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을 괴롭게 만드는 생각: 나는 오늘 한 게 없어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원생을 괴롭게 만드는 생각: 나는 오늘 한 게 없어
  • 2020.04.20 11:00
원활한 대학원 생활을 위한 꿀팁(?)과 같은 글들을 가끔 봤지만, 이제 5년차에 접어든 대학원생으로서 대학원 생활이 괴로워지는 지름길을 몇 개의 글을 통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

예전에 연구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과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하면 안 되는 암묵적인 금기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늘 진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입니다. 저녁 6시쯤 서너 명의 연구실 친구들과 터덜터덜 학식을 먹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 한명은 꼭 하는 말이거든요.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낸 경우가 많습니다. 진행 중인 연구의 데이터를 정리하고 하고, 행정실에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연구비와 관련된 서류를 만들어서 보내고 (서식 틀려서 다시 보내고), 연구실 인턴이 왔을 때 잠깐 같이 얘기를 했다가, 자료를 분석 좀 해볼까 하고 앉았더니 에러 메시지만 가득한 화면과 마주한 하루입니다. 

사실 “오늘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저 말은 제가 제일 자주했는데요. 다시 돌이켜보면 “내가 꿈꿨던 원대한 목표를 기준으로 오늘의 성과를 평가하자면 정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의 줄임말 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원대한 목표는 제 논문이 그럴싸하게 완성되는데 기여하는 하루였고, 그때는 먼지 같은 날들이 쌓여서 기억도 안날 때 즈음 성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하루하루가 알찬 조각으로 눈에 보여서 농부가 곳간에 쌀이라도 쌓아 두듯이 이만큼이나 쌓았군! 하고 눈에 보이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운이 좋아서(?) 하루 종일 앉아서 논문만 쓸 수 있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그 말을 합니다. ‘아, 오늘 진짜 하루 종일 한 게 없어.’ 왜냐면 제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루 종일 한 문단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느라 결국 저녁에도 제 화면에는 한 문단만 떠있었거든요.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 가운데 한 장면.

새로운 보상체계 이해하기

오늘 나는 한 일이 없다는 말은 일단 사실이 아니고 (사실 한 일이 너무 많음),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드는데 나는 왜 자꾸만 저렇게 생각하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지속적인 고통과 성찰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타령'은 대학원에서 경험한 보상체계의 급격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는 점입니다. 

보상reward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 또는 동기수준을 높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보상물, 동기, 행동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보상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잘 훈련된 원숭이가 버튼을 누르면 주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학습 하듯이, 우리도 A를 위한일 을 하면 A를 얻는다는 체계에 훈련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우리는 초중고 시절부터 학부 때까지 매 학기마다 성적표라는 공인된, 나름 즉각적인, 그리고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한 보상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봤어요…), 다들 하기 싫을 때도 있는데 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꾸역꾸역 하게 됩니다. 

대학원에서는 이러한 보상체계의 붕괴가 찾아오며, 수업과 학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전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대학원에서는 많은 경우 연구 성과라는 것이 새로운 보상으로 등극하게 되는데요. 이 보상의 경우 즉각적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행동과 보상사이에 연합이 잘 일어나지 않고, 학습이 쉽지 않습니다 (즉, 연구실에 나가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데 이게 과연 좋은 연구로 이어질까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좋은 연구는커녕 내가 졸업하고 뭐라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비관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쉽고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시험기간에 몇 주, 몇 달 꾹꾹 참으면서 공부하고, 그 결과를 생각하면서 다시 동기수준을 끌어 올렸는데 대학원에서 연구 성과라는 보상만을 기대하고 당면한 어려움 (몸과 마음의 피로, 경제적 궁핍, 워라밸 파괴)등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지속되면 ‘도대체 이걸 해서 나는 뭐가 될까?’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따라서 비교적 단기간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에 익숙하거나, 보상을 얻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식의 보상체계를 애용해왔던 부류에게는 보상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공허한 시간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연구실의 오아시스

‘연구’라는 분야는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도록 진화한 것 같습니다. 연구가 뿜어내는 흥미는 보상이 메말라 버린 사막과 같은 연구실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필수적이고요. 하지만, 연구에 대한 흥미가 있는 사람도 내가 재미있게 한 연구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가진 수준의 흥미만으로는 고독한 시간을 모두 채우기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수준의 (건강한 수준!)의 연구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새롭게 변화된 보상체계의 사이클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솔직히 저도 한동안은 이러한 공허함이 너무 심해서 내가 한 일들을 적어서 벽에 붙여놓기도 해봤습니다 (내가 한 게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반증하기 위해서요).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이 공허함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1.5 ~ 2년 주기로 돌아오는 장기적 보상 (첫 논문이 초고에서 출판물이 되기까지 걸렸던 시간)의 사이클을 한번 경험한 이후에나, 즉각적이지 않은 보상 시스템의 속도에, 적응까지는 아니라해도 이해 할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보상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

그리고 한 달, 혹은 몇 달의 성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그만두지 않고 이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장치를 많이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럽다고 미뤄두었던 전공과 관련 없는 책을 읽기도 하고, 운동할 시간이 어디있냐고 생각했던 몸을 끌고 재미있는 운동을 하러가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연락과 만남을 내 마음이 필요로 한때 잘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보상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보상의 빈도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있는 대학원생들이 혹여나 저처럼 내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공허감 속에서 허우적대지는 않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한 게 없어” 라는 말이 금기어였던 이유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아니야, 내가 더 없어” 등등 의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멘탈을 잘 봉합하고 있던 친구들도 함께 와르르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mind

김혜린 서울대 심리학과 임상심리 박사수료
서울대 심리학과 임상심리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이다. 최진영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노년기 사회적 고립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고자 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상황에서 관찰되는 뇌 반응과 지각된 외로움 수준의 개인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배수현 2020-05-08 07:58:22
왜인지 눈물이 고이는 글이네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화자 2020-05-08 01:07:01
글 좋네요 힐링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