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therapist is present_상담실에서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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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therapist is present_상담실에서 퍼포먼스
  • 2020.07.08 18:44
상담실이라는 공간에 내담자가 들어온 순간 상담자와 내담자는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 이 퍼포먼스의 시작은 '눈맞춤'이다. 상담 관계에서 짧은 침묵속에서 서로의 눈만 바라보는 순간들은 어떤 말보다도 많은 것을 교류하도록 만든다. 2010년 MoMA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 비치의 회고전 "The artist is present" 는 눈맞춤이 불러일으킨 관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의자에 제가 앉아 있습니다. 탁상시계와 눈물을 닦아줄 휴지, 눈물용 꼬마 휴지통, 꽃 한 송이 화병이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2인용 소파에 당신이 앉아 있습니다. 주광색 낮은 조도의 장 스탠드, 향기로운 아로마 오일이 뿜어져 나오는 가습기, 편안함을 주기 위한 러그와 쿠션, 과한 터치가 생략된 잔잔한 그림까지. 이 공간은 당신에게 편안함을 주도록 최선을 다해 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은 아직 분위기를 느낄 만한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주의는 낯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불편하고 괴로운 마음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고 사진으로 대략 치료자의 인상을 살폈을 수도 있습니다. 상담 과정에 대해 문의를 하고 예약된 시간에 맞춰 지금 제 앞에 앉아 있기까지 당신은 꽤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 겁니다.

누구의 강요 없이 스스로 이곳을 찾아왔다고 해도 당신의 선택이 괜찮은 선택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상처와 실망의 사건이 될지 걱정과 긴장, 가벼운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색한 미소로 저와 가벼운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제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잠시 침묵 속에서 소파 끝에 간신히 걸터앉아 있는 당신의 눈을 바라봅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마론 아트리움에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단조로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처음 만나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한다. 이 퍼포먼스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1946~ 회고전, "예술가가 그곳에 있다"The artist is present. 작가는 그저 의자에 앉아 있고 그녀 앞에 빈 의자에 누구나 원하는 시간만큼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퍼포먼스를 카리스마 넘치는 40년 이력의 예술가 아브라모비치가 큐레이터에게 제안했을 때 큐레이터는 난감해했다고 한다. “여긴 뉴욕이라고요!”.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20103월부터 5월까지 열린 이 퍼포먼스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시 기간 내내 MoMA 건물을 휘감을 정도로 줄을 섰고 전시 동안 당시 뉴욕시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850만이 다녀갔다. 작가는 미술관 운영 시간 8시간 내내(금요일은 10시간) 자리에 앉아 있었으며 총 736시간 30분 동안 1,675명의 관람객을 만났다.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벨그라드에서 출생한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육체를 극단의 한계에 밀어붙이는 제의적 성격의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이 두려워하는 어떤 것, 예를 들면, 죽음, 통증, 고통에 관람객을 직면시켜 괴롭힌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극단적 위험에 처해 있는 신체이다. 나는 위험의 순간으로 밀어붙이며 괴롭히는 미술에 집중한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작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자신의 신체를 역사와 사회를 반영하는 장으로 상정하고 고통과 극한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는 신체에 직접적인 잔혹한 폭력을 가하고 그 폭력을 견뎌내는 신체의 한계성과 인내와 고난을 표현하고자 했다박미성, 2014.

1974년 리듬시리즈 연작 중 하나인 "리듬 0" 에서는 관람객들이 무엇이든 해도 될 사물로서 자신의 신체를 내놓았다. 관람객은 일상적 도구, 음식물, , 총 등이 포함된 72개의 사물을 활용하였으며 6시간의 퍼포먼스의 끝에 작가는 피와 눈물이 범벅되어 나체로 실려 나가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마쳤다. 1997년에는 도살된 소뼈 더미 위에서 유고슬라비아의 민요를 부르며 나흘 동안 피범벅 소뼈를 솔로 닦았다. 인종 청소와 대학살이 벌어졌던 발칸 반도의 전쟁과 폭력에 대한 은유를 담은 퍼포먼스 "발칸 바로크"는 그 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러던 그녀가 2010"거기 예술가가 있다"의 퍼포먼스에서는 상처나 졸도, 피 칠갑 없이 그저 앉아 있었다. 관객이 작가 맞은편에 앉으면 작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본다. 예술가가 있는 이 공간에 들어온 관람객은 그 순간 작가와 함께 퍼포먼스를 이끄는 공동 주체가 된다. 두 사람은 그저 시선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접촉하며 특정 시간 동안 연결 된다. 서로를 관찰하며 응시하는 그 순간 오히려 자신의 존재에 집중하는 경험을 한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짧은 탄식을 한다. 회피해 왔던 내면의 괴로움에서 도망칠 곳 없다.

그들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마침내 앉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그들 자신 말고는 도망칠 곳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거기에 고통과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 믿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완전히 모르는 타인이 자신을 응시할 때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변화가 일어납니다.An Art Made of Trust, Vulnerability and Connection,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Ted Talks .

아브라모비치는 이 회고전 이후 예술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내면을 성찰하고 집중할 수 있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학교 Marina Abramovic Institute’를 열었다. 전쟁, 살인, 폭력 거대한 담론에 대한 퍼포먼스를 해왔던 작가가 한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변화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Marina Abramović performing The Artist Is Present at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0 by Scott Rudd
Marina Abramović performing The Artist Is Present at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0 by Scott Rudd

! 당신과 저는 이제 상담실 공간에서 50분 동안의 퍼포먼스를 함께 해야 합니다. 리허설도 없고 연기도 아닌 진짜입니다. 당신이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내면의 어떤 모습을 이제 함께 바라봐야겠습니다. 눈맞춤으로 시작합니다. 지금 여기hin et nunc 심리치료사가 있습니다the psychotherapist is present. 당신과 함께. mind

   <참고문헌> 

  • 박미성(2014).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경계의 신체. 현대미술사연구, 35, 37-58.

* P.S: The artist is present 퍼포먼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브라모비치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울라이의 깜짝 방문이었다. 연인으로 지내면서 새로운 행위예술의 역사를 썼던 두 사람은 중국 만리장성에서의 12년 관계를 정리했다. 이별 후 20년간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울라이가 아브라모비치 앞에 앉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BEr5HBLRKtY

고선규 mindworks 대표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대표이자 고려대 KU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임상심리학자이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애도가 관심 분야이며 자살 사별자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와 상담을 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탐미하며 그 속에서 심리학적 이야기를 관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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