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眞), 인공지능이 진리에 도전장을 내민다
최근 10여년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긴 것. 심지어 전문가들조차도 알파고의 전략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다. 바둑에 관해 수천년 동안 축적된 인간 지식에 대한 근원적 물음! 우리가 진리로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정말 참일까? 세상에 다른 진리가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의 한계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무섭기도 하지만, 일견 건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존과 같은 거대한 회사에서 인공지능을 신입 사원 채용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겪은 문제 중의 하나는 여성 지원자들이 자꾸 탈락하는 것이었다. 현재 기계 학습의 패러다임에서 알고리즘은 입력한 데이터에 기반해서 작동하게 되어있다. 전통적으로 남자를 더 많이 뽑아왔기 때문에 그 자료에 의거해서 알고리즘이 여성보다 남성 지원자에 더 가산점을 부여한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똑같이 가진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지 않다.
몇 년 전 우리 학교에 발표를 왔던 연사와 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썼던 재미있는 논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여 성별을 판별하는 기술에 대해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한 논문이었다. 요점은 카메라가 자신들의 겉모습을 보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성별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스템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문은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 연구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보통 새로운 기술을 디자인하고 평가한 논문들이 주류를 이루는 학회인데, 특정한 기술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는 논문이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한 것이 꽤 인상깊었다.
인공지능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우리의 편견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참”으로 알고 있던 것에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기회는 다양성, 공정함, 포용성에의 고찰로 우리를 이끈다.
선(善), 옳음의 판단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다
학부생들에게 가르치는 인간 공학 개론의 마지막 챕터에서 자동화와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을 가르친다. 예전에는 인간이 기계보다 잘하는 일과 기계가 인간보다 잘 하는 일에 대해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경계가 급속도로 무너지면서 과연 인간이 기계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공지능 기술의 첨단에 있는 아마존과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최고 기술자들이 대담하는 동영상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아직 잘 할 수 없는 부분은 “상식을 개발하는 것”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중의 하나는 ChatGPT라는 대형 언어 모델이다. 이 언어 모델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그럴싸한 대답을 보여주어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ChatGPT의 대답이 그럴싸하다 해도 이 모델은 확률에 따라 답변을 내어주는 언어 모델일 뿐, 인공 일반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던 전문가의 언어로 표현해보자면,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ChatGPT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어떤 주제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개와 고양이 혹은 머핀과 머핀처럼 생긴 강아지 사진을 구별할 줄은 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별일 없이 산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를 입력해주지 않아도 무엇이 공공선인지 알고 있다. 때문에 일부의 돈 많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는 기술을,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자율 주행차가 더 보편화되면 시각 장애인들이 자신의 집 앞에서 친구의 집 앞까지 (어렵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할 것이다.
편견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자폐가 있는 노동자와 자폐가 없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효율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일할 때 어떤 특성들이 있고 어떤 과제에서 서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관찰한 후,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돕는 기술에 대한 디자인을 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누가 시켜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스스로 그러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일상에서 매 순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의사 결정을 내리면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웬만큼 판별하면서 산다. 그러니 아직은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하면 어쩌나 고민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애써 대답할 필요는 없다.
미(美),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쫓다
몇 년 전 미디어 아트, 로봇 아트를 연구하는 분들과 함께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과 인터랙티브 예술에 대해 함께 논문을 쓸 기회가 있었다. 기술이 어떻게 예술의 발전에 기여해왔고, 예술의 창의성이 기술의 발전에 어떻게 다시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 서술했다. 가상 현실, 로봇, 그리고 인공지능이 어떻게 예술과 결합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왔고,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이런 글을 쓸 때 항상 제기되는 문제가 인공지능을 하나의 창작자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혹은 협력자로 인정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필자가 알기에는 아직 여러 권위 있는 예술 단체에서 인공지능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예술가들은 기술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받고 있으며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기존에 불가능했던 다른 차원의 예술적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저작권을 가질 수 있는가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논의의 초점은 인간과 기계가 서로 영향을 주며 상호작용하는 사이에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있어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측 말고 우리가 만들어갈 그 아름다움. mind
※ 본 기사는 교수신문과 공동 기획으로 진행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의 다섯 번째 주제, 'AI시대의 심리학'에 관한 기사입니다. 해당글은 교수신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