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으로 마키아벨리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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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으로 마키아벨리 다시보기
  • 2020.04.06 15:00
권모술수로 요약되는 ‘마키아벨리즘’은 뭔가 사악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도, 그의 『군주론』도 잘 알지 못한 채 그냥 기피했었다. 사실 처음 보기이지만 다시보기로 살짝 포장하여 '군주론'을 다 읽고 나서, 그야말로 마키아벨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마키아벨리즘마키아벨리

권위가 권위주의와 같지 않고, 나르시스Narcisse가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같지 않은 것처럼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또한 같지 않다. 그런데도 몰랐다. 마키아벨리즘을 떠올리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각종 권모수술와 추잡한 권력투쟁, 비열한 기회주의, 배신 등과 같은 어둠의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그것은 한때 성공한 사람들이 한두 개쯤 가지고 있을 법한 필요악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지혜로운 처신으로 합리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 성격특성의 반대 끝에 있는 속성이 정직과 겸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태생적으로 나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후세에 이름을 길이 남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또한 고만고만한 처세꾼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군주론Il Principe』을 다 읽고 난 지금 그에게 억울한 오명이 씌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랜동안 품었던 오해에 대해 마키아벨리에게 사과하고 싶다.

민중에 대한 리스펙트?

그에게는 애민정신이 있었다. 비록 본인이 직접 군주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군주는 이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군주를 지켜줄 튼튼한 요새가 있다고 한들 백성들이 군주를 미워한다면 그 요새가 군주를 구하지 못한다 하였다. 또한 정복한 나라의 백성에게 새로운 조세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일부 지도층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자와는 달리 백성의 지지를 받아 군주가 된 자는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하며 백성들의 지지가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생각에 백성을 교묘히 잘 통제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 하더라도 백성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며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 또한 분명 스며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조언을 하는 마키아벨리에게도 민중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는 열일하고 싶었을 뿐

마키아벨리는 그 이름도 대단한 메디치 가문의 군주국을 무너뜨린 피렌체 공화국의 장관(외교관), 즉 공직자가 되어 종횡무진 활약하였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의 성공적인 컴백은 마키아벨리를 실업자로 만들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투옥을 거쳐 시골의 은둔자로 전략 시켜 버렸다. 유능한 공직자였던 마키아벨리는 시골 생활 속에서도 화려한 공직 복귀를 꿈꾸며 새로운 지도자에게 바칠 제안서를 집필하였다. 그 이름도 거창한 『군주론』은 사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일종의 지원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공화국의 전직 관리였던 자를 메디치 가문의 새 군주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새 군주에게 바치려고 글을 썼다 해서 뭇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을 법하다. 그것이 기회주의자적인 처세술인지는 모르겠다. 이왕 마키아벨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김에 그를 위해 변명하고 싶다. 그는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조국을 위해 정말 열심히 그저 일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다시 공직자가 되어 빛나고자 하는 마음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다지도 훌륭한 제안서까지 쓰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 적어도 그냥 취직시켜 달라는 뻔뻔함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마키아벨리가 활동시대 전쟁은 용병들에 의해 치루어졌다. 그러나 돈만 바라는 용병들은 제대로 싸우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배반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용병 사용을 극력 반대했다. 현명한 군주라면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림은 당시 용병들이 싸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  Niccolò Mauruzi da Tolentino at the Battle of San Romano (probably c. 1438–1440), egg tempera with walnut oil and linseed oil on poplar, 182 × 320 cm, National Gallery, London.[2]'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절, 전쟁은 주로 용병들에 의해 치루어졌다. 그러나 돈만 바라는 용병들은 제대로 싸우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배반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용병 사용을 극력 반대했다. 현명한 군주라면 자신의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림은 당시 용병들이 싸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 Paolo Uccello (1397~1475), 'Niccolò Mauruzi da Tolentino at the Battle of San Romano', c. 1438–1440, egg tempera with walnut oil and linseed oil on poplar, 182 × 320 cm, National Gallery, London.

사생활이 궁금하다

임상심리학자라 그런지 어쨌든 나는 항상 그 사람이 궁금하다. 절대 스토커도 아니고 사생팬도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들, 위인이나 유명인들 그리고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학자들의 경우에도 마음이 가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그의 사생활이 궁금하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고 결혼생활은 어떠했는지. 그러나 그의 저술과 공적인 행적 외에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처럼 『에밀Emile』에서 아동의 양육환경, 부모의 양육을 중요하다고 해 놓고선 자신의 자식 5명은 고아원에 맡겨 버려 철저하게 언행불일치를 보여 줌으로써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에 저자의 인품과 리얼리티를 매치시키는 것은 흡사 영화 속 멋진 배우가 실제로도 멋지기만 할 거라 믿는 어리석음과도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직자로서 열일하고자 했고 감히 군주로 이러이러해야 한다며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펼쳤던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오버했기 때문에

취업을 위한 지원서인 대단한 군주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주로부터 낙점을 받지 못했다. 군주론의 내용은 매우 훌륭하다. 그리고 문체 또한 대체로 겸손하다. 그런데 왜? 과거의 원한 관계 외에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다. 내가 만일 군주라면 군주론을 펼쳐 들었을 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든다. 뭔가 군주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들지 않을까. 구구절절 옳은 말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럴싸한 조언들, 명문장들은 최고 존엄의 위치에 있는 군주를 언짢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서 마키아벨리가 좀 오버를 했다고 본다. 아무리 겸손하게 표현한다 해도, 아부를 한다 해도 군주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군주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타인의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신이 원할 때 조언을 청해 들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그는 군주에게 자발적으로 군주론을 통해 조언함으로써 그 스스로 이것을 위반하였다는 사실은 알았을까. 항상 그놈의 오버가 문제다. 하지만 그래서 매력 있다.

69년생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Sigmund Freud56년생이다. 단지 앞에 붙은 두 자리가 18일 뿐. 1856년생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연도도 잘 외워지고 왠지 친근감이 들어서 오래전 인물들이 나오면 이렇게 생각해 보곤 한다. 이 생뚱맞은 방법에 적용해 보면, 마키아벨리는 69년생이다. 그렇다. 그는 550여 년 전에 태어났다. 그런데 나는 아니 오늘날의 많은 이들은 500년 전의 사람이 쓴 책을 보며 대단하다 평하며 이를 현재 자신들의 삶에서도 지혜로 삼고 있다.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사람 사는 세상은 시대를 초월해 다 비슷비슷한 것인가. 1469년생임에도 불구하고, 500년 전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군주론에서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는다. 군주론의 많은 좋은 글귀들 중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 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는 쉬우나 진단하기가 어려운 데에 반해서,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것도 같습니다(중략)인식하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 중립은 적을 만듭니다(중략)승자는 자기가 곤경에 처했을 대 자기를 돕지 않았던 신뢰하기 어려운 자를 동맹으로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패자는 당신이 그를 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공동 운명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인간 심리를 좀 아는 듯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시대의 웬만한 지성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다. 군주론에 투영된 것으로 판단컨대, 마키아벨리 또한 인간에 대해, 인간 심리에 대해 뭔가를 좀 아는 것 같다. 정치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군주론의 저자를 내가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놓고 심리학자도 (범위를 넓혀) 철학자도 아니면서 군주론에서 그는 인간이란 OO 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꽤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의 성격에 대한 나름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군주와 군주의 통치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내용 중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 무엇보다도 군주는 타인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두려움은 항상 효과적인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됩니다.

-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해서 행복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해서 불행하게 된다고 결론짓겠습니다.

- 인간은 자신의 관념이나 방법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어떤 때는 성공하고 다른 때는 실패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부록: OO주의[ism] 명명에 관하여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이미 2005년에 신종 감염병 등의 질환을 명명하는 데 과학적으로 타당하며,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하여 중동호흡기 증후군, 돼지 인플루엔자, 재향군인병 등 특정 지역, 대상, 직업 등에 국한된 이름이나 괴질, 치명성 등의 지나친 두려움을 일으키는 용어를 피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옳은 방식이다. 그래서 우한 폐렴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OO이즘 또는 OO주의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명칭의 최대 피해자이자 수혜자(?)인 마키아벨리를 생각하며 마키아벨리즘을 다시 명명한다면? 이미 굳어져 익숙해진 표현을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게다가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OO 자체가 정보가치가 크기 때문에 소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OO이즘이나 또 심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OO효과, OO신드롬을 명명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괜한 일에 딴지 거는 것 같지만 요즘처럼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그 일의 처음 의도와 상관없이 파생되는 다양한 결과들을 고려한다면 이점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mind

* 알림: 위에 인용된 글은 2015년 강정인과 김경희가 번역한 군주론에서 발췌한 것임. 본문에서는 편의상, ‘인민백성으로 바꾸어 표현하였음. 거두절미하고 책 내용의 극히 일부를 발췌한 부분은 독자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니 정확한 맥락적 이해를 위해서는 책 전체를 읽어보는 것이 좋겠음.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 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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