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선택했다고요? 사실은, 선택했기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아서 선택했다고요? 사실은, 선택했기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 2019.07.31 12:16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제일 마음에 드는 대안을 선택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선택한 대안을 가장 선호하는 마음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선택이 유발한 선호 변화에 대하여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설명을 소개합니다.

내가고른 열쇠고리가 예쁜 이유

여행을 다녀 온 친구가 기념품을 사왔다며 디자인이 조금씩 다른 열쇠고리 다섯 개를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 가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열쇠고리들을 만지작거리며 살펴보다가 고심 끝에 하나를 골랐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역시 제가 고른 열쇠고리가 제일 예쁜 것 같습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여러 대안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며, 대안에 대한 선호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Samuelson, 1938. 즉, 개인의 주관적 선호가 선택을 결정하는 것으로 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사 결정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선호가 선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이 선호를 결정한다고 합니다Brehm, 1956; Ariely & Norton, 2008. 특히,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여러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한 이후에 내가 고른 것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고르지 않은 것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한다고 합니다Voigt et al., 2019. 왜 그럴까요?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이론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Festinger, 1962.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태도, 의견, 그리고 행동 간의 일치를 지향한다고 합니다. 만약, 태도와 행동이 서로 불일치하는 경우에는 둘 중 하나를 바꾸어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행동은 바꿀 수 없으니 행동과 일치하도록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인지 부조화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여우와 신 포도’에 관한 이솝 우화가 인용됩니다. 여우는 나무에 높이 매달려 있는 포도를 따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결국 포도를 따지 못했습니다. 여우는 포도 따기를 그만두면서 ‘저 포도는 신 포도라서 어차피 따도 먹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포도를 따지 않기로 한 행동과 ‘저 포도는 신 포도’라는 생각은 서로 논리적으로 일치되므로 심리적 불편함이 해소되는 것이지요.

Le renard et les raisins, 1900. ©efeikiss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와 신포도의 이야기는 자기합리화의 전통이 얼마나 오래된 전통인지 말해준다. 위 그림은  1900년대 제작된 여우와 신포도 관련 삽화이다. ©wikipedia

비슷비슷한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의사 결정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A와 B 중에서 A를 선택했을 때, B보다 A를 더 선호하지 않을 경우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A를 더 좋아하고 선택하지 않은 B는 덜 좋아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A를 선택한 행위와 A를 가장 선호하는 마음이 일치하여 심리적 불편함이 없게 됩니다.

선택에 의해 유도된 선호도 변화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선택에 의해 유도된 선호도 변화'change-induced preference change (이하 CIPC)라 부릅니다Izuma et al., 2010. 흥미롭게도, 몇몇 연구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blind choice, 예를 들어, 자극이 너무 짧게 제시되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된 대상이 무엇인지를 이후에 알게 되었을 때에도 CIPC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Sharot et al., 2010; Nakamura & Kawabata, 2013. 단, 이 경우에도 내가 직접 선택했다고 믿는 대상에 대해서만 CIPC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몇 몇 연구에서 컴퓨터가 나를 대신하여 대안을 선택해 준 실험 조건에서는 선택된 대안에 대한 CIPC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Izuma et al., 2010; Sharot et al., 2010. 종합하면,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선택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선호도와 무관하게 ‘내가 선택한 것’을 선호하는 마음이 의사 결정 이후에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최근에는 선택과 관련하여 선호가 변화하는 것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의식적이고, 기억에 의존하는 현상인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상반된 결과들이 공존하고 있어 아직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Voigt et al., 2019; Chammat et al., 2017; Salti et al., 2014.

선택에 대한 자기 합리화

CIPC 현상은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우리 옛말이나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라는 서양의 속담과 반대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게 주어진 떡이랑 잔디라서 그런가 봅니다.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사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개인적인 선택은 자기self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독립적인 자기 개념을 가진 사람의 경우나 개인주의적인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경향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Tompson et al., 2016. 아마도, 나의 선택은 곧 나의 일부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한 선택을 스스로 합리화rationalize하려는 동기가 매우 강한가 봅니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self-rationalization를 위해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것과 자신이 선택한 것 간의 일치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mind

    <참고문헌>

  • Samuelson, P. A. (1938). A note on the pure theory of consumer's behaviour. Economica, 5(17), 61-71.
  • Brehm, J. W. (1956). Postdecision changes in the desirability of alternatives. Th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52(3), 384.
  • Ariely, D., & Norton, M. I. (2008). How actions create–not just reveal–preferences.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1), 13-16.
  • Voigt, K., Murawski, C., Speer, S., & Bode, S. (2019). Hard decisions shape the neural coding of preferences. Journal of Neuroscience, 39(4), 718-726.
  • Festinger, L. (1962).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Vol. 2). Stanford university press.
  • Izuma, K., Matsumoto, M., Murayama, K., Samejima, K., Sadato, N., & Matsumoto, K. (2010). Neural correlates of cognitive dissonance and choice-induced preference chang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7(51), 22014-22019.
  • Sharot, T., Velasquez, C. M., & Dolan, R. J. (2010). Do decisions shape preference? Evidence from blind choice. Psychological science, 21(9), 1231-1235.
  • Nakamura, K., & Kawabata, H. (2013). I choose, therefore I like: preference for faces induced by arbitrary choice. PloS one, 8(8), e72071.
  • Chammat, M., El Karoui, I., Allali, S., Hagège, J., Lehongre, K., Hasboun, D., ... & Navarro, V. (2017). Cognitive dissonance resolution depends on episodic memory. Scientific reports, 7, 41320.
  • Salti, M., El Karoui, I., Maillet, M., & Naccache, L. (2014). Cognitive dissonance resolution is related to episodic memory. PloS one, 9(9), e108579.
  • Tompson, S., Chua, H. F., & Kitayama, S. (2016). Connectivity between mPFC and PCC predicts postchoice attitude change: The selfreferential processing hypothesis of choice justification. Human brain mapping, 37(11), 3810-3820.
조수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 신경과학 Ph.D.
UCLA 심리학과에서 추론과 문제 해결 등 고등 인지의 뇌기전을 연구하였으며, 인지 신경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tanford University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3년간 아동의 수학적 문제 해결 능력과 관련한 뇌의 발달적 변화를 연구하였다.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며 수학적 인지, 고등 인지, 의사 결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