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이 주는 상처, 그리고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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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 주는 상처, 그리고 치유
  • 2019.07.08 10:00
소외와 외로움이 주는 심리적 상처는 쉽게 가늠해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심각하다. 그러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또한 녹록하지 않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에드워드 호퍼(E. Hopper, 1882~1967)는 현대 미국인의 외로움을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밤을 새는 사람들Nighthawks'(1942, 84*152cm)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미국 시카고미술관 소장.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건강에 가장 위협이 되는 질환을 조사하였을 때, 암,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과 같은 신체 질환이나 우울 장애와 같은 정신질환보다 더 위협적인 상태가 ‘소외’였다. 미국 건강보험회사인 시그나에서 실시한 대규모 연구에서도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를 15개피 피우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었고, 비만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보고했다.

거절이 주는 고통 가늠하기 어려워

사회적인 배제나 거절의 결과로 나타나는 소외와 외로움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 중 하나이다. 어린시절 부모에게 거절당하거나, 친구들 모임에서 소외되거나, 학교에서 왕따를 경험하거나,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배제되거나, 가족이나 자식들에게 소외되는 등의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상상해 본다면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감정의 고통으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많은 수의 내담자가 인생에서 지속적이거나 강도 높은 사회적인 배제나 거절의 아픔을 경험했다고 호소한다. 자신의 아픔을 해결해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고통은 점점 커져 어떻게 할 수 없어 상담소의 문을 두드린다. 상담소에 오기 전에 시도한 방법은 대부분 감정의 고통을 억누르거나 모른 척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위험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등 거절의 고통을 잊어 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의 고통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무기력감에 휩싸일 때, 고통을 멈추려는 수단으로 자살을 고려하기도 한다.

진통제가 만능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사회적인 배제가 주는 아픔과 몸에 난 상처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밝혔다.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거절당할 때의 아픔은 실존하는 아픔이고, 신체적 고통을 다루려고 노력하듯이 관심을 두고 보듬어야 하는 아픔이다. 편두통과 같은 신체적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복용하는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진통제를 복용하면,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거절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고통도 일시적으로 경감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감정의 고통과 신체적 고통이 얼마나 유사한 지를 보여준다. 극심한 감정의 고통을 경험하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였을 때 고통이 일시적으로 경감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상황,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했을 때, 왕따를 경험할 때, 모임에서 배제된 것 같은 때의 해결방법은 오직 진통제를 복용해야하는 것일까? 진통제는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간 기능의 문제와 같은 다른 신체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감정의 고통에서 헤어나오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감정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복용한 아세트아미노펜 연구에서는, 진통제가 고통스러운 감정을 일시적으로 경감시켰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감정도 무디게 만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술을 마실 때나 고통을 외면할 때에도 그 순간에는 고통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순간적으로만 둔감해지는 것일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화나 불안과 같은 몇 안되는 강한 감정들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해결방안 찾아야

그렇다면 사회적 배제로 인한 감정의 고통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연구에서 제안한 몇 가지 방안 가운데 핵심적인 두 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누군가를 불합리하게 사회에서 배제하거나 거절하는 환경이나 제도가 우리 사회에 있다면,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많은 경우 사회적 배제나 거절은 피해자 자신의 의지나 행위보다는 힘이 센 가족 구성원이나 사회적 구조 안에서 더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 진다.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비합리적인 사회적 배제나 거절을 예로 들어본다면 다문화 가족에 대한 차별, 성적 소수자 차별, 학교 폭력과 왕따, 정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배제나 거절의 폭력이 지속된다면, 피해자 개인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만으로는 효과가 미약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더 많은 사회의 구성원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기 

사회적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개인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은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다. 우리가 느끼는 슬픔, 화, 질투와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은 피하고 싶지만 결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내주는 경고음과 같다. 우리가 그러한 경고음을 모른 척하고 순간적으로 고통을 경감하는 데에만 몰입한다면 그 경고음이 알려주는 위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한 밤중에 일산화탄소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 달콤한 잠이 방해 받을 때, 알람을 꺼버리거나 경고음을 무시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지는 명확하다.

사회적 배제나 거절을 당할 때, 심리적 고통은 우리에게는 중요한 경고음이고 ‘나는 이 모임(사회)에 소속되고 싶은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 나를 거절한 저 사람이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데, 무언가 잘못되고 있어,’ '그 사람에게 거절당하지 않도록 무언가 해야 해’와 같은 신호를 전달해 주고 있다. “에이 몰라, 술이나 마실래” 라고 무시하기 보다 고통스럽지만 감정을 바라보고 감정이 전달하는 경고음이나 신호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할 때이다. 경고음과 신호를 경청할 때 모임에 소속이 되려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거절하려는 것 같을 때,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와 같은 전략예를 들면, 자기 주장, 내 감정을 표현하기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mind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최기홍 교수는 임상심리학자로 고려대 심리학에 재직하고 있으며, 고려대 문과대학 부설 KU마음건강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심리치료 개발과 치료 효과 검증 연구, 그리고 효과적인 심리치료의 보급과 전문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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