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나의 시누이, 여성인권운동가 ‘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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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나의 시누이, 여성인권운동가 ‘신혜수’
  • 2020.06.06 03:40
가족 가운데 존경할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을 만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그런 시누이가 있다.

나의 시누이 신혜수.

내가 결혼할 무렵 시누이는 여성의 전화 대표와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정대협)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일본의 성노예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과 전 세계를 도느라 일년의 반은 해외에서 지냈고, 남편 되는 서경석 목사 역시 경실련이라는 시민단체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인권 분야에서는 유명한 부부였다.

신혜수 여사는 한국여성의전화 대표(1995~2002년),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1999~2001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2001~2008년),  성매매추방범국민운동 상임대표(2000년), 유엔산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위원회 위원(2010~2018년)을 역임했다. 1996년 미국 워싱톤 소재 '국제여성법개발'이 주는 제1회 세계여성인권상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주최 제10회 비추미여성대상 해리상(여성지위향상 및 권익신장 부분)을 수상했다.
신혜수 여사는 한국여성의전화 대표(1995~2002년),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1999~2001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2001~2008년), 성매매추방범국민운동 상임대표(2000년), 유엔산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위원회 위원(2010~2018년)을 역임했다. 1996년 미국 워싱톤 소재 '국제여성법개발'이 주는 제1회 세계여성인권상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삼성생명공익재단 주최 제10회 비추미여성대상 해리상(여성지위향상 및 권익신장 부분)을 수상했다.

당시 나에게 인권이라는 단어는 단식투쟁을 하는 공장 노동자나 열악한 상황에서 착취당하는 이주민같은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정도였다. 따라서 내 삶에 그녀가 영향력을 미칠 만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조선미라는 사람이 누리는 인권의 수준과 막내며느리의 인권수준은 아주 달랐다. 시댁에서 겪는 낯선 문화는 놀랄 정도로 부당하고 차별적안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누이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은 낯설고 신선했으며, 나를 각성하게 했다.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 oo(딸의 이름) 엄마라고 나를 밝히자 어엿하게 이름이 있는데 왜 아이 이름을 쓰냐고 나무랐고, 명절이면 가족들에게 골고루 역할을 나눠주었다. 재산은 부부 공동명의로 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며 우리 부부를 불러 약정서를 쓰게 했고, 가부장적인 시아버지에 맞서 며느리의 인권을 챙겨준 것도 시누이였다.

결혼하고 7년차, 여느 부부들처럼 다툼이 참 많았던 해였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다른 때에 비해 유난히 취했던 남편은, 큰 소리로 화를 내던 나의 손목을 잡아챘다. 남편은 나를 만류하려던 것이었으나 내 입장에서는 이 물리적 접촉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시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성인권 운동가 신혜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시누이가 나에게 해준 말은 너무나 엄청나서 내가 힘들어졌을 때 그녀같은 아군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만일 이혼을 한다고 하면 네 편이 돼서 도와 줄게.”

천군만마를 얻는다는 것은 이런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밖에서 얻어맞고 집에 갔는데 엄마가 뛰어나와 감싸줄 때 같은 안도감이 들면서 억울함과 분노가 사그러들었다. 같은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을 하기로 하고 그날의 통화는 끝났으며, 다행스럽게도 또 전화할 일은 없었다.

내담자가 어려움을 토로할 때 심리학자는 공감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렇지만 그 때 시누이가 다른 말없이 공감을 했다면 마음은 좀 누그러졌겠지만 내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얻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본 인권운동가 신혜수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으며, 가족이라고 더 감싸지 않았고, 언제 어디서라도 약한 자를 위해 달려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인권운동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기 위한 다수를 위한 활동이라면 심리치료는 심리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개인 대 개인의 관계속에서 심리적 장애를 치료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보면 영역이 분명히 나누어지는 것 같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입주민의 갑질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경비원이 찾아왔을 때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함께 분노하는 않고도 그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청소년이 가출 계획을 알렸을 때 부모에게 이를 알려야 할까?

인권운동가 신혜수의 신념과 철학을 접한 뒤 심리학자로서의 내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내담자의 감정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과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까지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성격심리학자 Allport에 따르면 성숙한 사람은 일관성 있는 삶의 철학을 갖고, 자신의 삶을 통해 완수해야 할 일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과 의무감을 지닌다고 한다. 인권운동가 신혜수는 나에게 그 모델을 보여주었으며, 그녀를 통해 나는 한층 더 성숙한 심리학자로 성장할 것이다. 그녀에게 감사하고, 존경을 전한다.

그리고 여성인권을 위해 오랜시간을 보내온 모든 운동가들에게도 다시금 깊은 감사를 표한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 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 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그런데 그 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 「한국 여성의 전화 연합」에 보내온 이메일에서 인용     mind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아주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임상심리전문가로, 심리평가 업무와 다양한 치료프로그램의 운영 및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특히 아동치료프로그램의 다양화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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