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1) 영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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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1) 영아기
  • 2020.04.07 07:00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그의 1968년도 저서, 'Identity: Youth and crisis'에서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에 대한 이론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중 영아기 발달에 대한 내용인 제 3장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을 살펴보고자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고전 읽기 왓슨 편>에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 주셔서 매우 기쁘고 감사했다. 원문을 잘 전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뒤늦게 아쉬워하기도 했고, 글을 너무 어렵게 쓴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고전의 원래 내용을 최대한 잘 살려 전달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번에도 원문 내용 위주로 정리했다.

이번 고전 읽기의 주인공은 에릭슨이다. 그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자아정체성의 사회심리적 발달이론을 제안한 사람이다. 이러한 종류의 이론에 대해 이미 들어 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또는 비슷한) 그림을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755&cid=59041&categoryId=59041)
이런 (또는 비슷한) 그림을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755&cid=59041&categoryId=59041)

이 글의 원제는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이다. 의역해 보자면 인생주기에 따른 정체성의 점진적 분화 과정정도일 것이다. 에릭슨의 1968년 저서인 ‘Identity: Youth and crisis(정체성: 젊음과 위기)’의 세 번째 장으로, 인간의 정체성은 사회 속에서 성장하면서 점차 다양하게 분화되어 가고, 발달단계마다 성공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 위해 성취해야 하는 심리적 과제가 있으며, 발달에는 개인의 특성, 사회구조, 문화가 함께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아동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 1950)’, 퓰리처상을 수상한 간디의 진리(Gandhi's Truth, 1969)’를 비롯해 인간 발달에 대한 에릭슨의 수많은 저작 중 이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의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 또는 아동발달의 기초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이 이론은 유명하며 또한 중요하다. 에릭슨은 이 이론을 통해 인간에게 핵심적인 문제인 자아정체성이 전 생애에 걸쳐 발달하는 과정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프로이트가 유아기에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가 발생하는 과정에 대한 정신분석 이론의 기초를 닦았다면, 에릭슨은 이렇게 생겨난 자아가 보다 넓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위기를 만나 갈등하고 극복하며 발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래서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에릭슨은 자아정체성 발달의 핵심은 위기라고 본다. 연령에 따라 무엇이 자아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지는 변해 간다. 학령기 아동에게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학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청소년기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자기 나름의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기에는 보람을 주는 직업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감이, 중장년기에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사회와 후속세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산감이, 노년기에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내적인 만족감이 필요하다. 이렇게 각 시기마다 우리가 성취해야 하는 도전이 '위기'이며, 이 위기를 각자의 성격, 처해 있는 상황, 우리가 속한 사회와 문화의 구조 및 규준에 맞게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자아가 발달한다.

위기가 곧 발달의 기회라는 철학적인 내용과 정체성의 발달과정에 대한 깊은 통찰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사색의 여지를 남긴다. 비록 경험적 연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평생 이어지는 자아 발달에 대한 통합적인 설명을 제공한 것은 에릭슨의 큰 업적이다.

정체성의 분화

인생 주기에 걸쳐 갖게 되는 여러 정체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만 버릴 수는 없다. 인간은 아동기, 청소년기(사춘기)에 걸쳐 생리적, 정신적, 사회적 성숙과 책임,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며, 이를 통해 개인적 정체성 발달이 완성된다. 사춘기에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정상적 발달의 일부이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

정신분석학자인 에릭슨은 정신분석의 창시자이자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였던 프로이트를 인용해 신경증적 갈등은 모든 인간이 아동기에 겪어야만 하는 규범적 갈등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모든 성인의 성격에는 그 갈등의 흔적이 비밀스럽게 남아 있다’(p. 91)고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이 심리적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신체 노화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을 끊임없이 풀어가야 하지만 자신은 단지 아프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 생명력 있는vital 성격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말한다(p. 91). 사회심리적 발달이론은 생명력 있는 성격이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한 이론이다.

에릭슨은 인간의 성장을 갈등(내적 갈등, 외부 환경과의 갈등 모두)을 중심으로 바라본다. 생명력 있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정체성 위기가 일어날 때 나타나는 갈등을 극복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내면적 통합성, 판단력, 그리고 자기 자신과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의 기준에 맞게 주어진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발전한다. ‘잘할 수 있다는 말은 물론 문화적 상대성을 담고 있다. 에릭슨이 이야기하는 생명력은 돈을 벌거나,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거나, 신경증적 증상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다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도 생명력을 안정되게 유지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유기체 성장의 원리는 단일체 분화의 원리이다. 우리는 그 예를 태아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수정체에서 시작되어 세포 분열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이때 어떤 단계를 거쳐 발달할지에 대한 지도는 유전자 속에 이미 들어 있고, 이 계획대로 신체의 여러 부분이 만들어진다. 각 부분이 성장하는 시기는 전체 계획에 맞게 정해져 있으며, 이러한 부분적 발달은 모든 부분이 어우러져 기능하는 전체를 만들 때까지 계속된다. 에릭슨은 성격도 이런 식으로 발달한다고 본다(pp. 93~94).

발달에 중요한 시기에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태아는 제대로 발달하지 못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아기는 태어나면서 화학적 교환이 이루어지던 자궁을 떠나 사회적 교환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며(p. 92)’, 다양한 문화적 영향 속에서 감각, 운동능력, 사회적 능력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기회와 한계를 점차 깨닫게 된다. 아동이 잘 발달하려면 가장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적절한 수준의 안내가 필요하다. 보호자는 아동을 위하고 그의 욕구와 발달단계에 알맞게 반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동은 이러한 보호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 더 큰 사회와 만나게 되며 자신의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이때 아동과 보호자의 상호작용 형태는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결국 성격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인간 발달단계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 또 사회적 관습과 상호작용하며 발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어디선가 본 그림을 다시 소환해 본다. 이 그림의 사각형은 아래서부터 순서대로 영아기, 아동 초기(유아기), 아동 중기(학령 전기), 아동 후기(학령기), 청소년기, 성인 초기, 성인 중기, 성인 후기를 나타낸다. 사각형 안에는 해당 발달시기에 맞는 발달과제와 위기가 적혀 있다. 이 그림이 계단처럼 생긴 이유는 발달이 큰 그림에 맞게 계단식으로(차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 단계가 순서에 맞게 발달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릭슨이 본문에서 든 예시를 인용하면, 만약 기본적 신뢰가 인생에 걸쳐 발달하는 정신적 생명력의 첫 번째 요소라고 한다면 자율성은 두 번째이다. 영아기에 신뢰가 제대로 발달해야 유아기에 자율성이 발달할 수 있으며, 자율성 발달이 먼저 이루어지고 신뢰의 발달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인간 발달의 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p. 95).

각 발달단계의 과제가 성취되고 나면 위기가 오고, 이 위기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으면 발달단계를 완수하게 된다. 에릭슨은 아직 말하거나 걷지 못하는 영아기의 아기도 손을 잡았을 때 싫으면 빼내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자율성 같이 보이는특성을 보일 수 있으나, 정상적인 조건에서 진정한 자율성이 나타나려면 생후 2년 이상이 걸린다고 지적한다(이전 발달단계에 이후 발달단계의 특성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이후 단계의 발달이 벌써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주체인 아기가 환경에 새롭게 도전할 준비도 되어야 한다.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환경이 자율성을 이해하고 발달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느껴진다(p. 95).

각 단계에서 나타나는 위기는 새롭게 성장하는 신체 부분의 존재와 취약함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에릭슨은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아동은 약한 존재이냐, 강한 존재이냐라며 이어서 최선의 대답은 아마 아동들은 언제나 어떤 면에서는 취약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무신경하지만, 동시에 그 취약한 면을 해결하려는 데 있어 믿을 수 없을 만큼 끈질기기도 하다는 것일 것이다’(p. 95)라고 말한다. 에릭슨에 따르면 아동에게 힘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동의 취약점이다. 아동이 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아동의 가족으로 하여금 아동의 발달을 돕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릭슨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아기의 존재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적, 외적 삶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지배한다. 구성원들은 그의 존재에 맞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의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또 집단으로서 성장해야 한다. ‘아기가 가족을 통제하고 키운다고 말하는 것은 그 역(가족이 아기를 통제하고 키운다)과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가족은 아기를 통해 성장해야만 아기를 키울 수 있다. 아기의 성장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아기의 가능성이 계속 새롭게 나타나는 동안 이를 발전시켜 주는 도전을 가족이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p. 96).

여기서의 위기는 발달적인 의미로,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취약성이 부각됨과 동시에 가능성이 함께 나타나는 중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일단 아동은 출생과 동시에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후에도 스스로 뒤집어야 하고, 일어서야 하며, 걷고 달려야 한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기들은 보호자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못 참지만, 몇 년이 지나면 보호자의 도움을 거부하며 모든 것을 스스로 하고 싶어 한다. 이 모든 것은 극적인 변화에 따른 위기이자 발달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영아기와 신뢰의 발달

에릭슨에 따르면 정신적 생명력의 가장 근본적인 선행조건은 신뢰감이다. 이는 인생 첫 해의 경험을 통해 배운 세상에 대한 태도로, 이후의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신뢰는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뢰의 감각은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부분, 잘 의식할 수 없지만 생각해 보면 의식할 수도 있는 부분, 무의식적인 부분에 모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에릭슨은 이 시기에 신뢰가 잘 형성되지 못하면 성인기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 안으로 숨어드는 철회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철회는 정신병적 상태로 퇴행한 사람들에게서 가장 충격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음식, 위안, 친교를 거부한다. 심리치료를 할 때 그들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결핍된 것은 신뢰이다. 우리(치료자)는 그들(환자)에게 우리를 신뢰하는 동시에 우리가 그들을 신뢰할 것임을 믿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이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p. 97).

에릭슨은 영아기 때 신뢰감을 쌓지 못한 많은 환자들이 유아와 같이 퇴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신뢰가 발달의 초석이라는 생각을 굳힌 듯하다. 인생 초기 신뢰의 형성과 위기의 극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자.

새로 태어난 아기는 이제 어머니에게서 분리되어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즉 아기의 생존은 아기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자 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보호자의 의도와 능력에 달려 있다. 공생하던 모체에서 분리되어 타고난, 혹은 협응적인 능력을 통해 아기를 받아들이고 먹이고자 하는 어머니의 의도, 능력을 만나 (모유를 먹게 된다). 이 단계에서 아기는 입을 통해 살고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어머니에게 이는 오래 걸리면서도 복잡한 과업이다.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발달, 아기에 대한 무의식적 태도, 임신기와 출산기의 생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속한 사회의 산후 조리와 양육에 대한 태도, 아기의 반응이 모두 이 과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시기의 아기에게 입은 삶에 처음으로 접근하는 데 중심이 되는 기관이다. 때문에 정신분석에서 이 단계를 구강기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아기는 음식을 비롯해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잡아 입으로 빨아 보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아기에게 공갈 젖꼭지를 물려 준다). 즉 아기는 입을 통해 세상을 만난다.

동시에 영아는 민감하고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연약한 아기들의 호흡기, 소화기, 순환기 리듬에 맞춰 주려면 우리는 적절한 자극을 줄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기에게 젖병을 물릴 때는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맞는 시간에 맞는 양을 주고 세심하게 돌봐주어야 하며, 칭얼거리면 무엇이 불편한지 살피고 달래 주어야 한다. 이렇게 돌보아 주지 않으면 세상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아기의 욕구는 방어나 무기력으로 급격히 변할 것이다.

아기의 생존을 위해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아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고, 신체적으로 상처를 입거나 결핍된 상태로 내버려두면 안 되며, 초기의 좌절감을 견딜 수 있게 해야 한다(예를 들면 아기가 울면 적절하게 달래 주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기를 어떻게 키울지는 보호자가 결정하지만, 이 결정에는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 에릭슨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기를 생후 1년 동안 하루 종일 포대기에 싸 놓고, 칭얼거리면 바로 얼러 주거나 먹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아기를 싸 놓지 말고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어야 하고, 얼굴이 퍼래지도록 울더라도 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서 먹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의식적인 것이든 아니든 문화적으로 바람직한 목표, 문화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미국 원주민 노인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가 작은 아기들이 울면서 폐가 튼튼해질 것이라고 믿고 내버려 두었던 것을 요즘도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래서 백인들이 (어른이 되어) 그렇게 천국에 가고 싶어 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또 이들이 자랑스럽게 말하길, 두 돌 된 아기가 젖을 먹다가 엄마의 젖꼭지를 물면 머리를 살짝 때려 주어 얼굴이 질릴 때까지 우는 것이 나중에 커서 좋은 사냥꾼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동 훈육에 대한 어떤 내적 지혜, 무의식적 계획, 미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본능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해도) 논리가 있다. 보호자들이 무엇이 아기에게 좋을 것이라고 결정하는지는 그들이 아기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p. 99).

상호작용을 통한 생애 초기 발달

최초의 인간발달에도 문화적 원리가 숨어 있다. 아기의 초기 발달은 직접 가서 얻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는 매우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아기는 보호자가 주는 것을 잘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그리고 보호자도 아기가 받아들일 수 있게끔 잘 주는 방법을 발달시켜야 한다). 또한 주어진 것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이 주게끔 하는 과정을 통해 주는 사람이 되는 방법도 배운다. 이것은 수월한 일만은 아니다.

인생 초기의 좌절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영아기의 상호적 조절에 약점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세상과 맺는 관계, 특히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를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영아와도 입을 통해서가 아닌, 상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아기를 따뜻하게 안아 주고, 아기를 보고 미소 지어 주고, 말을 걸어 주고, 부드럽게 흔들어 달래주는 등의 교감에서 오는 기쁨이다. 또한 인생주기의 이후 단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보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구강기의 두 번째 단계는 치아가 발달하면서 시작된다. 이제 아기는 딱딱한 것을 물어뜯고 씹는, 보다 능동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주도성의 발달은 다른 다양한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아기는 이제 보고 싶은 물체에 초점을 맞추고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움직일 수 있고, 보호자의 목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거나 상체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쪽을 쳐다볼 수도 있으며, 손을 뻗어 무언가를 단단히 잡을 수도 있다. 아기는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쥐고, 잡고, 씹어 보면서 새로운 능력을 익혀 나간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 시기의 위기는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입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색하면서 느끼는 긴장과 불편감, 두 번째는 한 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높아지는 것, 세 번째는 어머니나 보호자가 아기를 돌보느라 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시작하면서 아기에게 쏟던 관심이 분산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배우자 사이의 친밀감이 높아지면서 또 다른 임신(즉 어머니와 아기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발달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p. 101).

모유 수유가 물기 단계까지 이어지는 경우, 아기 입장에서는 엄마가 고통스럽거나 화가 나서 젖을 주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게 물지 않고 빠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 단계는 인생의 첫 번째 상실감을 안겨 주며, 어머니와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인상을 남긴다(p. 101). 따라서 임상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유 수유를 중단하고 고형식을 시작할 때 아기가 어머니의 젖가슴과 보호자의 사랑을 동시에 잃어버렸다고 느끼지 않도록 아기를 세심하게 돌보아 주어야 한다. 에릭슨은 그동안 익숙해진 어머니의 사랑을 잃고 여기에 대한 보상도 없는 경험이 급성 유아 우울증이나 나중에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성적 애도의 상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또한 일반적으로도 이 단계는 심리적인 분리감,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희미한 향수를 남긴다고 한다(p. 101). 무언가 부족하고, 분리되어 버려졌다는 이러한 느낌은 기본적 불신을 남기며, 그러므로 기본적 신뢰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생겨난다.

여기서 우리가 신뢰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감과 같은 개념이다. 내가 신뢰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신감에 비해 순진함과 상호성의 의미가 더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영아가 보호자를 믿고 있다고 할 수는 있어도 자신감이 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 될 것이다. 또한 신뢰는 아기가 (양육에 있어) 보호자의 일관성과 지속성에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표현하고 충족하는 능력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이 충분히 신뢰할 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보호자가 자신을 감시해 주어야만 한다든지, 자신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p. 102).

구강기에 고착된 성격

구강기 고착 성격은 구강기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드러나는 성격이다. ‘혼자 남겨지는 것’, ‘자극의 부족등에 대한 유아적인 두려움이 나타나며, 이러한 두려움은 정신분석에서 구강기 가학성이라고 하는 인색한 성격특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잔인한 욕구이다. 그러나 반대로 주고받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배운 낙관적 구강기 성격도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구강기적 성격 특성이 있으며, 이는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보호자에게 의존했던 생애 첫 번째 단계의 흔적으로 정상적인 것이다. 구강기적 특성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과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드러나며, 극도로 희망적이거나 혹은 극도로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타난다(연인에게 행복하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반대로 큰 실패에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구강기 성격특성이 병리적인 것으로 판명되는 것은 성격의 다른 여러 측면 및 문화적 요구와 잘 맞추어 갈 수 있는지, 그러한 특성을 표현할 때 사회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대인관계 기술을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에릭슨은 사회의 경제적, 도덕적 구조 안에서 영아가 욕구를 표현하는 문화적 유형을 논의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p. 102). 예를 들어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믿음이 있으며, 우리는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로 이러한 믿음을 표현한다(혹은 표현했었다). 그러나 물질 과잉의 문화 속에서 이러한 믿음은 물질중독, 탐욕, 자기기만과 같이 유아적 특성의 부정적 측면을 통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에릭슨은 이러한 현상은 구강기에 형성된 신뢰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말한다(p. 103).

그러나 영아기에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가 음식이나 사랑의 절대적 양에 달린 것 같지는 않고, 보호자와의 관계의 질에 달린 것 같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러한 보호자와의 관계의 질, 아기의 욕구에 민감한 돌봄, 문화적 규준에 맞는 자신에 가치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함께 작용하여 영아에게 신뢰감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는 영아의 정체성에서 기본 요소가 되며, 나중에 괜찮은느낌, 자기 자신이 되는 느낌, 다른 사람이 나를 믿는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부모는 억제와 통제만으로 훈육하려 해서는 안 되고 아동에게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다는 느낌을 깊이 심어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부모가 너무 즉흥적이거나, 너무 무르거나, 불필요하게 가혹하거나, 이것만이 아이를 위한 옳은 길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분노나 두려움에 휘둘리거나, 아이, 가족, 의사나 성직자와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이에 대한 영향력을 남용하는지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회적) 변화의 시기에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양육에 대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젊은 엄마에게 친정 어머니의 방식과 내 방식 사이의 갈등, 전문가의 조언과 친정 어머니 방식 사이의 갈등, 또는 전문가의 권위와 내 방식 사이의 갈등은 자신을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pp. 103~104).

에릭슨은 인간발달에 대한 논의는 생의 맨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나 우리는 이때 쌓이는 마음의 가장 깊은 심층에 대해서 너무나 적은 것만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성격발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정체성의 최초 형태가 양육자와 영아 사이에서 형성되는 상호 신뢰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고도 한다(p. 104).

영아기에 보호자와 맺었던 관계의 특성은 나중에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시 나타난다. 신뢰에 대한 욕구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아기에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결핍되거나 손상되는 것은 위험하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 탐색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발달단계의 성공과 위기는 사회적 관습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인간의 생애주기와 관습은 함께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 세대는 기존 관습에 자신들의 기본적 신뢰에 대한 욕구와 젊은 신념을 함께 가지고 들어오고, 성격의 생명력과 같은 관습의 생명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내가 종교를 기본적 신뢰를 찾으려는 관습의 예로 제시한다고 해서 종교가 유치하다거나, 종교적 행동이 퇴행적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화된 종교에서 유아기적 특징이 자주 나타나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년기의 공포스러운 측면에 대한 기억상실을 극복하면, 우리는 원론적으로는 유년기의 기쁨을 성인기에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다(이론적으로는, 유년기에는 기쁨만이 가득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성인기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지금도 유년기와 같은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신뢰는 믿음(faith)의 능력이 될 수 있다. () (종교에서는) 신뢰를 의례의 형태로 표현하고, 악이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끔 해 주며, 이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것을 약속한다. 종교적 제의는 신자들이 창조의 힘 앞에 아이처럼 복종하여 영적 평온을 얻게끔 해 준다. 자신이 작고 의존적인 존재라고 느끼고 겸손해지는 것, 기도와 노래를 통해 잘못된 행동, 악한 생각과 의도를 고백하고 반성하는 것, 자신보다 큰 존재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는 것이 모두 종교적 예식의 일부이다. 최선의 경우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의 신뢰가 공동체의 믿음이 되고, 개인의 노력이 공동체의 의례가 되어 공동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종교가 힘을 잃게 되면 우리는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세계에서 생명력을 찾기 위해 대안적인 경배(reverence)의 형태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서만 엄마가 영아에게 물려주는 형태의 믿음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즉 통제하기 어려운 욕구, 그리고 의존성의 좌절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신뢰에 대한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영아기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고 얻어 낸 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내가 가진 희망이자 내가 준 희망이다(I am what hope I have and give)’(pp. 105~107).

다음 편에서는 아동 초기로 이어가고자 한다. mind

이 글의 내용은 심리학 고전의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기 위해 상당 부분 원전을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 Erikson, E. H. (1968).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 in Identity: Youth and crisis (pp. 91-141). New York: W. W. Norton.
심리학고전읽기모임 중앙대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연구실
정태연 교수의 주도로 심리학 고전읽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의 올바른 대중화를 위해 심리학 고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많은 대학원생들이 참여하여 함께 읽고 주요 내용을 정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심리학 고전읽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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