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에서 배우는 사회적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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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응에서 배우는 사회적 신뢰
  • 2020.05.12 12:00
우리 사회는 지금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방역당국의 대처를 보며, 사회적 신뢰의 비결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코로나19로 학교에서 대면 수업과 모임이 중단되면서 연구실 세미나가 멈춘 지도 세 달이 되어 갑니다. 

 

평소 같으면 중간고사가 끝나고 신록과 웃음으로 한창 싱그러울 캠퍼스가 그립습니다. 사람이 바이러스 앞에서 참 작은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수업시간에 만나 발제하고 토론하고 싶을 후배들이 안쓰러우면서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해 나가고 계신 것 같다고 느낄 때는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 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인 것 같습니다.

'저신뢰 사회' 한국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좁은 길을 걸을 때 마주 오는 사람이 길을 비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거나, 생활고 끝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한 기사를 보고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저 자신을 볼 때 사회적 신뢰에 대한 통계수치를 떠올립니다. 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힘들 때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고 답한 한국인은 19.2퍼센트였으며, 이는 OECD 최하위권에 속하는 수치입니다OECD, 2020.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와 체계에 대한 믿음은 안타깝게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신뢰의 비결: 회복탄력성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질병관리본부의 대처는 우리가 사회적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사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사회적 신뢰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한다면 개인적 요인(타인에 대한 신뢰 수준이 사람마다 다를까?), 집단적 요인(여러 사회 집단에 대한 신뢰가 다를까?), 구조적 요인(제도나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 수준은 어떨까?), 상호작용에 관련된 요인(상호작용 방식이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제가 생각 못했던 요인까지도 함께 고려해야 할 테니 결코 쉬운 일도, 빨리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겠지만, 하나의 사례를 생각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질병관리본부의 대처를 보면서 심리학과 관련된 두 가지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첫 번째는 ‘회복탄력성’이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역경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목표를 추구해 나가는 유연성과 적응력을 가리킵니다APA, 2015. 2015년 국내에서 메르스 감염이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환자가 나왔으며,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은 늦은 정보 공개를 이유로 들어 한국의 방역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38506&cid=43667&categoryId=43667. 그 뒤 우리나라는 실무자들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진단 가능한 의료시설을 늘려 감염병 진단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확보했으며, 진단시약 승인절차를 간소화했습니다연합뉴스, 2020. 3. 20. 만약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아무 대처도 하지 않았다면 코로나19에 잘 대응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2016년에 나온 자신의 책 ‘그릿GRIT’에서 어려움을 딛고 목표를 이루어 내는 비결은 성장Growth을 향한 갈망, 내재적 동기Internal motivation, 집념Tenacity, 그리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대화를 통해 회복탄력성 훈련을 받은 아동과 대학생들의 비관적 성향, 우울증 증상이 감소했다는 증거도 제시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도 여성 경찰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만 두 달 간 일주일에 두 번씩 회복탄력성 훈련을 제공하고 두 집단의 회복탄력성을 훈련 전, 훈련 2주 뒤, 훈련 2달 뒤에 측정했더니 훈련을 받은 집단의 회복탄력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올라갔다고 합니다Chitra, & Karunanidhi, 2018. 즉, 회복탄력성은 어른도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자질입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신뢰의 비결: 성실성

두 번째는 ‘성실성’이었습니다. 이는 대표적인 성격 모델인 빅파이브에 포함되는 개인의 성격특질이니 조직의 의사 결정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매일 약속한 시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국민 브리핑, 코로나 19가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진단키트 개발을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여 준비해 두었던 데이터를 모두 개발업체들에 공개한 점, 현장 의료진으로부터 나온 승차진료drive thru의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결정하여 실행한 점jTBC, 2020. 4. 9. 등을 함께 고려하면 ‘책임감 있고, 잘 조직화되어 있고, 열심히 일하고, 목표 지향적’이라는 성실성의 정의https://www.psychologytoday.com/intl/basics/conscientiousness와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실성도 회복탄력성처럼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앤절라 더크워스에 따르면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연구대상을 추적 조사한 많은 종단연구에서 성실성, 자신감, 배려, 평정심과 같은 성격특질이 발달하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20대에서 40대 사이에 크게 나타나지만 평생 인성 발달이 멈추는 시기는 사실상 없다고도 하네요Duckworth, 2016. 이를 성숙의 원리maturity principle라고 합니다.

글을 마치며

결국 실패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며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는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치는’ 태도가 방역당국이 우리와 세계의 신뢰를 얻은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진다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 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이 있으니, 지금은 우리의 사회적 신뢰가 낮다고 해도 작은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mind

<참고문헌>

  • 성실성(conscientiousness). https://www.psychologytoday.com/intl/basics/conscientiousness
  • 앤절라 더크워스 (2016). 그릿: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원전은 2016년에 출판). 서울: 비즈니스북스.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38506&cid=43667&categoryId=43667.
  • “한국, 메르스 후 '진단 네트워크' 강화…코로나19서 발휘” https://www.yna.co.kr/view/AKR20200320057300009?input=1195m. 연합뉴스. 2020. 3. 20.
  • APA (2015). APA Dictionary of Psychology (2nd ed.). W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40회: ‘코로나 코리아’ 탄생 비화. 2020. 4. 9.
  • OECD (2020). How’s Life? 2020: Measuring Well-Being.
  • T. Chitra, & S. Karunanidhi (2018). The Impact of Resilience Training on Occupational Stress, Resilience, Job Satisfaction, and Psychological Well-being of Female Police Officers. Journal of Police and Criminal Psychology (2018), https://doi.org/10.1007/s11896-018-9294-9.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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