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해서 평가할까? 아니면 평가할 수 있어서 중요할까?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해서 평가할까? 아니면 평가할 수 있어서 중요할까?
  • 2019.08.16 10:30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무엇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 왜냐하면 그 고민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쉽고 빠르게 생각되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역으로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판단의 근거

물건을 사거나 사람을 선발할 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일까? 근거가 있다면, 우리는 그 근거를 실제로 중요하게 염두에 두기는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근거를 신념, 주관, 가치관, 기준 등 다양한 말로 표현한다. 얼마 전에도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 담당자들께서 모인 자리에서도 각자의 주관을 분명하게들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예를 들어, “다른 건 몰라도 긍정적인 사람이 우선입니다.” 혹은 “열심히 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건 크게 개의치 않아요.”

상당히 주관 있는 말씀들이고 그 판단에 중요한 철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판단을 할 때 우리는 거기에 부합되는 중요한 정보를 판단의 잣대로 정확히 잘 사용하는 중일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판단의 대상을 이루는 개별 속성들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기가 힘든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기 때문이다. 예를 통해 조금 더 살펴보자.

티치아노Titian ~1576. 신중함의 알레고리 Allegory of Prudence, 1565, 캔버스에 오일, 75.5×68.4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우리의 신중함은 정말 신중한 것일까.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그림 상단에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현재를 신중하게 행동하라.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망칠 것이다."라는 희미한 라틴어 문장이 쓰여져 있다. 티치아노Titian ?~1576. '신중함의 알레고리', 1565, 캔버스에 오일, 75.5 × 68.4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따로 평가할 때와 함께 평가할 때

한 회사에서 SKY라는 최근 많이 사용되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담당할 대졸 신입사원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려고 한다. 최종적으로 두 사람이 남았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대학과 학과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SKY에 다년간의 경험이 있다. 지원자 A는 졸업학점이 4.3(4.5만점)이고 최근 2년간 SKY를 사용해 20개의 프로그램 제작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지원자 B는 졸업학점이 3.0이고 같은 기간에 SKY를 사용한 프로그램 제작 실적이 40개다.

실제 연구 및 조사 결과, 두 사람의 정보를 한 번에 한명씩 각기 다른 시간에 검토한 심사위원들은 지원자 A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누굴 먼저 심사했는지 그 순서와 상관없이 A가 더 선호된다. 평가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 지원자(A)는 다른 지원자(B)보다 확실히 학업성적이 우수한데요? 이 사람을 뽑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은 “프로그래밍 경력이야 대졸 신입 사원들에게 있어서 크게 중요하겠어? 하지만 학점은 얼마나 전공공부를 잘했는지 확실하게 알려주지!” 등이다. 판단에 도달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두 지원자의 정보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검토한 심사위원들의 선택과 판단의 양상은 달라진다. 지원자 B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의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학점만 좋다고 사람을 뽑을 수는 없잖아? 지원자 B를 봐. 학점은 저조해도 경험이 풍부하잖아?”와 같이 판단을 위한 생각이 더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심사위원들은 두 사람의 프로그래밍 경험의 실제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다 더 심층적으로 알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전 경우와는 달리 판단에 시간을 더 많이 쓰려고 한다.

줏대없는 결정들

왜 이런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일까? 비교를 하기 위한 두 대상을 볼 때 어떤 측면을 더 중요하게 보는가가 우리 자신의 의지대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상황에서는 두 지원자의 정보를 각기 다른 시점에서 평가했기 때문에 상대 비교가 용이하지 않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사람은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 중 심리적으로 처리하기 쉬우며 따라서 두드려져 보이는 측면을 중요한 정보라고 여기는 경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 실적이 20개와 40개의 차이는? 어찌 보면 큰 차이이고 어찌 보면 작은 차이이다. 2배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큰 차이인 것 같지만, 탈락한 다른 모든 지원자들이 잘해야 1~2개의 실적을 가지고 있다면 각각 2등과 1등의 실적이 되면서 그 격차가 크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 격차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정보에 해당한다.

평가의 용이성

하지만 우리는 학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잘 알고 있다. 3.0 정도 받은 졸업생들과 4.0을 넘는 졸업생들을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따라서 참조할만한 대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판단에 사용할 수 있는 더 ‘용이한’ 정보가 학점이다. 그런데 두 대상을 동시에 놓고 보면 이제 비교가 더 쉬워진다. 따라서 더 어려운 질적인 정보도 이제는 기꺼이 고려하려고 한다. 그 결과 B가 더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물론 학점과 경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정보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점과 같이 비교가 쉬운 정보만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은 분명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분야에서 꽤 고집스럽게 관찰되는 것으로 시카고 대학의 크리스토퍼 씨Christopher Hsee 교수와 같은 연구자들은 이를 평가의 용이성evaluability 효과라고 부른다. 일종의 역설이다.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 사람들은 종종 (생각이 용이한 정보만을 사용하여) 더 빠른 시간 내에 결론에 도달하고, 판단이 더 용이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의 생각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결정을 옭아매는, 사소함의 법칙

그래서 때로는 생각할 것이 많아 복잡한 중요한 문제에 더 적은 시간을, 생각이 쉬운 문제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쓰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이를 두고 영국의 사회과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Cyril Northcote Parkinson은 '사소함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큰일을 위한 결정에는 적은 양의 시간과 노력을 쓰는 반면, 작은 일에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쏟아 붓는 수많은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파킨슨의 법칙 초판 표지 이미지
『파킨슨의 법칙』 초판 표지

그의 저서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 1957에 나오는 예 하나를 살펴보자. 영국의 어떤 기업 임원회의에서 공장 신축에 대한 회의가 진행됐다. 소요되는 비용은 무려 1억파운드다. 그런데 이 회의는 단 15분 만에 마무리됐다.

그런데 다음 안건에 대한 임원들의 행동은 정말 재미있었다. 직원들을 위한 자전거 거치대를 본관 앞에 설치할지 결정하는 안건으로 관련된 예산은 불과 3500파운드. 이에 대한 회의는 무려 1시간을 훌쩍 넘게 계속됐다. 게다가 해당 안건에 대해 회의 참석자들은 첫 번째 안건보다 훨씬 더 몰두하고 심지어는 치열한 찬반 논쟁을 벌이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됐다.

쉬운 정보의 유혹

이런 연구들과 현상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대상이나 영역을 불문하고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하려고 할 때 결론에 도달하기가 어려울수록 판단을 쉽게 해주는 정보에 탐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쉬운 정보를 사용하려는 함정에 빠지면 판단에 중요하지만 머리에서 처리하기가 어려운 정보를 이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배제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러니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무엇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과연 그 고민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인지를 말이다. 왜냐하면 그 고민이 머릿속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쉽고 빠르게 생각되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역으로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mind

    <참고문헌> 

  • Parkinson, Cyril Northcote. (1957). Parkinson's Law, or The Pursuit of Progress. 김광웅 옮김. (2010). 파킨슨의 법칙: 왜? 직원 수가 늘어도 성과는 늘지 않을까. 서울: 21세기 북스.
  • Hsee, C. K. (1996). The Evaluability Hypothesis: An explanation for preference reversals between joint and separate evaluations of alternative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67, 247-257.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University of Texas–Austin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Art Markman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했다.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