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과 인간의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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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과 인간의 자유의지
  • 2019.07.19 12:00
생존의 갈림길에서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을까? 필자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한 한 심리학자의 소회.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1791~1824년) Théodore Géricaul, 메두사호의 뗏목 Le Radeau de La Méduse(1818-1819년, 캔버스에 오일, 4.91 x 7.16m, 루브르 박물관).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 1818~1819. 캔버스에 오일. 491 x 716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난파된 프랑스 전함 '메두사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함선이 난파된 후 살아남은 15명의 선원과 승객들은 임시 뗏목 위에서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

사례 1: 더들리와 스티븐스 재판 (실화)

배가 난파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선장(더들리), 항해사(스티븐스), 일반 선원 하나, 그리고 견습선원 리처드 파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며칠을 버티다 리처드 파커는 바닷물을 마시고 아파서 사경을 헤매게 된다. 남은 선원들은 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 결국 (어차피 죽을) 파커를 살해한 후 먹는다. 이들은 살아남는다.

사례 2: 안데스 산맥의 생존 (실화)

우루과이 대학 럭비팀이 비행기로 이동 중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다. 죽은 이, 다친 이, 살아 남은 이들이 있다. 식량이 전혀 없고 살아 남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의대생인 한 생존자는 다른 생존자들을 설득한다. 죽은 사람들의 신체는 단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영혼이 아니다. 살아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설득된 생존자들은 시체들 덕분에 살아남는다. 이 의대생은 나중에 우루과이의 대통령 후보에도 오른다.

사례 3: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

인도에 사는 파이의 가족은 동물원을 운영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동물을 싣고 항해 중 배가 난파한다. 가족들은 모두 죽고 파이와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호랑이가 살아남는다. 난파과정에서 몹시 다친 얼룩말을 뜯어먹으려는 하이에나를 말리다, 오랑우탄은 하이에나에게 공격을 받아 죽고, 성난 호랑이는 다시 하이에나를 해친다. 호랑이와 둘이 남은 파이는 호랑이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호랑이가 굶어죽을 뻔한 순간에 물고기를 낚아 호랑이를 살린다. 이들은 끝없이 표류하다 죽은 시체처럼 생긴 무인도에 닿는다. 파이는 섬 가득한 야생채소를 뜯어 먹고 호랑이는 섬에 빽빽하게 살고 있는 미어캣을 잡아먹고 살아남는다.

호랑이의 이름은 미스터 파커다. 더들리-스티븐스 재판에 나오는 견습선원과 이름이 같다.

이 이야기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처럼 기억하는 자에 따라 다른 버전이 있다. 사실 동물들은 상징이다. 얼룩말은 항해 도중 만난 불교신자 청년이고, 하이에나는 잔인한 요리사며 오랑우탄은 파이의 어머니이다. 잔인한 요리사는 다친 불교신자 청년을 먹자고 주장하고, 어머니는 그를 말리다 살해당한다. 분노한 파이는 요리사를 살해한다. 그리고 아마도 파이는 고민하다 죽은 자들을 먹으며 살아남았을 것이다.

두 버전은 사실 같은 사건일 것이다. 다만 채식주의자이면서 식인에 참여했던 파이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채식주의자인 파이는 살아남기 위해 요리사와 식인에 동참했을 것이며, 인육을 먹게 된 죄의식과 분노를 이기기 위해 요리사를 살해했을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호랑이는 계속해서 죽은 다른 동물들의 시체를 뜯어 먹으려 하고 파이는 이를 말리지만, 결국은 호랑이를 살리려 물고기를 낚는다. 시체를 먹으려 하는 이드id와 말리려는 초자아super ego의 갈등에서 파이는 낚시질을 해서 자신은 먹지 않지만 호랑이(실제로는 자기 자신이므로)를 먹인다. 그리고 자아ego는 그 기억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는다.

마지막에서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두 버전 중 어느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겠느냐고?

사례 4: 마이클 샌델과 조나단 하이트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Michael Sandel은 하나의 딜레마를 다르게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생명유지장치로 연명하고 있는 무의식 상태의 환자가 있다. 당신이 생명유지장치를 뽑으면 그의 여러 장기와 각막을 이용해서 여러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당신은 뽑을 수 있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손으로 생명유지장치의 플러그 뽑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 플러그를 뽑아줄 수 있다면 여럿을 살리기 위해서 한 사람의 희생을 눈 감아도 된다고 못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몇 년이 지난 후 샌델처럼 스타가 된 심리학 교수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h는 주장한다. 세상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중 몇 가지에만 관심이 높다. 그 중 가장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평등과 공정성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평등과 공정성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가치에 관심이 '골고루' 있다. 그 중 하나는 집단에 대한 가치이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들은 평등과 공정성의 가치에 펄펄 뛴다. 한편 보수주의자들은 공정함도 중요하지만 집단에 대한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므로 개인이 가진 불평등의 현실을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 때로는 눈을 질끈 감는다고 분석한다.

샌델은 공리주의를 비판하며 절대적 윤리를 주장하는 자들의 옆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다. 공허하다. 전 세계의 모든 생명과 한 아이의 생명을 바꿀 수 없다는 식의 칸트의 생각을 암묵적으로 지지한다. 결국 샌델을 따르면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이트는 심리학자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보수주의자는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을 이해하라'고 변호한다. 의지를 가진 실존적 선택은 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이다. 분석은 멋지게, 행동은 잘 모르겠다는 전형적 심리학자들의 모습이 또 나타난다.

인육의 의미

사람은 살기 위해선 먹는다. 그리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것은 살기 위한 것이다'라는 약육강식의 선택을 '비정한 세상의 공리주의'로 교묘하게 포장하는 행위와 노력은 늘 있어 왔다. 다만 그걸 선택하지 않는 것은 신은 아니지만 인간이 가진 유일하면서도 위대한 소유물인 자유의지다.

우리는 매일 고민한다. 세상의 모든 가난과 윤리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다. 나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다만 우린 각자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요건 그냥 눈감고 하자'이다. 그것이 인육일 수도 있다.

더들리와 스티븐스의 재판 사례에서 미스터 파커는 인육이 되는 희생자의 이름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미스터 파커는 파이가 가진 두 가지 얼굴 중 하나인 인육을 먹어야 되는 벵갈호랑이의 이름이다. 희생자와 인육을 먹은 자들에게 똑같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인육을 먹으려는 자가 인육일 수도 있다는 부조리한 인간의 운명을 잔인한 방식으로 상징한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유대인 수용자는 자기가 가진 마지막 한 개의 감자를 (어차피) 죽어가는 자에게 양보한다. 대신 자신이 굶어 죽기를 선택한다. 운명이든 법칙이든 아랑곳 않고 자유의지에 따라 실존적 선택을 하는 인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mind

김정식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 사회심리 Ph.D.
사회 및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성시대(홍콩)와 웨스턴 워싱턴대(미국)를 거쳐 현재 광운대 경영학과에서 재직 중이다. 문화심리학의 다양한 주제, 조직문화, 대안적 리더십, 및 실존적 행위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조직의 직무동기(2014) 및 조직행동(201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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