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나에 대한 느낌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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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나에 대한 느낌적 느낌
  • 2019.07.20 12:00

'More than words'. 미국의 락밴드 익스트림의 세 번째 싱글로, 당시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팝송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Saying I love you is not the words I want to hear from you. It’s not that I want you not to say (당신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 말을 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사랑한다는 말로는 지금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반드시 하게 되는 말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한술 더 떠서 상대에게 나를 말보다 더 사랑해달라고 요구한다. 때로는 내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고, 마음이 말보다 큰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우리는 나보다 빨리 말로 표현하는 사람을 보고 섣부르다거나 가볍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마음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단어를 잘 선택해야 한다. 언어 표현에 민감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고, 나도 내가 한 말에 갇힐 수 있다. 나는 내 마음, 감정,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적절한 말들을 잘 알고 있나, 내가 나를 설명하는 데에 쓰는 말들을 사전적인 의미에 맞게 잘 사용하고 있나.

나에 대한 느낌의 언어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프란츠 보아즈는 1911년, ‘인디언 언어 핸드북’The handbook of American Indian languages이라는 책에서 눈에 대한 여러 가지 에스키모어를 소개했다:  Aput (땅 위에 쌓여 있는 눈), qana (눈이 내리는 것), piqsirpoq (눈이 흩날리는 것), qimuqsuq (바람에 날려 쌓인 눈더미) 등1. 말은 사고를 반영하므로, 외부 자극이나 물리적 실체를 가리키는 데에도 우리가 느끼는 것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자존심, 자존감, 자신감, 자긍심, 자부심. 우리 말에 자기 자신을 얼마나 믿고 좋아하는 지를 일컫는 말이 이렇게 다양한 것을 보면, 우리는 평소에 나에 대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참 많이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다. 자기를 존하냐 신하냐 부하냐를 이토록 세심하게 구분하여 표현하며, 뒤에 심이 붙냐 감이 붙냐에 따라서도 자존심, 자존감의 사용이 구분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존감, 그 말은 일상적으로 자주 쓰고 듣는 말이다.

지식 검색 포털 사이트에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제목에 그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책만 298권이고, 소개의 글에 ‘자존감’이 기재된 책까지 아우르면 무려 4,433권이다. 자존감을 수업하고, 향상시키고,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한단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길래 그런가, 사전적인 의미부터 살펴봐야겠다.
 

피에로 디 코시모 Piero di Cosimo(1462–1522) 시모네타 베스푸치 / 클레오파트라 7세  Simonetta Vespucci /Cleopatra, 나무에 탬페라,1485-90, 57 x 42 cm, 콩테미술관 Musée Condé.
피에로 디 코시모 Piero di Cosimo, 1462~1522.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의 초상화'.  캔버스에 오일. 1485~90. 57 x 42 cm. 프랑스 콩테미술관 소장. 제노바 귀족여인의 초상화지만, 르네상스 미술사학자 바실리G. Vasari는 상의탈의와 뱀, 그리고 그녀의 얼굴모습에 주목하면서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것으로 보았다. 당당한 인상에 우뚝 솟은 코는 그녀가 얼마나 자존심 강한 여인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자존감의 사전적 정의

사실 자존감自尊感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지 않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자존심自尊心을 찾아보면 그건 있다.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 이게 자존심의 사전적 정의이다. 영어self-esteem을 번역할 때 아마도 ‘자존심’으로 번역하자니 좀 마땅치 않은 느낌에, ‘자존’에 ‘감’을 붙여서 ‘스스로를 존중할 만하다고 느끼는 것’을 뜻하길 바라며 만든 말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자존심은 자기를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사전적인 뜻인데, 우리는 흔히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니, self-esteem을 처음 번역한 분은 고민 끝에 자존에 심을 붙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잠깐, 자존심의 용도

자존심은 사전적으로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마음'을 뜻하는데, 사실 우리는 자존심이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걸고 하는 일’이나 ‘자존심이 강하다’는 식으로 사용하면 적절하겠으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더 자주 한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자존심이 상해서 못 참겠다.”
“너는 자존심도 없니?”

우리의 언어 문화에서, 자존심은 이렇게 무시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주장하거나 상대방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제법 결기가 느껴지는 단어, 자존심이 아무래도 영미권 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심리학 용어, self-esteem과 같은 용도로 쓰이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품위를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지키기 어렵길래 자존심이라는 말을 그렇게 쓰고 있을까. 이것은  따로 시간을 내어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자존을 느끼는 마음

자존, 스스로 자에 높일 존이니, 자신을 높이고 스스로 품위를 지킨다는 뜻인데, 그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존심이면 자존을 느끼는 것이 자존감이겠다. 느끼는 것의 주체는 나, 나의 마음이니, 자존감이라는 말은 자존을 좀더 객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둔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에 가깝겠다.  
영어에서 자존감 또는 자존심에 해당하는 단어 self-esteem은 워낙에 존경esteem이라는 단어 앞에 자기self를 붙여 강조한 단어로, 1890년 제임스 윌리엄이라는 심리학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했다.2.

제임스 윌리엄은 self-esteem을 실패에 대한 성공의 비율a ratio of successes to failures, 혹은 하고자/되고자/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대한 성공의 비율success to pretensions ratio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효능efficacy에 가까운 설명이다.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만큼 성공하면 스스로를 가치 있다 여겨 존중한다는 뜻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제임스 윌리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잘 이루지 못할 때, 실패 횟수가 성공보다 많을 때, 스스로를 ‘자존감이 낮다’고 표현할 일인가.

자존감 말고 다른 말로

A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장에 다니는 20대 여성이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어려운 시험에 오래 고생하지 않고 합격했으며,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잘 다니고 있다. 큰 빚을 지고 있지도 않고, 가족 중 누가 중한 지병이 있어 근심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누가 봐도 큰 걱정이 없는 형편인 그는 상담을 위한 첫 만남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 같아요.”

A는 사실 이제껏 살면서 실패에 비해 성공한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제임스 윌리엄의 정의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아야 하는 사람이다. A가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말할 때, 그것은 도대체 자신이 어떻다고 얘기하는 것일까. 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는 어렸을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자기 탓을 하며 살아 왔다. 오랫동안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고 믿었고 자기는 나쁜 사람이니, 어떤 일이건 나설 자격이 없고 잘 하지 못하고 잘 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그는 게다가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는 말의 덫에까지 걸려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많은 경우에 자신이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은 자기 비하와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을 동반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로 A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과 가슴 아픈 상처, 현실에서 뭔가를 성취할 때마다 느끼는 부적절감과 죄책감에 대해 뭘 설명할 수 있을까.

임상심리전문가인 허지원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자존감 높은 사람은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했다. 아주 시원한 표현이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데 심지어 그게 시종일관 높다니, 그런 사람은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존재일 것이다. 자기가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자존감’ 대신 어떤 말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다른 말로 풀어봐야 한다. 자. 존. 감. 자기가 중하다는 느낌?

사실 우리는 ‘감’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여 쓰는 버릇이 있다. 오늘도 TV 홈쇼핑 채널을 켜보면 ‘트렌디한 오버핏의 롱한 길이감으로 가볍게 툭 걸치기만 해도 멋스러운’ 그런 옷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감’, 느낀다는 말이다. 식감은 음식을 씹어 삼켜서 느끼는 것이고, 색감은 사물의 색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길이감? 보기만 해서는 모르고 가볍게 툭 걸쳐봐야 느낀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떻게 해야 느끼나. 내가 중요하고 존중 받을 만하다는 것은 대체 어디로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말장난도 아니고, 내가 중하다는 걸 내가 어떻게 느끼나. 다만 나를 중히 여기고 아끼겠다는 마음은 먹어볼 수 있겠다. 사실 그건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자존, 느낌이 아닌 행위로

Self-esteem은 본래 자존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며, 자존은 느낌이 아니라 행위가 되어야 한다. 셀프-존중이라고 하면 좀 더 쉽겠다. 존중은 셀프로 하라는 거다. 물을 셀프 서비스로 떠다 먹듯이. 존중을 남에게 받으려고 내가 그럴 만 한가 아닌가 따지고 느끼면서 기다리지 말고,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을 굳이 느끼려 하지 말고 나를 소중히 여기면 될 일이다. 셀프로.

또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자존이다. 내가 배가 고프면 “아 내가 배고프구나” 하고, 우울하면 “우울하구나” 하는 것이다.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같으니 좀 풀어 써보겠다. 시쳇말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배고픔을 느낄 때 내가 배가 고픈 게 맞나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두 시간 전에 빵을 먹었는데 배가 고파도 되는 건가.” 이런 식이다. 또 우울할 때에는 “내가 이 정도 일로 우울한 게 맞는 건가.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일로 우울하지 않을 텐데.” 이렇게 자신의 우울을 의심한다.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힘들고 우울해서 힘든데, 배가 고픈 게 당연한가 아닌가, 우울한 게 마땅한가 아닌가 고민하고 스스로를 적절하지 않다 느끼느라 더 힘들다. 이게 흔히 말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모습이다.

바꿔 말해보자. 자존감이 낮은 것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귀중히 여기지 않는 것.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존하지 않는’ 사람이며, ‘자존’은 나한테 필요한 게 뭔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살펴보고 챙기는 것이다. 중요한 사람 대접하듯이 나를 대접하는 것. 예를 들면, 맨바닥에 함부로 앉지 않고 신문지라도 깔고 앉는 것, 과일 한 쪽 먹을 때에도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먹는 것, 그런 게 자존이고, 그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자존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그 말은 이제부터 서서히 덜 쓰이다가 영영 쓰지 않게 되길 바란다. 

자신감이나 자부심으로

내가 이제껏 성공보다 실패가 잦았는지, 내가 보통 기대치보다 능력이 별로인 사람인지 어쩐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지금 이 순간 순간들로 오늘 하루가 이루어지고 그 하루들이 쌓여 일주일, 한달, 일년, 나의 인생이 된다. 내가 오늘 지금 이순간의 내 느낌,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을 때, 스스로에게 밥 한 끼 따뜻하게 신경 써서 대접할 때, 그런 나를 존중하는 경험이 쌓여서 자존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가 남에게도 나에게도 존중 받을 만하다 느껴서 어느 날 ‘자존감이 높은’ 유니콘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여 자존감이라는 말을 꼭 써야겠으면 자신감으로 바꾸어 쓰길 권한다. 자신을 믿는 느낌 또는 자신이 있다는 느낌, 자존감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상태를 기술하는 데에 적절한 말이라 한결 마음에 든다. ‘믿는다’는 것은, 신을 믿는 것 아니고서야 어떤 행위를 목적어로 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OOO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마음. 이렇게 구체적으로 바꿔 쓰는 것을 더욱 추천한다. “나는 자신감이 없어”보다는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될 거라는 자신감이 없어”가 낫고, “나는 시험에 붙을 자신감이 없어”가 더 바람직하다. 가급적이면 좀 더 잘게 쪼개어 생각하는 게 더 좋다. 내가 시험에 붙을 자신감이 있는지 여부보다, 내가 오늘 문제집 두 페이지를 풀 자신감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에게 더 이롭다.

필자가 ‘자O심/감’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부심이다. 자 부 심,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부’ 자를 살펴보자. 짐을 지다, 떠맡다, 책임을 지다라는 뜻이다.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 당당하고 자신을 믿을 수 있다는 뜻 아닐까. mind

 

    <참고문헌>

  1.   Boas, Franz. 1911. Handbook of American Indian languages. pp. 25-26.
  2.  James, William. [1890] 1983.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ISBN 0674706250
박혜연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 Ph.D.
대학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공직자 및 일반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정신건강 문제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이다. 경기도 소방심리지원단 부단장, 보건복지부 전문 카운셀러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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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eeeejk 2020-09-04 22:23:03
멋있어요,, 감탄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