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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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이유
  • 2020.05.22 14:46
그 누구보다도 색채를 잘 사용했던 샤갈은 특히 청색을 잘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색채를 모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샤갈의 청색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어느 선배의 실패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라고 한다. 특히 청색을 기가 막히게 잘 사용했다. 아는 선배 하나는 샤갈의 청색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없는 살림에 해외 유명 브랜드의 청색 물감을 모조리 사서 써보기도 했단다. 그래도 샤갈과 같은 색감을 내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당연하다.

우리가 느끼는 색감은 주변색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평범한 사실을 색을 칠하는 화가나 옷을 고르는 소비자들은 종종 잊는다. 샤갈의 청색을 좋아했던 선배도 마찬가지인데 샤갈의 색감을 재현하자면 개개의 색 뿐만 아니라 주변 색들과의 관계에 주목해야 했다. 그 관계를 이해하면 싸구려 물감으로도 샤갈의 색감을 연출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샤갈의 청색조 작품들은 대부분 청색 혹은 청색 주변에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색이 많이 묻어 있다. <청색>이라는 그의 1970년 작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의 푸른 배경 곳곳에는 어두운 터치가 수 없이 묻어 있다. 반면 공중에 떠 있는 남녀와 한 무더기의 꽃은 흰색으로 그려져 있다.

밝기의 동시대비 효과

이런 청색 주변의 어두운 색과 밝은 색들이 청색을 한 켠에서는 더 밝게 만들고 다른 켠에서는 어둡게 만든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밝기의 동시대비 효과다. 실제로는 균질한 청색인데 주변에 있는 밝은 색 옆에서는 더 어둡게, 어두운 색 곁에서는 밝게 보이는 현상이다. 이런 이유로 그림 속 청색은 주변 색에 따라 다른 밝기, 다른 느낌을 주지만 단일한 청색이 주는 균질감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 만약 밝기가 조금씩 다른 여러 청색을 사용했다면 그의 그림은 군데군데 얼룩져 보여 혼잡하거나 산만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밝기의 동시대비는 왜 일어날까? 망막에서 대뇌 시각피질에 이르는 뉴런들의 두 가지 작용방식 때문이다. 그 방식을 하나는 ‘측면억제’, 다른 하나는 ‘수용장’의 반응특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측면억제는 시각통로의 뉴런들이 자기가 활성화된 만큼 측면에 있는 뉴런들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특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 설명한 그림이 아래에 있다.

이 그림 속 수직의 타원을 뉴런이라고 하자. 우측 끝에 있는 뉴런들은 약한 빛을 받아 약하게 활성화 되어 있고 그 만큼 주변의 뉴런들을 약하게 억제한다. 좌측으로 갈수록 뉴런들이 받는 빛의 강도는 강해지고 뉴런들도 강하게 활성화되며 주변 뉴런에 대한 억제의 세기도 커진다. 이런 측면 억제의 작용 때문에 우리는 사물의 윤곽을 쉽게 파악하게 된다. 사물의 윤곽은 대개 밝기의 변화가 급격한 곳이다. 이런 부분의 밝기 차이를 증폭시키는 것이 측면억제 작용이다.

이런 작용이 샤갈의 청색을 어두운 터치 주변에서는 더 밝게 만들고 흰색 주변에서는 더 어둡게 만든다. 청색의 밝기에 대한 착각은 순차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보다 더 밝게 지각되는 청색은 맑고 신선한 감성이 강화되고 어둡게 지각되는 청색은 우울하정적인 느낌을 깊게 할 것이다. 아수라 백작의 얼굴처럼 좀처럼 같이 하기 어려운 두 감성이 샤갈의 그림에서는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Marc Chagall’s floral festooned composition of a Russian village with floating figures, “Le Village bleu” from 1955-59.
Marc Chagall’s floral festooned composition of a Russian village with floating figures, “Le Village bleu” from 1955-59.

뉴런이 만들어내는 효과

샤갈의 청색을 만드는 데에는 뉴런의 ‘수용장’ 특성도 일조한다. 망막에 있는 신경절 세포Ganglion Cell들은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중심과 주변 영역 간에 반응특성이 다르다. 그림 a는 중심 영역에 빛이 있고 주변에 빛이 없다는 신호가, b는 중심에 빛이 없고 주변에 빛이 있을 때 활성화된다. 그래서 a를 on-centered 뉴런, b를 off-centered 뉴런이라고 부른다. 이 뉴런들의 작용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허만 그리드 착시다. 아래 그림을 보면 주목하는 곳 주변의 흰선이 교차하는 부위는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어둡게 보인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그림이 그 옆에 있는데 교차부위를 담당하는 on-centered 뉴런은 흰 직선을 담당하는 뉴런보다 두 배 더 억제되기 때문이다. 이 뉴런들의 특성 역시 사물의 윤곽 부위에서 발생하는 밝기대비를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로 청색 주변에 어두운 색을 적당히 배치하면 그 청색은 실제보다 더 밝게 보이게 된다. 이런 현상을 많은 디자이너들이 경험적으로 체득해 그들의 작업에 응용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청색의 뒷면에서 발광하는 듯 한 효과를 만들어 낼 정도다. 예컨대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검정배경 속 파란 색 나비 사진은 누구나 감탄하는 나비날개의 고운 청색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지금도 사용하고 싶어 한다. 바로 나비날개가 발광이라도 하는 듯한, 염료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듯 한 색감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색만의 특권

그런데 이런 발광효과를 노린 빨간 색 사진은 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빨간 색 주변에 어두운 색을 배치하면 청색의 경우와 같이 동시대비효과가 발생할 텐데 왜 빨간색을 이용한 디자인은 드물까? 아마도 시인성 높은 빨강에 밝기의 동시대비효과를 주었을 때 발생할 돌출성 과잉 때문이 아닐까 싶기는 한 데 확실하지 않다. 독충이나 개구리가 포식자에게 보내는 경고사인의 상당수가 검정 배경에 빨강패턴이지만 검정 배경에 청색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동시대비효과를 노린 미술품이나 디자인은 파란색만 편애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코디에 자신 없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권한다. 날이 따듯해지면서 엷은 하늘색 셔츠가 거리에 자주 등장한다. 독자들의 옷장에도 그런 색의 셔츠가 한 벌 쯤 있지 싶다. 하늘색 셔츠를 입을 때에는 검정색 혹은 그에 가까운 색의 바지를 입어라. 청색을 희석시켜 텁텁해진 하늘색이지만 밝기대비를 통해 다시 청색 고유의 신선(젊어 보이는)하며 현대적인 이미지가 되살아 날 것이다. 반면 카키색 면바지는 밝기대비가 약해 당신을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할 것이다. mind

지상현 한성대 융복합디자인학부 교수 지각심리 Ph.D.
홍익대 미술대학과 연세대 대학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회화양식style이 결정하는 감성적 효과에 관한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 현재는 한중일의 문화를 교차비교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삼국 미술양식의 차이를 규명하고 이 차이를 결정하는 감성적 기질의 차이를 추정하는 일이다. 관련 저서로는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과 <한중일의 미의식>(아트북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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