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교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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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교수의 하루
  • 2019.07.13 10:10
스타벅스, e스포츠와 심리학을 종횡무진 오가는 낮동안의 일과, 그리고 틈새로 깨닫는 통찰. 심리학 교수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다보면 심리의 작동원리들이 보인다. 사실, 알고 보면 심리학 교수도 별 수 없다.

7:00 a.m. 아침 기상

알람이 울린다. 곤히 자고 있는 5세 아이의 방으로 달려가서 커튼을 열고, 아침마다 반복되는 아이 깨우기의 전쟁이 시작된다.

워킹맘이기에 아이랑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항상 고민이고, 안정적인 애착 관계 형성을 위해 짧은 아침 시간이나마 노력한다. 오늘은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의 실험을 떠올리며 열심히 자고 있는 아이의 팔과 배를 쓰다듬는다. 1950년대에 활동한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새끼 원숭이를 출생 직후 어미로부터 격리시키고, 두 마리의 인공 어미를 제시하여 새끼 원숭이가 어떤 어미를 선호하는지 연구했다. 한 마리는 철사 실린더에 우유병이 부착되어  영양분을 공급하는 어미였고, 한 마리는 보들보들한 천으로 만들어졌지만 우유병은 없는 어미였다. 할로우는 새끼 원숭이는 보들보들한 천으로 만들어진 인공어미를 압도적으로 선호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신체적 접촉을 통한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 좋은 애착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열심히 접촉 위안을 제공하려는 엄마의 마음을 모른 채 아이는 기척도 안하고, 유치원 버스를 탈 시간이 점점 가까워진다. 마음이 다급해져 아이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내 손의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아이를 흔들고, 심지어 큰 소리를 낸다. 아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졸리다라고 한마디 하고 눈을 다시 감는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태블릿 PC로 동영상을 큰 소리로 튼다. 아이는 군대에 갓 입대한 훈련병보다 더 빠르게 기상을 하여 태블릿 PC 앞에 앉아 눈을 크게 뜨고 영상을 본다. 영상을 오래 보면 아이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다수의 연구들이 순식간 머리를 스치지만, 우선 오늘 아이는 유치원에 가야 하고, 나도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유투브 시대에 영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자기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같은 학과 발달심리학 교수님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시작한다. 이론이 현실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것은 심리학 교수도 어쩔 수 없다.

9:00 am. 스타벅스 커피

오늘은 아침 강의가 없고, 외부 일정이 있어 그 전에 강의준비 및 연구 업무를 할 곳이 필요하다. 커피숍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걸어간다. 나처럼 야행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아침에 햇빛을 쬐는 것이 좋다는 연구가 있다. 밤에 너무 늦게까지 취침 시간을 지연하는 것을 방지해주고 아침에 잠을 더 잘 깨게 도와준다. 야행성인 사람들은 아침에 늘 힘들고, 그것을 수면 용어로는 수면 관성이라고 한다. 아침에는 숨쉬는 것조차 버겁다. 정신이 맑지 않고, 늦은 오후나 돼야 정신을 차릴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것이 수십년 동안 일상이 되었다.

홀리스 커피, 투썸, 커피빈과 같이 여러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을 지나쳐 나는 스타벅스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매년마다 스타벅스는 몇 잔 이상의 음료를 마시면 선물을 주는 프로모션 행사가 있다. 올해는 비치타올이고, 작년에는 돗자리였다. 작년에 돗자리를 받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커피를 많이 마시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여러 잔의 음료를 사줬다. 그리고 모든 도장을 받은 후 뿌듯하게 받은 돗자리는 그 이후 한 번도 쓰지 않고 어디 쳐박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비치타올을 받기 위해 나는 이 곳에 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스키너라고 하는 심리학자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보상을 받기 때문이며, 이것을 심리적 용어로 강화reinforcement라고 한다. 스키너는 쥐 실험을 통해 스키너 상자라는 것을 만들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쥐에게 먹이와 물을 줘서 본인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끔 만들었다. 사람도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는 행동은 미래에도 계속 할 가능성이 높고, 현대사회에서 많은 기업들은 이런 원리를 소비자에게 적용한다. 포인트 적립, 몇 개 이상의 상품을 구매하면 선물을 주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토큰 경제라고 한다. 쥐에게 물과 먹이가 중요했다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주로 칭찬, 관심, 돈과 같은 것들이고, 오늘 아침 나에게는 비치타올이다.

올해 여름 바닷가에 갈 계획이 전혀 없고 작년 돗자리의 운명이 기억이 나는데도 아메리카노 한 잔과 바꾼 스타벅스 도장을 보며 아침부터 중요한 성과를 낸 양 뿌듯하다. 지역 맘카페에 접속해보니 이미 도장을 다 받아 핑크색 비치타올을 받았다며 사진들이 올라와있다. 주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비치타올을 갖고 싶은 것은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사회 심리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도장을 다 모으면 꼭 핑크색 비치타올로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0 pm e스포츠 회사, GEN.G와 회의

수면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다보니, 다양한 직업군과 만나 연구를 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과다한 빛 노출이 수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오랜시간 컴퓨터 앞에서 게임 연습을 해야 하는 e스포츠 선수들을 최근에 연구하고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게임중독, 인터넷 중독에 대한 연구를 하지만, 요즘 시대는 매체의 시대라 무조건 나쁘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게임을 직업 삼아 하는 e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기획하고 있어 GEN.G와 컨텍을 해서 미팅을 잡았다.

미팅에 들어가기 전에 게임에 대해 모르는 나는 공부가 필요하다. e스포츠는 전통적인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처럼 선수들을 영입하고, 대기업과 같은 곳에서 후원을 받아 구단을 창립하며 세계 대회에 출전하여 상금을 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통적인 스포츠처럼 팬층이 두텁고, 유튜브나 트위치와 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게임 중계 혹은 스트리밍을 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젊은 선수들로 이루어져있다 보니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e스포츠에 대한 국내 시장의 매출 규모도 2018년에 약 9,821억원으로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 스포츠처럼 e스포츠 선수들도 관리가 중요하다. 실적이 좋아 아마츄어 선수를 영입해도, 실전에서는 이겨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2011년도에 나온 머니볼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빌리 빈이라고 하는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감독은 아마츄어 시절에 각광받는 선수였지만 메이저 리그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영화의 기반이 된 마이클 류이스의 책 『머니볼』베넷 밀러 감독, 2011에서는 이런 빌리 빈의 저조한 성과를 실패 앞에서 기분파가 되어버리는 성향이 크다고 추측했다.

이처럼 신체적 실력 외에도 심리적인 요인, 다른 팀 멤버와의 협업과 의사소통 등과 같은 스포츠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인들이 e스포츠에도 존재한다. 10대후반 - 20대초반의 선수들로 구성된 선수단은 보통 게임 연습을 위해 밤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그 외에도 혼자서는 실력이 출중하지만 오버와치와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이 팀으로 구성되어 협업을 해야 하는 게임 같은 경우에는 팀멤버들과의 의사소통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어린 나이라는 특성과 게임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비교적 적었을 가능성이 있어 소통하는 방법에 미숙할 수 있다.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전통적인 스포츠도, e스포츠도 결국에는 심리적인 요인의 고려가 필요하다.

논현동에 위치한 사옥에 도착하니, 꼭 실리콘 밸리에 있는 회사에 들어간 느낌이다. Gen.G는 외국인이 설립한 회사이기도 하고, 회의실에서 만난 세 명의 관계자들도 서로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수면과 심리학 연구를 하기에 GEN.G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대체적으로 선수들에게 게임 연습만 강조 뿐만 아니라, 식사, 심리, 운동 등 여러 방면에서 선수들의 일상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한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도 회의를 하며 e스포츠 선수들의 수면에 신경을 써야 하는 여러 가지 연구와 이유를 제시한다. 대체적으로 e스포츠 선수들은 이른 새벽에 잠을 자고 늦게 일어나기도 하며, 여러 세계 대회 때문에 시즌 중에 해외 여행이 잦아 시차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을수록 수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게임 중 팬들과의 실시간 중계 채팅창을 볼 수 있는데 부정적인 피드백을 보고 잘 견뎌야 하는 점은 연예인과도 비슷하기에, 심리학적 개입은 이들의 성적에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 관리도 기존의 경험적 방식 보다는 머니볼에서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결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득을 해본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이런 심리학에 기반한 제안이 꽤 설득력이 있었는지 곧 연락을 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으로 회의가 마무리된다.

6:00 pm 사례회의와 슈퍼비전

뒤늦게 학교에 도착한다. 오늘은 한국임상심리학회 산하 연구회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학생이 그 동안 심리치료 받은 사례에 대해 청중 앞에서 공개 슈퍼비전을 받는 날이다. 임상심리전문가라는 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슈퍼비전이란, 아직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수련생이 내담자와 만나 심리치료를 진행한 뒤, 전문가 앞에서 사례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다. 수련생은 아무래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전문가에게 심리치료의 방향이나 공감의 방법, 특정한 정신 장애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상담기법, 감정을 다루거나 물어보는 방법 등에 대해 지도를 수년간 받는다.

오늘 사례를 맡은 수련생이 본인의 내담자에 대한 발표를 한다.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공개하고, 내담자의 근원적인 문제, 본인이 준비해간 치료에 대한 전략과 같은 부분을 공유한다. 수련생은 치료의 전개에 대해 상당히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 나는 내심 불편함이 느껴진다. 수련생의 자부심에 비해 녹취록에서는 내담자의 반응이 냉랭하다. 내담자를 향한 따뜻함과 공감이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초보 상담자의 경우 특정 치료 전략을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꽂혀, 내담자가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에 대해 잠시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치료의 의제를 밀어붙이기 바빠, 내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십수년 전 나의 수련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듣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집에 와서까지 나를 괴롭혔고, 슬픔과 불안의 여운을 안고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이럴 때 치료자가 개인 생활과 내담자의 이야기를 분리하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주지화'라는 방어기제를 흔하게 사용한다.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란, 상황에 대해 감정적 처리를 하지 않고 인지적인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내가 상처를 받거나 오랫동안 부정적인 기분에 스며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불행한 상황에 대한 냉담한 판단만 하고, 나의 감정을 보호하려한다.

이 수련생도 상담 내용에서 개인의 감정가가 모두 빠져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치료 당시 치료자의 감정에 대해 물어본다.

“내담자랑 마주보고 있었을 때 치료자의 기분은 어땠어요?” 
“내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마음도 이해되고, 내담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생의 대답은 교과서적인 정답이긴 하지만, 이 대답 안에는 수련생의 감정이나 진솔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짧은 상호작용에서도 나는 내담자가 느꼈을 치료자의 마음이 읽혀진다. 지적이지만, 따듯하지는 않은.

치료자도 인간이고, 내담자에 대해 서운할 수 있다. 실망할 수 있고,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내담자를 향한 내 감정의 모든 범위에 대해 편안해할 수 있어야 더 좋은 치료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시간이 걸리고, 경험이 쌓여야 하고, 치료자의 개인적인 변인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 되지는 않지만) 너무 꼰대의 잔소리처럼 장황하게 슈퍼비전 하지 않으려고 애써본다. 치료자의 감정을 치료 회기 중에 잘 다루는 방법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며 슈퍼비전이 진행된다.

10:00 pm 취침시간 지연행동

늦게 집에 왔고, 모두가 자고 있다. 우선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는다. 잠을 자기 위해서 나는 렌즈를 빼야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화장을 지우고 씻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잘 준비를 위해 해야 하는 이 모든 행위들은 논문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렵고 버겁게 느껴진다. 중요하지도 않은 뉴스와 별다를 것 없는 SNS을 핸드폰으로 들여다보며 점점 이 수면 관련 행동들을 지연한다.

취침시간 전 지연행동이 길어질수록 잠을 자는 시간이 늦어지고, 불면증과 우울증과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그 시간에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않지만 핸드폰을 보는 것을 멈추기 어렵다. 아마도 하루 종일 바쁜 일정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이 유일하게 이 시간이기 때문에 일종의 나를 위한 보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더 멈추기 어려운 것 같다. 하루 종일 느꼈던 긴장감이 풀리기도 한다. 평소에 자기 전에 이완을 위해 우아한 독서를 하거나 기도를 하겠다는 다짐은 매일 세워졌다가 매일 핸드폰 앞에서 무너져내린다. 오늘 두 번째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심리학교수도 별 수 없는 하루를 마친다. mind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성신여대 심리학과 부교수 및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대외적으로는 정신장애의 원인을 과학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근거기반치료를 개발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이지만 실제로 연구나 생활에서 섭식, 성과 수면처럼 형이하학적 주제에 주로 관심이 많음. 현재는 20년넘게 쌓아온 심리학 지식을 활용하여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유일의 수면심리학자. "사례를 통해 배우는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저자이며, 행동과학과 심리치료 연구실 BEST랩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임상심리학자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꿈인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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