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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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오해
  • 2020.06.03 10:00
현대 심리학에서 ‘과학적'으로 여겨지는 통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빅하드 교수의 1992년 논문을 소개한다.

현대 심리학은 경험적인 방법을 과학적이라 여기는 실증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증주의의 문제가 지적되었고,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Dar, 1987; Gholson & Barker, 1985; Jennings, 1986; Kukla, 1989; Landy, 1986; MacKay, 1988; Mahoney, 1989; Serlin & Lapsley, 1985.

실증주의를 넘어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여기는 것’ 중에는 잘못된 통념이 있으며, 잘못된 통념은 개념적 역설과 합리성 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오늘날의 잘못된 통념은 후속 연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마크 빅하드Mark H. Bickhard의 「과학에 대한 통념: 현대 심리학에서 과학에 관한 오해」는 심리학에서 ‘과학적’으로 여겨지는 통념 10가지에 대해 밝히고, 대안을 제안하는 글이다Bickhard, 1992.

1. 과학적 개념은 반드시 조작적 정의가 이뤄져야 한다.

조작적 정의란 현상을 과학적 도구나 경험적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의 개념은 반드시 조작적 정의가 이뤄져야 할까?

빅하드는 이에 대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며, 조작적 정의는 19세기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설명한다. ‘정의된’ 개념은 실증적 데이터나 유형으로 특정되며, 만약 측정할 수 없거나 정의되지 않는 개념은 과학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문장이나 단어의 의미가 과연 규정될 수 있는지 수십 년간 연구한 결과, 조작적 정의는 논리적이지 않으며,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타당성(측정하고자 하는 개념을 정확히 측정하는가)의 문제를 가지는 것이 드러났다. 조작적 정의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작적 정의가 불명확한 개념을 측정, 탐색, 분류하기 위한 것’은 ‘과학은 관찰로 증명된다’ 혹은 ‘개념의 의미는 규정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념의 불명확성’이라는 자체가 이론적 의미와 실제 의미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내포하는 것이다.

예로, 19세기 과학자들은 전자기를 데이터로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전자기는 경험적 결과를 통해 원리가 설명되고 이론이 성립되었다. 즉, 데이터로 이론이 설명된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 의해 이론이 성립된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아동 발달 이론’이 데이터로 입증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부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심리학자들은 데이터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조작적 정의를 내리려 하였다. 이에 대해 빅하드는 “심리학에서 조작적 정의를 필수적이라 여기는 것은 반세기 전의 잘못된 과학개념이 계속 암묵적으로 전해진 것으로 이러한 잘못된 통념은 사실 30년 이전에 깨달았어야 하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2. 측정할 수 없는 개념을 다루는 이론은 과학적이지 않다.

빅하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실증주의는 검증을 통해 이론을 성립하는 것으로 탐구 대상은 측정, 탐색, 구분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즉,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현상은 이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현상이 특정한 패턴을 가지면 그 패턴이 론이 될 수 있다. 예로, 입자물리학에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의 특성과 상호작용은 직접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입자들의 작용에는 특정한 패턴이 있으며 이에 기반하여 이론을 세우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빅하드는 ’측정할 수 없는 개념을 과학이 아니다’라고 보는 잘못된 통념은 개념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어떻게 개념을 측정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현상의 개념과 의미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개념을 다루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며 실증주의적 관점은 '이론’이 경험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개별적 ‘개념’이 경험적으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3. 과학적 설명은 반드시 인과적 설명이 있어야 한다.

빅하드는 “인과적 관계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것은 실증주의의 산물이자 잘못된 통념이다”라고 여기에 응수한다. 즉, 현상은 연구자에 의해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가속도나 중력의 작용에 관해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인과적 설명만 과학으로 여긴다면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이론, 빅뱅이론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적 이론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일례로, 당구공이 굴러가는 결과는 당구공의 동그란 속성이 원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구공의 탄력성은 특정한 조건(당구공끼리 부딪칠 때)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렇게 존재의 본질에는 한계와 잠재 가능성이 내재한다는 것이다. 빅하드는 “많은 심리학자는 개념의 잠재된 속성을 간과한다, 이렇게 설명된 일부 속성(원인)으로 어떠한 현상(결과)을 설명하는 것은 현상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실험은 인과적 관계를 검증하는 유일하고 타당한 방법이다.

빅하드는 “실험은 인과적 모델을 밝히는 주된 방법이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기상학, 지질학, 진화생물학, 천문학 같은 분야는 실험으로 인과적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인과적 모델과 실험적 검증만 옳게 여기는 것은 대부분의 과학을 무효로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잘못된 통념이다. 빅하드는 이를 “행동주의와 실증주의적 관점을 단순하게 받아들인 데서 비롯된 오류”라고 지적한다.

5. 과학은 이론을 증명하는 것이다.

빅하드는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한다. 심리학을 포함한 많은 과학 분야에서는 이론을 ‘밝히려는’ 시도와 실패가 이뤄졌다하지만 이론은 경험적으로 밝혀지거나 논리적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결과를 통해 과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 백조는 하얗다’가 ‘모든 백조는 하얗다’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과학은 단편적 결과들의 집약이 아니라는 것이다즉, “과학은 보편성을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에 과학이 있다”는 것이다.

6. 경험적 결과가 쌓일수록 과학은 발전한다.

심리학에서는 경험적 결과의 누적을 과학적 발전으로 여긴다이에 대해 빅하드는 “과학의 발전은 누적된 지식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이론의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의 출현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변환된 것과 같은 것이다. 주요한 발전은 더 많은 연구보다는 기존 이론의 재검토를 통하여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빅하드는 심리적 변인의 특성과 정신적 과정을 다루는 심리학의 발달을 물리학의 발달궤적과 나란히 놓고 보는 것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아직 심리학에서는 작은 수준의, 다수의, 경험적 연구결과가 과학적 발전을 향하는 길로 여겨진다.

7. 검증되지 않는 이론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이론은 현상에 대한 ‘질문’의 ‘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은 질문에 의해 연구되고 만들어진다. 하지만 빅뱅이론, 방사능의 원리 같이 질문은 있지만 답이 없는 이론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현상에 대한 답이 없어도 현상을 이해하려는 질문을 통해서 이론이 성립된 것이다

빅하드는 “이론은 과학을 추구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많은 현대 심리학 연구가 사전에 이론을 세운 후 탐구하는 것은 막연하고 확실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8. 연구방법론에 따라 과학과 비과학이 구분된다.

연구방법론이란 연구대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종합하는지에 관한 이론으로, 연구문제나 목적에 가장 합리적인 답을 결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만약 방법론이 과학적이지 않다면 연구 결과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최대한 정교한 설계 기법을 사용한다.

빅하드는 “정교하고 설계된 방법론은 과학 분야 간에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각 분야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그 학문을 과학적이지 않다거나 학문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많은 연구자가 ‘과학’과 ‘방법론’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즉, 현상이 특정 연구방법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빅하드는 이를 “’과학’과 ‘과학적 방법’의 구분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공학자가 공학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물리학을 다룬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듯, 심리학을 교육학과 동등하게 여기는 시선은 그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 경고한다.

9. 과학은 반드시 경험적 결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빅하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통념은 ‘실증주의의 산물’이다. 현상에 관한 질문에는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답의 범위는 개념과 결과를 수학적으로 다룸으로써 좁혀질 수 있다. 여기에서 경험적으로 결과를 산출하는 것과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귀납적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즉, 데이터로부터 도출된 이론은 데이터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로, 초끈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단위에 대한 이론이다. 이는 경험적 데이터에 의해 세워진 이론이 아니지만, 경험적 개념과 수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확장된 이론이다. 빅하드는 “많은 심리학자가 경험적 데이터만 신뢰하고, 경험적 원리를 기반으로 이론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10.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가 과학 철학의 가장 최근 입장이다.

토마스 쿤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1970』에서,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교체에 의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관점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과학의 발달에서 역사적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학철학의 가장 최근 입장일까?

빅하드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다. 쿤 이후 과학 철학에는 새로운 국면이 대두되었고 과학이 무엇인지와 과학의 기능에 대한 탐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 개념이 모호하고, 상대적이며,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빅하드는 “패러다임은 시간상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연속성을 가지는 변화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는 완전히 다른 것이 제기되는 게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의 보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것이라는 점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시도는 오늘날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잘못된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기

빅하드는 “심리학이 과거에 행동주의적 관점으로 조작적 정의, 인과적 설명, 실험적 방법을 중시했던 틀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새로운 합리적인 대안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증주의의 산물을 암묵적으로 간직한 상태로 전개되었다”고 지적한다.

빅하드는 또한 “심리학에서 실증주의적 관습을 표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하면서 과학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기 위한 두 가지를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는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는 실증주의의 잔재를 밝히고 비판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다 과학적으로 심도있는 대안을 통해 실증주의를 대체하는 것이다. 대안적 방안에 대한 학자들 간 합의는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구성주의적관점(자신의 경험으로 지식과 의미를 구성함)으로 합리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탐구되어 왔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선택되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실증주의적 관습을 넘어서

심리학은 사회과학, 더 크게는 과학의 하위 분과로 분류되는 학문이다. 수많은 학자는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었다. 그 중 실증주의적 관점이 ‘과학적’이라고 여겨졌고, 그에 따라 연구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실증주의의 오류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실증주의적 관점은 암묵적으로 세대를 거듭해 고수되었다(정작 실증주의는 문제점을 보완하며 개정되었다). 빅하드는 잘못된 과학적 통념을 ‘30년 전에 깨달았어야 했던 것’이라고 하였지만, 오늘날까지 유효한 잘못된 통념들이 있다는 것은 깨달아지지 않은 채 60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빅하드는 거듭해서 실증주의적 관습이 가지는 문제를 비판하고, 실증주의적 관습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며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증주의적 관습과 통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 시작할 때 ‘새로운 움직임’이 움트게 될 것이다. mind

    <참고문헌>

  • Bickhard, M. H. (1992). Myths of science: Misconceptions of science in contemporary psychology. Theory & Psychology, 2(3), 321-337.
심리학고전읽기모임 중앙대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연구실
정태연 교수의 주도로 심리학 고전읽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의 올바른 대중화를 위해 심리학 고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많은 대학원생들이 참여하여 함께 읽고 주요 내용을 정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심리학 고전읽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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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근거 2020-09-11 04:34:01
어떤 것이 과학인지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과학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바뀌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동설이냐 천동설이냐 하는 것이 과학계의 큰 논쟁 중에 하나였다면 현재 천동설은 과학이 아니죠. 그저 과학사에서 과학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해 다뤄질 뿐이죠. '지금 우리가 과학이라고 말하는 분야들도 과거에 이랬으니 지금 심리학이 가지고 있는 비과학성은 사실 문제 될 게 없다' 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유치한 논리라고 느껴집니다.

부실한 근거 2020-09-11 02:08:18
그런 점에서 1, 2에 대한 근거가 부실하다고 느껴지는데다가 적어도 그 당시에 결과는 측정하지 못 했을지 몰라도 조건이 통제된 실험을 진행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의되지 않고, 측정 되지 않는 결과나 개념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조건 중에서 측정할 수 있는 부분은 측정해서 진행 했기에 과거에 세워진 이론과 방정식들이 현대에 와서도 쓰일 수 있는 것이죠. 제가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잘 알진 못 하지만, 심리학은 통제된 실험을 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만드는 변수들에 대한 정의, 측정도 안되죠. '과학에 대한 오해' 라는 제목으로 올리신 의도는 알겠으나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