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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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 2023.05.18 21:29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 나란 무엇이고, 어떻게 내가 내 자신을 알 수 있는가? 윌리엄 제임스의 자아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다. 이 문구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즉 자신의 한계점을 인지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심오한 의미로 인해 비록 세 단어(영어로는 두 단어: Know thyself)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구조의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원고에서는 이 문구의 직설적인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논의해 보고자 한다. 즉 나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내가 내 자신을 알 수 있는가?

자아의식

지금 필자는 키보드의 키를 누르면서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간간이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을 잡아 입으로 가져와서 커피를 마시거나, 핸드폰을 집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이용하여 화면에 제시되는 내용을 확인하곤 한다. 이렇게 주변 사물을 필자는 쉽게 조작할 수 있으며, 이렇게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사물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좀 전 필자는 커피를 리필하기 위해서 부엌으로 갔다가 돌아오다가 거실 탁자 모서리에 엄지발가락을 부딪쳤는데 그 통증을 아직도 느끼고 있다. 아울러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손가락 끝을 통해 느껴지는 키를 의식하고 있으며, 거울 속의 얼굴이 자기 자신이란 것을, 그리고 어제 우연히 카페에서 만났던 사람이 수십 년 전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의 대상은 주변 환경을 구성하는 물체들뿐 아니라 나의 통증, 나의 감각, 나의 기억과 같이 내 자신의 생리 및 심리 상태들도 포함한다.

그와 더불어 나는 내가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내가 키보드의 키를 누른다는 것을,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나라는 것을, 내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즉 내가 1인칭의 관점에서 내 자신의 현재 의식 상태나 행하고 있는 행동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내 자신을 의식하는 것을 자아의식self-awareness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의식 과정에서 나 자신은 이 의식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이 의식의 주체 역할을 한다. 영어로 의식하다는 뜻으로 ‘be aware of‘라는 숙어가 있다. 따라서 자아의식은 'I am aware of myself'로 표현할 수 있다. 이 경우 주어와 목적어가 동시에 나 자신이 된다. 이렇게 나의 자아는 두 가지 역할 혹은 기능으로 양분된다. 이런 점을 반영하여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자아를 의식의 “주어로서의 나self as knower or self as I'와 ‘목적어로서의 나self as known or self as Me'로 양분한다.

데카르트의 자아관

자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부터 시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물질적인 육체와 비물질의 마음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중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는 그 소유자가 늙어가면서 피부는 윤기를 잃고 뼈와 골절은 쇠퇴하며 소유자의 사망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소유자의 사망과 무관하게 영원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육체가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마음이라고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분리될 수 있는 물질에 반하여 비물질의 마음은 분리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전체가 하나의 통합된 개체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의 통합된 개체인 것처럼 데카르트는 우리의 의식 상태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필자 눈앞에는 다양한 물체들이 놓여 있다. 이 물체들은 각각 특유의 형태, 크기, 색깔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의식 속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즉 우리 의식은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 상태인 것과 같이 우리의 자아 또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통합된 개체로 생각했다.

윌리엄 제임스의 자아관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지칭할 때 자신을 타인과 구별할 수 있는 외모(얼굴, 키, 체형), 성격, 능력, 취미, 사회적 역할, 자신의 인적 관계, 가치관과 신념과 같은 자기만의 특징들을 든다. 이런 자아가 제임스가 말하는 ‘목적어로서의 자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영어의 1인칭 대명사 소유격 my가 붙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특히 이런 것들은 어느 하나 손상이 되거나 잃어버렸을 때, 예를 들어 누가 나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내 자식을 때리거나, 자주 입던 티셔츠가 오물에 더럽혀졌을 때, 분노, 후회, 애정 등등의 감정이 수반되어 나타난다.

제임스는 이 목적어로서의 자아를 다시 ’물질적 자아material self', '사회적 자아social self', '영적인 자아spiritual self'로 더 세분화시킨다. 물질적 자아는 각 개인의 육체를 포함하여 자신에게 속하는 물질들로 옷, 자동차, 집 등과 같은 것들을, 사회적 자아는 가족 구성원, 친구, 동료 등과 같이 자신이 구축한 사회 연대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정신적 자아는 자신의 의지, 신념, 정신력과 같은 것들을 지칭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여기서 식물은 제외)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주변 환경을 변화시킨다. 이런 자아의 역할을 행위의 주체성agency이라 하며, 이런 행위의 주체적인 역할이 생명체를 무생물과 구분하는 핵심 특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사고와 행동의 주체로서의 자아를 제임스는 ‘주어로서의 자아’라고 칭했다.

통합의 데카르트, 분리의 제임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데카르트는 자아를 하나의 통합된 개념으로 보았다. 이런 데카르트의 생각은 자아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일치한다. 그에 반해 제임스는 ‘주어로서의 자아’와 ‘목적어로서의 자아’로 분리하였을 뿐 아니라. ‘목적어로서의 자아’는 다시 더 세분화하였다. 이렇게 자아란 개념을 다수의 하위 범주로 세분화하여 이해하고자 시도한 제임스는 그 당시 관점에서 볼 때 획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임스의 자아관은 자아 연구를 체계화시킨 초석이 되었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자아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폭하였으며, 자아의 다양한 양상을 반영하여 자아 평가self-evaluation, 자존감self-esteem, 자아-개념self-concept, 자아-지각self-perception, 자아 통제self-regulation 등과 같은 새로운 연구 분야들이 개척되었다. 하지만 이 분야들이 다루는 자아는 모두 제임스의 목적어로서의 자아에 해당한다. 그에 비해 주어로서의 자아, 행위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학자들 간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논쟁의 쟁점으로 남아 있다.

데카르트는 이런 행위의 주체성이 사고의 근원지인 마음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마음은 육체가 사멸되더라도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의 마음은 영혼과 동일시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영혼의 개념을 현대 과학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

뭉크의 「비명(The Scream)」, 1893년 판지 위에 유화, 탐페라, 파스텔, 크레용.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의 절망과 고독을 표현했다.
뭉크의 「비명(The Scream)」, 1893년 판지 위에 유화, 탐페라, 파스텔, 크레용.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의 절망과 고독을 표현했다.

현상학과 자아 장애

현상학은 20세기 초반 후설Edmund Husserl이 창시한 철학 이론이다. 기존의 철학적 관점이 현상을 유발시킨 본질, 즉 원인의 규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현상학은 의식에 나타난 현상 그 자체 속에서 불변요소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최근 후설의 영향을 받은 일부 현상학적 철학자들과 정신과 전문의들은 행위의 주체가 ‘내가 내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유 의식sense of ownership’과, ‘내가 내 행동의 주체’라는 ‘주체 의식sense of agency’, 이 두 개의 하부 의식으로 구현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뒤에서 누가 나를 밀어서 앞으로 한 발자국을 디뎠다 하자. 이 경우 내가 내 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한 발 앞으로 디디는 행동과 달리, 타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행해진 행동으로서, 비록 움직인 것은 내가 소유(소유 의식)하고 있는 내 몸이지만, 나의 의지는 결여되었기 때문에 행동의 주체(주체 의식)는 내가 아닌 것이다.

이 학자들은 더 나아가 이 최소 자아가 와해될 경우 심각한 심리장애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최소 자아의 와해로 나타나는 심리장애를 자아 장애self disorder라고 지칭하며, 대표적인 자아 장애로 조현병을 들고 있다. 조현병은 환각hallucination(감각기관이 자극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을 경험)과 망상paranoid(이치에 맞지 않는 기괴한 생각)이라는 두 개의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으로 각인된 질병이다.

이 두 대표적인 증상과 더불어 다양한 증상 또한 함께 관찰되며 이 증상들은 크게 양성과 음성증상으로 구분된다. 망상, 환각, 사고 과정의 와해로 인해 말과 행동의 체계가 일목요연하지 않고 일관성이 결여된 언어 표현과 같이 정상인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양성증상과, 감정 표현이 감소하면서 단조로워지는 정서적 둔마, 흥미나 의욕을 상실하여 무기력해지는 무의욕증,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무사회성과 같이 정상인들에게서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환자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음성증상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조현병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이질적인 증상들이 동일인에게 혼재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증상들을 하나의 질병으로 통합하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다. 그에 더불어 발병 원인 또한 아직까지 규명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겪고 있는 질병 중 가장 난해한 질병humanity's most perplexing disease”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현병과 자아 와해

현상학적 철학자와 임상 전문의들은 조현병이 난해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질적인 증상에 초점을 맞춘 결과로 해석한다. 그 대신 환자들의 체험을 일인칭 관점에서 구술로 진술하게 한 뒤, 구술된 내용 속에서 변화하지 않은 패턴을 포착하여 질병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구성해 보자는 제안이 제기되었으며, 그 결과 조현병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증상들이 환자들의 자아가 와해ipseity disturbance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행위 주체로서의 자아, 즉 제임스의 ‘주어로서의 자아’를 지칭한다. 앞에서 행위의 주체로서의 자아는 주체 의식과 소유 의식으로 구성되며, 이 두 의식 상태` 최소 자아로 지칭한다고 앞에서 기술하였다. 따라서 조현병 환자들의 증상이 자아의 와해로 인해 발생한다는 주장은 행위자가 자신이 실행한 행위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사실, 자신이 그 행위를 제작한 신체의 소유자라는 사실, 이 두 상태의 인식이 심하게 왜곡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자아의 와해에 대해 현상학적 정신의학자들은 성찰 과다hyper-reflexivity와 자아감 감소diminished self-affection라는 두 기제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성찰 과다는 '일종의 과장된 자기의식으로서 일반적으로 외부 물체를 향한 주의력이 자신을 체험하는 암묵적이어야 할 과정으로 향하는 상태'를 나타내며, 자아감 감소는 '체험하는 주체로서의 존재감, 삶의 중심점인 암묵적인 자아에 대한 배경적 느낌이 감소'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즉 ‘주어로서의 자아’가 ‘목적어로서의 자아’를 제3자인 것처럼 관찰하는 현상(성찰 과다)이 발생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의식은 위축되면서 점진적으로 사라지고(자아감 감소), 주변 사물은 의미를 상실하며disturbed "grip" or "hold", 환자는 궁극적으로 사회로부터 철수하게 된다.

PTSD

최근 연구자들은 조현병뿐 아니라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CPTSD, 이인증 장애Depersonalization Disorder, 공황 장애Panic Disorder, 형식적 사고 장애Formal Thought Disorder, 강박 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등 또한 자아 장애로 분류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질병들 중 PTSD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면, 이 장애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의 기억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침투해 그 사건을 재경험하는 상태와 그 당시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자극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두 상반된 상태가 반복되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지속시키는 심리적으로 긴장된 상태를 지칭한다. 그렇다고 해서 외상에 노출된 모든 사람이 PTSD 증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현재 PTSD를 유발시키는 기제, 즉 무엇이 PTSD를 유발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PTSD는 외상을 경험한 피해자에게 발생하는 증상이다. 하지만 외상에 대인 간 폭력(예, 아동폭력, 가정폭력, 전쟁포로 등)이 추가될 경우 좀 더 심각한 유형의 PTSD가 발생하고 그런 증상을 복합complex PTSD(혹은 CPTSD)라 지칭한다. PTSD와 달리 CPTSD 희생자들은 증상이 더 복합적일 뿐 아니라, 성격의 변화, 정체성 왜곡과 해리 증상 또한 훨씬 심각한 정도로 발현되며, 그런 점을 반영하여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열람(이하 DSM-V)에서는 PTSD의 해리성 하위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외상으로 인해 PTSD 증상이 발현된 희생자들 중, 외상에 노출되던 당시에 해리 경험을 하였을 경우 만성적인 PTSD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벨기에를 점령한 나치에 저항하다 체포되어 악명 높은 나치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한 명의 유태인이 수년에 걸쳐 고문받을 때 자신이 경험했던 해리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그 순간 육체로부터 이탈하였다. 나는 침대 옆에서 그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기력한 나의 육체와 분리되었다. 지금 나는 내 옆에 서 있으며 침대 위에는 조개껍데기 하나가 있었다 ... 나는 지금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그냥 거기에 있다. 그 당시를 회고하더라도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자세에서가 아니라 침대 옆에 서서 누워있는 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을 회상하게 된다.”

최근 몇몇 연구자들은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CPTSD 희생자들에게 관찰된 증상들을 조현병 환자와 이인증depersonalization 환자들에게서 관찰된 증상들과 비교 분석한 결과, 이 세 정신질환 모두 최소 자아의 와해로 인해 발생한 증상일 것으로 결론짓는다. 즉 CPTSD 희생자들 또한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발현되는 주체 의식과 소유 의식의 혼란이 나타나며, 궁극적으로 자아의 와해로 진전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인증이란 위의 나치의 고문을 받던 유대인과 같이 영혼이 자신의 육체로부터 이탈하여 자신을 옆에서 관찰하는 것과 같은 해리 경험을 하는 정신질환이다. 이 환자들은 신체, 팔, 다리에 대한 감각이 왜곡되어 자신이 로봇과 같이 자신의 발화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궁극적으로 사회로부터 철회해 버리게 된다.

맺는말

데카르트는 인간도 동물과 같이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진 기계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비물질로 만들어진 마음이 있어서 육체를 ‘조종’하여 복잡한 문제를 풀고 이성적으로 상황에 대처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비물질로 이루어진 마음과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모든 것, 즉 신체 부위, 성격, 생각 등 육체 내부뿐 아니라 자기의 소유품 등 모두가 자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자아를 ‘목적어로서의 자아’로 지칭하였다. 그에 반해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나, 즉 데카르트의 마음 역할을 하는 자아를 ‘주어로서의 자아’로 지칭했다. 하지만 ‘주어로서의 자아’는 개념화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실토한다.

현재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주체는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모든 분야의 학자들에게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다. 사실 이 개념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생명체를 무생물과 식별시키는 핵심 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문제는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풀어야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행위의 주체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생명의 비밀을 풀게 될 것이다. 최근 현상학적 정신의학자들은 행위의 주체로서 자아가 와해될 경우 심각한 정신장애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며, 그 대표적인 자아 장애로 조현병을 들고 있다. 이렇게 자아 장애는 자아의 와해로 인해 박탈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역설적이지만 자아가 결손된 상태를 통해 우리는 자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mind

김남균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지각심리 Ph.D.
University of Connecticut에서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 뒤, William Paterson University (NJ 주립대학)과 영국 University of Leicester 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각에 근거한 운동 통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퇴행성 뇌질환 환자, 특히 알츠하이머형 치매 및 파킨슨병 환자들의 시각 및 운동 장애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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