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4) 아동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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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4) 아동 후기
  • 2020.04.10 08:00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 이론가인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알아본다.

※ 이 글은 Erikson, E. (1968). Identity: Youth and crisis,New York: Norton. 의 제3장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  가운데 '아동 후기' 부분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아동 후기와 근면성의 발달

주도성 단계를 지나면 이제 아동은 보다 빠르고 열심히 배울 수 있는 준비가 되고, 의무, 규율, 수행에 대한 인식이 커진다. 또한 무언가를 해내고 계획하는 데 열성을 보인다. 교사에게도 애착을 보이며,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흉내 내기도 한다.

이상적인 경우,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어울리며 근면성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또한 이제 어떤 문화에서든지 체계적인 지시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교육이 꼭 선생님이 학급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고 익히게 하는 형태라는 법은 없다. 어떤 사회에서는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과 관련 교육을 이수하거나 자격시험을 본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의 인정을 받은 선생님에게 글이 아닌 다른 형태의 지식을 배운다.

위와 같은 경우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구나 그 복제품을 직접 다루어 보면서 경험을 통해 기본적인 기술을 배운다. 아이가 공동체의 기술에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아주 직접적으로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공식 자격이 있는 교사들은 우선 아이들에게 글을 읽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이 커서 무슨 일을 하든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 지식에 대한 교육이 시작된다. 따라서 학령기 아동이 성취해야 할 목표는 광범위해지고, 복잡한 사회적 현실에서 보호자가 아동에게 해 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는 모호해진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학교에 가며, 학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될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그 안에 나름의 목표, 성취, 한계, 실망이 있는 곳이다’(p. 123).

유치원에 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장난을 친다. 처음에는 타인을 마치 사물처럼 생각하고 탐색하거나 덤벼들 수 있지만, 차차 환상 속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 혼자서만 할 수 있는 놀이, 장난감이나 작은 물건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 다른 사람과 할 수 있는 놀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발달을 위해서는 물건(장난감)을 다루는 기술과 더불어 놀이를 떠올리고 친구들과 함께 해 보는 사회적 경험을 익혀야 한다.

모든 아동들은 가끔은 혼자 노는 시간, 더 자라면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병원놀이, 미장원놀이와 같은 역할놀이를 할 시간도 마찬가지이다(p. 123). 이제 아이들은 앞으로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근면성이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 시기에 마치 아동과 그가 속한 사회가 벌써 아동이 심리적으로 예비 노동자이자 부모임을 아는 것 같다’(pp. 123~124). 성적 성숙에 있어서는 일종의 잠재기이며, 아이들은 자신의 환상과 놀이를 만들었던 성적 추동을 조용히 잠재의식화시키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듯이 보인다. 아이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도구를 사용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 과정에서 배우며, 이러한 활동에 빠져들어 열성을 보일 수 있다.

이 발달단계의 위험은 자기 자신과 과업으로부터의 소외, 즉 열등감이다. 이는 이전 갈등을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이러한 경우 아동은 여전히 학교에 가기보다 보호자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학교에서 큰 아이가 되는 것보다 집에서 아기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러한 행동 속에는 여전히 자신과 이성 부모를 비교하며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끼는 마음이 숨어 있다. 이 경우 가정생활을 하며 학교에 갈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이며, 학교에서도 이전 단계에서 이루지 못한 발달이 이루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아동은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것인지, 아니면 늦되거나 능력을 개발하지 못할 것인지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근면성 단계, 잠재기에는 보다 넓은 사회가 아동에게 중요한 세계이다. 아이는 실제 직업과 경제의 세계에 참여할 본격적인 준비를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부모의 배경, 피부색, 성별 등이 자신의 희망이나 의지보다 자신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느낀다면(‘아이들은 이런 것을 바로 알 수 있다고 에릭슨은 말한다), 아동은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는 성격 발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p.124).

공동체의 믿음과 존경을 받고 있음을 아는 좋은 선생님들은 놀이와 일, 배움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안다. 이들은 아동의 노력을 알아볼 수 있고, 특별한 재능을 격려해 줄 줄 안다. 또한 시간이 필요한 아이에게 시간을 줄 수 있고, ‘학교는 즐거운 곳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나 선생님보다 다른 아이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를 안다. 좋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선생님을 믿게끔 해 주어야 할 필요를 느끼며, 따라서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의 필요를 느낀다.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믿게 해 주는 긍정적인 정체성 형성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성공을 이룬 많은 사람들은 한 명의 선생님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진심으로 알아주었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한다. 무시는 반대의 효과를 불러 온다(pp. 124~125).

대부분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여성이라면 이는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남아들이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여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배움을 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교사의 선택과 훈련은 이 발달단계에서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동의 열등감(잘하는 것이 없다는 느낌)의 발달은 선생님이 최소화해 줄 수 있는 위험이다(즉 선생님이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아이가 겪는 문제-자신의 능력을 찾지 못했거나, 배움의 기회가 부족한 것-를 알아챌 수 있다).

여기에는 분명 정체성 혼란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반면 아동의 싹트는 근면성이 미숙하게 고착될 수도 있는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위험은 학교를 다니는 긴 시간 동안 아이가 일을 즐기고, 적어도 한 가지의 정말 잘하는 일을 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 프로이트가 이 시기를 잠재기라고 한 것은 강렬한 추동이 대개 잠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춘기의 폭풍이 닥치기 전 휴식기일 뿐이다. 이 시기의 절망에서 비롯된 억압된 분노를 포함해 모든 초기의 추동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pp. 125~126).

한편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결정적인 발달 시기이다. 근면성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에, 노동과 기술, 협동에 대한 문화적 감각이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가 노동에 부여하는 가치가 학교생활에 의미 있게 연결되어야 하고, 모든 아이들은 유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손을 움직이는 기술과 과제를 해낼 수 있는 지능이 열등감 때문에 손상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에 배우는 지식과 기술은 성인기의 생산적인 삶에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 학교 교육의 두 가지 극단적인 양상이 정체성 형성에 대한 학교의 역할을 보여준다. 한쪽 극단에서는 어린이들의 학교생활을 자기 규제와 의무를 강조하는 우울한 성인기의 연장으로 보는 한편, 다른 쪽 극단에서는 아동기의 자연스러운 경향성인 놀이를 통한 발견, 즉 좋아하는 것을 하는 동안 해야 할 일을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첫 번째 유형이 극단적으로 가면 유치원과 초등학교 아동들을 의무에 완전히 종속시키는 착취적인 교육을 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바꿀 수 없는 의무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자기구속을 떨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기 자녀들의 배움과 일에 대한 자연스러운 소망을 망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이 극단으로 갈 경우 잘 알려진 대로 아이들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우려도 있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 오늘도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험을 스스로 발견하기를 겉으로는 부드럽게, 하지만 실제로는 강하게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극단 사이에는 별다른 개성이 없고 의무적인 교육만 하고 있는 많은 학교가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수단의 불충분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아이들은 발전하는 기술을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교육은 기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훨씬 중요한 것은 기술이 (배우는 아동을 포함해)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pp. 126~127).

근면성 발달 단계의 또 다른 위험은 지나치게 순응적인 아동이 성취만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상상력과 장난기를 모두 희생하며 학업과 기술 훈련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근면성의 발달은 정체성의 발달의 시작이자 끝이 되어 버린다. 자아정체성에 대한 욕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적, 직업적 능력 계발만을 통해,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에릭슨은 이들에게 직무를 포함한 일상적인 일은 자기표현에는 부적절한 따분하고 힘겨운 것이고, 심지어 저주로 보일 수도 있으며, 이는 우리 시대에 생겨나는 정신병리적 문제의 큰 원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인류의 더 큰 자유를 위해 기술을 활용한 대안적 노동을 상상해 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p. 127).

우리는 근면성 단계의 발달을 통해 기술과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성인과 아동 사이에 강력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동은 이 시기에 사회적 관계를 배우기 시작한다. 근면성 단계의 성취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다(I am what I can learn to make work).”  mind

(다음 편에서 청소년기로 이어집니다)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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