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가해자들, 왜 이리도 뻔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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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가해자들, 왜 이리도 뻔뻔할까
  • 2020.03.28 16:00
최근 많은 이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있는 조주빈과 N번방,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의식이 필요한가? 단순히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늘 양면성을 갖추고 있다. 잘못에 대한 죄책감은 바람직한 것인가? 자신 스스로를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좋은 것인가? ‘우리’라는 연대의식은 필요한 것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분노를 유발하는 하나의 사건, 조주빈과 N번방의 가해자들에게 이러한 특성을 대입해 본다면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이미 오래 전에  살인자인 남성이 얼마나 뻔뻔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René Magritte (1898~1967), 'Menaced Assassin', 1927, oil on canvas, 1.5 × 1.9 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이미 오래 전에 가해자인 남성이 얼마나 뻔뻔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René Magritte (1898~1967), 'Menaced Assassin', 1927, oil on canvas, 1.5 × 1.9 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가해자들이 이렇게 뻔뻔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앞서 언급한 질문들과 연결해 보면, 우리가 평소에 바람직하다고 여기던 심리적 특성들이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 기능한다고 알고 있는 심리적 기제들이 오작동함으로써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이 사례를 통해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피해자들을 철저히 ‘비인간화dehumanization’함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여기서 비인간화란 특정한 집단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그들이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인 인지적, 정서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Haslam, 2015.

인간 같지 않으니까 괜찮아

죄책감 혹은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심리적 장치이지만, 양심이라고 불리우는 사감선생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합리화’이다. 살인을 하고도 가해자들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합리화를 하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죄책감을 해소하는 수단이 꼭 잘못을 변상하거나 사죄를 하는 식의 바람직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인지적인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화를 하는데, 그 중 하나의 수단이 바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귀인을 외부(피해자)에 돌리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즉, 나의 행위가 잘못 됐다는 것도 인지하고, 행동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할수록 오히려 이러한 심리적 불편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원인을 피해자의 잘못 혹은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안녕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더 우월한 존재니까

굉장히 급진적인 의사들이 치료를 하는 경우, 환자에 대한 비인간화가 드물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환자를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내가 치료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경우 그들의 존엄성보다는 내가 치료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것이 목적이 되고 환자는 나의 성공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흔히 개입되는 것이 위계적인 권력과 사회적 지배성이다. 이것이 특권의식의 무서운 측면이기도 하다.

나를 파리미드의 상층부에 두고, 대상이 되는 존재를 하층의 위계에 둘 경우, 그들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나보다 열등한 그들이 갖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이 인간으로서 나와 같은 감정과 사고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러한 기본적인 특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충분한 면책사유가 된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

사회적 연대는 인간에게 중요한 심리적 완충역할을 한다. 즉, 혼자일 때는 불안하고 자신 없는 행동이 나와 유사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인간은 전혀 다른 심리적 특성과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인간이 지각하는 행동의 정당성은 옳은 일을 할 때가 아니라, 다수가 할 때 그것을 규범으로 인식하게 된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범죄에 대해 관대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지를 역으로 보고 해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누군가를 비인간화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나보다 더 강한 외집단에 의해서 비인간화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N번방의 사태는 단순히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혹은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심리적 편의를 위해, 그리고 물질적 이익을 위해 나보다 약한 대상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괴물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심리상태의 인간이라면,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존재이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규정하는 형태의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본성적 특성을 기억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상황의 힘을 세팅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상황의 힘 중 하나는 좀 더 현실적인 법과 제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사회적 차원의 교육일 것이다. mind

   <참고문헌>

  • Haslam, N. (2015). Dehumanization and Intergroup Relations. In M. Mikulincer, P. R. Shaver (Eds.), APA Handbook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2(pp. 295-314).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장민희 중앙대학교 심리서비스 연구소 사회및문화심리 Ph.D.
중앙대 심리학과에서 사회 및 문화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자아존중감의 기존 개념을 비판하면서 자기초월성의 개념적 확장을 제안하는 논문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중앙대 부설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심리학 기반의 교육콘텐츠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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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2022-04-20 15:20:52
알페스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