아무리 똑같은 눈, , 입을 가졌어도 그 전체적인 배열이 달라지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그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클라우드 모네의 부인 카미유와 그의 Claude Monet  (1840–1926),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  oil on canvas, 100 *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London.
이들이 누구인지는 그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클라우드 모네의 부인 카미유와 그의 Claude Monet (1840–1926),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 oil on canvas, 100 *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London.

아래 사진은 누구일까?

어느 날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얼굴 정보의 전역적 처리를 아주 잘 보여주는 게임을 발견했다. tvN 방송국에서 토요일에 방영되는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유명인의 얼굴을 보여주고 누구인지를 맞히는 게임이었다. 뭐 이리 쉬운 게임이 있냐고? 우리 한 번 해 보자. 아래 사진은 누구일까? 

아마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 , 입만 보여주니 알 수가 없다고? 물론 그렇다. 얼굴 형태 자체가 없으니. 하지만 다음 사진을 보자.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지 알았을까? 정답은 연애인 (배)수지이다. (옆에 수지의 얼굴을 첨부한다.) 아까 본 사진과 동일한 눈, , 입 부위만을 가지고 있다. 두 사진의 차이는 아래 사진의 경우, 수지님의 눈, , 입이 원래 수지의 눈, , 입 위치에 있었던 반면, 위의 사진은 눈, , 입이 다른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아래의 사진은 수지의 눈, , 입의 배열이 원래 얼굴과 동일했고, 위의 사진은 원래 얼굴과 다른 배열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배열의 차이로 동일한 눈, , 입이지만, 위의 사진에서는 수지을 수지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불경(?)을 저지른 셈이다.

전역적 처리의 효과

이처럼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사람의 얼굴을 볼 때, , , 입을 전체적으로 처리하는 전역적 처리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눈, , 입만 따로 떼어 내서 제시하면 그 주인을 찾기 힘들어 진다. 그래서 최보검(최훈 + 박보검)의 사진에서 나의 얼굴 윗부분과 박보검의 얼굴 아랫부분을 이었을 때 박보검님의 얼굴 아랫부분에 있는 콧망울, 입술, 턱선은 존재하지만, 그 부분들이 박보검님의 얼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 사람의 눈, , 입에 대해 전역적으로 처리를 하다보니 최훈도 아니고, 박보검도 아닌 최보검이 나오게 된다.

얼굴을 전역적으로 처리하고, , , 입 각각에 대해서 높은 가중치를 두지 않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타인의 얼굴을 보고 그 신원을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을 생존의 전략으로 선택했다. 따라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의 무리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무리에 속한 사람인지를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보다 빠른 방식으로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특화된 것이 전역적 처리이다. , , 입을 따로 따로 세세하게 처리하여 신원을 확인한다면, 그 세세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소요하기 때문에 정확할지는 몰라도 가장 빠른 방법은 아니다. 물론 눈, , 입 등의 세세한 정보들이 처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처리가 되며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된다. , 얼굴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그것들보다는 배열 정보와 같은 전역적 정보가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 얼굴에 박보검이 있다면? 뭐 별일 없을 것이다. mind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 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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