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이 말해주는 팬데믹을 대하는 자세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심리학이 말해주는 팬데믹을 대하는 자세
  • 2020.03.23 10:00
WHO가 코로나 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으며, 각국들은 이 사태에 다양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때 발견되는 대응방법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2005년 WOW에서 발생한 팬데믹

‘오염된 피corrupted blood’ 사건을 아시는가. 2005년 9월, WOW(World of Warcraft)라는 게임에서 발생했던 전염병 사태다. 사태의 전말을 짧게 소개해 보면, ‘줄구룹’ 던전의 최종 보스 ‘학카르’는 주변 플레이어들의 체력을 2초마다 200씩 깎는 ‘오염된 피’라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본래 이 기술은 던전 안에서만 발동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WOW의 학카르
WOW의 학카르

그런데 플레이어들이 데리고 다니는 ‘펫’들에게는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오류가 발견되면서 ‘오염된 피’는 전 서버적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되어 버린다. 펫들이 던전에서 오염된 피에 감염된 후 다른 곳에서 감염된 상태로 다시 소환되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오염된 피를 전염시키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대응 방법들

오염된 피의 데미지는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레벨이 높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감염되는 족족 죽어 나갔고 곧 게임 내 세상은 플레이어들의 시체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여기서 세계 보건 관계자들을 주목시킨 일련의 사태가 이어지게 되는데, 플레이어들이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이는 치유스킬을 써서 감염된 플레이어들을 치료하고 어떤 이들은 민병대를 조직해서 감염된 플레이어들을 격리시키는 한편 아직 감염되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로 들어오지 못 하도록 통제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만 병에 걸릴 수 없다며 다른 지역으로 가서 전염병을 옮기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플레이어들의 시체로 뒤덮인 도시
플레이어들의 시체로 뒤덮인 도시

결과적으로 전염병은 서버를 마비시키는 단계에 이르러 회사 측은 서버를 리셋시키고 버그를 수정함으로써 사태는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태는 실제 전염병이 돌았을 때 사람들의 행동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현실에서 발생한 팬데믹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 19에 대해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팬데믹이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단계를 이르는 말로 전염병 위험도 6등급 중 최고 단계를 뜻한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코로나 19의 소식이 들려올 때만 해도 지역적 문제라고 보고 안일하게 대처하던 여러 나라들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이 신종 전염병의 전파력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2005년 ‘오염된 피’ 사건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감염자들의 입국을 원천 통제하고, 어떤 나라는 하루에 증상자 수만 명을 검사하고 확진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여 병 자체를 통제 하려하며, 또 어떤 나라들은 병의 치사율이 높지 않고 폐렴과 증상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있습니다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있습니다

각각 나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더 황당한 일들이 널려있다. 초기 발병을 잘 통제하는 듯 보였던 어떤 나라는 뜬금없는 사이비 종교의 등장과 함께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각국의 정부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설 이용 자제를 당부하자 오히려 보란 듯이 모여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어디에서는 누구도 종교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며 여전히 대규모 종교집회를 연다.

문화적 요인과 펜데믹 대응 방법

이 초유의 사태 속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적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코로나 19에 대한 각국의 대응과 사람들의 반응에는 확실히 어떤 차이가 눈에 띈다.

우선, 코로나 19의 확산과 관련한 문화적 요인으로는 각국의 종교를 들 수 있다. 코로나 19의 발발은 박쥐 등 야생동물을 먹는 음식문화에 기인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 밀집하는 형태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급격한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개인 간 거리나 신체접촉에 대한 인식도 코로나 19의 확산에 영향이 있는 듯하다. 코와 뺨을 비비는 남유럽의 인사법(비쥬Bisou)이나 성물聖物에 키스하는 종교적 관습,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즐기는 파티나 클럽 같은 여가문화도 60 cm의 전염 거리를 가진 코로나 19의 주된 전염원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몰른다. Rene Magritte, 'The lovers', 1928, oil on canvas, 54 x 73.4 cm, Museum of Modern Art (MoMA), New York City.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몰른다. Rene Magritte, 'The lovers', 1928, oil on canvas, 54 x 73.4 cm, Museum of Modern Art (MoMA), New York City.

'빨리빨리' 문화의 미덕

대응에 있어서 특히 두드러지는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확진자의 발생과 위치, 동선을 공개하고 추적하는 행정절차나 의료진의 감염을 막고 확진자의 동선을 최소화하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검사방식, 가장 짧은 시간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는 검사키트의 개발과 도입 등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문화의 중요한 속성은 ‘빨리빨리’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장
드라이브 스루 검사장

그 외에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의료진 및 관련 공무원들의 헌신과 전국에서 답지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필수품 등의 물자들, 현장에서 애쓰는 분들에게 보내는 위문 편지와 서로에게 힘을 주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들. 팬데믹 상황에서 흔히 나타나는 혼란도 사재기도 없이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 IMF 금 모으기 운동에서도, 2008년 태안 유조선 사태에서도 나타났던 자발적 참여와 정으로 요약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신뢰 역시 사회심리학 이론에서는 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이러한 차이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따른 편차일까, 아니면 국민을 통제하는 체제의 문제일까, 아니면 문화적으로 유형화된 행동양식의 차이일까. 시간을 두고 깊이 살펴봐야 할 주제임은 분명하지만 이런 점들을 이해한다면 현상의 예측과 대비책의 마련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mind

한민 심리학 작가 사회및문화심리 Ph.D.
토종 문화심리학자(멸종위기종),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