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2) 아동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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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2) 아동 초기
  • 2020.04.08 09:51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 이론가인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대해 알아본다. 오늘은 아동 초기 이야기다.

아동 초기와 자율성의 발달

정신분석에서는 아동 초기에 배설에 대해 느끼는 쾌감과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항문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근육계가 발달하면서 괄약근도 발달해 점차 대소변을 참거나 배출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발달은 배변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언가를 꽉 잡고’, 잡은 것을 놓는아동의 능력이 급격히 발달한다.

이 시기에는 근육 발달과 함께 언어능력, 사물을 구분하는 능력이 크게 발전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새롭게 배운 여러 가지 행동이 서로 충돌하지 않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동시에 여전히 보호자에게 매우 의존적이지만, 독립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자율적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아동과, 아동을 돌보아야 하는 보호자는 마치 게릴라전’(p. 107)을 하듯이 계속해서 충돌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아동의 자율성을 확립시키게 된다.

아동의 배변훈련이 적절한지는 문화에 달려 있다. 원시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부모가 배변행동을 따로 챙겨주지 않고,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에게 풀숲으로 데려가서 행동을 따라하게 한다. 서구화된 문명에서는, 특히 어떤 계급에서는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기계화(서구화)된 시대의 이상은 기계처럼 훈련받고, 실수 없이 작동하고, 항상 깨끗하고, 분명하고, 잘 다듬어진 몸이다. 또한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아동에게)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성격을 만들어주려면 빠르고 엄격한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동은 기계처럼 훈련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의지력은 일정한 단계를 거쳐야만 발달할 수 있다. 임상 연구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신경증에는 강박증이 포함된다. 이것은 애정, 시간, , 그리고 배변에 있어서 억눌려 있고 인색한 성격이다. 또한 아이들의 배변훈련은 양육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되었다(pp. 107~108).

자율성을 위한 전투

그렇다면 항문기가 중요하고도 어려운 시기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기를 항문기라고 부르는 것은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여서이기도 하지만 보유와 배출, ‘잡는것과 놓는것을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동에게는 이 시기 전체가 무엇을, 언제 잡고또는 놓아야할지를 익히는 자율성을 위한 전투’(p. 107)라고 할 수 있다.

두 발로 단단히 설 수 있게 되면서 유아는 나, , 그리고 내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보호자들은 이 시기의 아이들이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를 알고 있다. 문제는 아이가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보호자에게 사랑스럽게 안겨오다가 다음 순간 갑자기 격렬하게 밀어 낸다. 무언가를 엄청나게 모으다가 한꺼번에 모두 버리는가 하면, 애지중지하던 보물을 어느 날 달리는 차창 밖으로 던져 버린다. 이 모든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아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무언가를 잡는 방법놓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잡는 것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 대한 파괴적이고 잔인한 구속이 될 수도 있고, 안정적으로 잘 돌보아 주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놓는 것또한 파괴적일 수 있는 동시에 여유 있게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있는 그대로 놓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기능(잡는 것과 놓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모든 기능의 가치는 기대와 태도, 즉 문화적으로 허용되는지 거부되는지에 달려 있다.

항문기에 아동과 보호자의 소통과 상호작용은 가장 어려운 시험에 부딪친다. 만약 보호자의 통제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너무 빨리 시작되면 아동은 배변을 비롯한 자기 몸의 기능을 자유로운 의지와 선택을 통해 통제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익히지 못하고, 배변을 두려워할 수도 있으며, 자율적 의지와 통제감을 느끼기 위해 구강기로 퇴행할 수도 있다. 손가락을 빨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거칠어지고 고집스러워지는 것이 그 예이다. 또는 자신의 뜻대로 하기 위해 배변 문제를 이용하거나, 더러운 단어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거나, 자율성이나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가장할 수도 있다.

신뢰 없이는 자율성 발달도 없다

결국 이 단계는 사랑에서 나오는 좋은 의지와 증오에 찬 자기주장, 무조건적인 순응과 자발성, 자기표현과 강박적인 자기구속 또는 조용한 복종 중 어떤 특성이 발달하는지가 결정되는 시기’(p. 109)이다. 이때 자기존중감을 잃지 않으면서 자기통제감을 갖는 것은 자유의지가 발달하는 원천이 된다. 반면 자기통제감의 상실과 부모의 과잉통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자율성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전 단계부터의 신뢰 발달이 필수적이다. 유아가 자기통제력과 자유의지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자기주장을 해도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아직은 분별력이 미숙한 아동을 위험으로부터 단호하게 보호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자기 스스로 서고 싶은 그의 욕구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또한 이 시기에 아동이 경험하는 소외, 즉 서툴고 바보 같은 자신을 노출하는 데 따른 수치심, 자기 자신과 보호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끔 해 주어야 한다.

에릭슨에 따르면 수치심이란 자신이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한마디로 자의식이다(p. 110).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는 상황인데, 관찰당할 준비는 되지 않은 것이다. 에릭슨은 이것이 창피당하는 꿈을 꿀 때 옷을 잘못 입고 있거나 아예 입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이유라고 말한다. 빨개진 얼굴을 가리거나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바로 수치심이다.

어떤 보호자들은 아이에게 수치심을 주어 훈육에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아동이 파괴적인 수치심을 발달시키게 한다. 특정 문화에서는 파괴적인 수치심과 체면을 살리는문화적 방법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도 아동이 자신보다 어린 아이와 다툴 경우 /오빠/누나/언니가 동생에게 양보 못하면 창피한 일이다라고 이야기하는 한편 동생에게 잘해주면 자랑스러움을 표현해 준다). 수치심을 느끼면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데, 역설적이게도 아동이 똑바로 일어서고 자신의 키와 힘을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발달한다.

수치심이 지나치면 정당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멋대로 행동하거나, 수치를 모르는 뻔뻔함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에릭슨은 미국의 시 한 편을 소개하는데, 이 시에서는 살인자가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대에 매달리게 된다. 그는 두려워하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대신 자신을 지켜보는 군중에게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내며 저주를 퍼붓는다(pp. 110~111). 이 사형수처럼 작은 아이들도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수치심을 느끼면 용기나 표현력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반항을 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도 자존심(자기통제와 결정에 대한 욕구)과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항을 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는 감시자가 보지 못할 때, 혹은 자신이 감시자에게서 달아났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치를 주는 사람을 몰래 미워할 수도 있다.

자율성 발달의 이면: 강박증과 의심

이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신경증이나 정신병의 위험은 앞에서 잠깐 살펴보았듯이 강박과 관련이 있다. 에릭슨은 민감하고 조숙한 아이의 경우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높은 항문기의 특성 때문에 사물을 자유롭게 받아들여 반복적 놀이를 하며 여러 감각을 익히기보다 어떤 놀이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면서 모든 순서와 속도를 언제나 똑같이 유지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p. 111). 이러한 유아적 강박에 집착함으로써 부모에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이러한 교묘한 승리는 강박증의 유아적 모델이라고 에릭슨은 말한다(p. 111).

예를 들어 강박적인 사람이 사춘기가 되면, 자유를 느끼기 위해 무슨 일인가를 저지르고 싶어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그는 정체성 위기를 겪는 시기를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사과하며, 습관적으로 수치심을 느끼며 보내게 된다. 아니면 아예 일종의 과잉보상으로 자율성을 반항적 방식으로 드러내며 수치를 모르는 행동을 한다.

에릭슨에 따르면 의심은 수치심의 형제이다’(p. 112). 수치심은 바로 서서 타인에게 노출되어 있는 상태를 의식하는 것에서 나오는 데 비해 의심은 바로 서서 몸의 양면성, 특히 (항문을 포함한) 뒷면을 의식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괄약근과 엉덩이는 공격성(항문을 조이고 풀면서 배변을 조정하는 강력한 근육이 있다는 측면에서)과 성적인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아동이 직접 볼 수 없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침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시원한 기분을 주면서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즉 자율성을 침해하는 변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심의 기본적 형태는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회의하는 것이다. 이는 성인기에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몰래 나를 평가하거나 험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집증적 공포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사춘기에는 일시적인 자기의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유년기를 보낸 가정이 사실 자신이 시작하는 새로운 인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방, 또는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거칠게 흐트러뜨리고 정리하지 않는 것은 말하자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더러운 욕설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에릭슨은 말한다(p. 112).

자율성에는 책임이 따름을 알려주기

우리가 영아기와 관련하여 살펴보았던 구강기 성격과 마찬가지로 항문기 성격에도 정상적 측면과 비정상적 측면이 있다. 질서, 분명함, 깨끗함에 대한 강박성뿐만 아니라 여기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충동성도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강박성, 충동성과 같은) 기능의 주인으로 남느냐, 노예가 되느냐이다’(p. 112).

아이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자유의지를 적절하게 개발하도록 도와주려면 보호자의 유연성과 힘이 필요하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허용할 수 있는 자율성의 정도는 부모들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존엄함과 독립성에 달려 있다. 아동의 신뢰감은 부모의 믿음에, 아동의 자율성은 부모의 존엄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동은 부모가 사랑하고 협조하는 강한 존재로 사는지, 아니면 증오에 차고, 불안하고, 분리된 존재로 사는지를 느낀다’(p. 113).

그렇다면 이 시기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관습에는 무엇이 있을까? 에릭슨은 자율성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보호하기 위한 관습은 법으로 보인다고 말한다(p. 113). 개인의 권리,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의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율성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감각을 보호자가 양육을 통해 아동에게 길러 줄 필요가 있다. 에릭슨은 많은 아동들이 경험하는 보호자의 의심, 비인간적인 처벌과 통제는 보호자가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p. 113~114).

현대 문화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동기에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통제가 좋은 것이고, 성인기에 이를 실행할 수 있기를 기대하도록 교육받지만,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의지보다는 사회적 규율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는 깊고 지속적인 실망일 수 있다.’(p. 114)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도 (나중에 실망만을 안겨 줄) 자율성을 보장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아동의 자율성을 길러 주는 대신 미지의 적이 남은 자율성마저 제한할 수 있다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 공포, 또는 정반대로 충분한 통제나 명령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자율성 단계의 아동은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보호자로부터의 첫 번째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임상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청소년기에 많은 면에서 이 첫 번째 해방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성 단계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반항적인 청소년들은 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퇴행적일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사실은 안내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냉소적인 독립성은 잘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임상적인 논의를 떠나, 정체성 형성에 대한 자율성 단계의 가장 큰 공헌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큰 용기다. 자율성 단계의 성취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다(I am what I can will freely)”이다(p. 114).

(다음 편에서 아동 중기로 이어집니다) mind

이 글의 내용은 심리학 고전의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기 위해 상당 부분 원전을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 Erikson, E. H. (1968).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 in Identity: Youth and crisis (pp. 91-141). New York: W. W. Norton.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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