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미난 일, 그리고 찾아온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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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난 일, 그리고 찾아온 권태
  • 2019.09.03 14:20
일반적으로 내재동기가 높을 수록 성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재동기가 너무 높은 과업은 다른 일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성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원주민도 느끼는 지루함

인간의 정서는 언어에 반영된다. 언어를 살펴보면 그 정서의 시작과 특징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권태boredom는 현대인의 정서라고 알려져 있다. 한 연구자는 호주의 원주민을 대상으로 그들이 지루함을 느끼는지, 언제 느끼는지, 어떻게 표출하는지를 살펴보았다Musharbash, 2007. 그 결과 연구자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언어 자체에는 '지루하다boring'는 표현이 없는데, 그들은 지루함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권태를 표현할 때는 자신들의 언어에서 영어 단어인 'boring'을 그대로 쓴다. 이런 식으로, "Nyampurla punku, boring, junganyiarniyi” (this [place] is bad, boring, very true)".

태초에 인간은 권태를 자주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자원을 축적하는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기계화를 통한 대량생산, 시간의 분절, 정보의 과잉,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신념 등을 경험하게 되었고, 신체를 덜 움직이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권태 경험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요즘 사람들은 권태를 매우 자주 느낀다.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일을 할 때, 심지어 (그렇게 즐거운 것으로 알려진) 대인관계 속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권태를 느낀다Chin et al, 2017.

프랑스 인상주위 화가 마네는 발코니에서 심드렁하게 바깥을 처다보는 여인을 포착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발코니', 1868-1869, 캔버스에 오일,  170 * 124.5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프랑스 인상주위 화가 마네는 발코니에서 심드렁하게 바깥을 처다보는 여인을 포착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발코니', 1868-1869, 캔버스에 오일, 170 * 124.5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지나치게 높은 내적 동기

최근 권태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 중 Shin과 Grant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Shin & Grant, 2019. 이 연구는 권태에 대한 연구라기보다는 내재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대한 연구에 가깝다. 내재동기는 외재적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발현되는 동기로, 내재동기의 긍정적인 역할은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내재동기가 높은 사람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과도 좋고, 창의적인 행동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말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는 식의 조언들이 내재동기의 순기능에 집중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내재동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과가 좋다는 선형적 관계에 대해서 이 연구자들은 물음을 던진다. 특정 과업에서 내재동기가 너무 높을 경우 그 과업을 제외한 다른 과업에서는 권태를 느끼기 때문에 전반적인 성과가 하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재동기와 성과의 관계는 우상향하는 선형 관계라기보다는 뒤집어진 U자형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 내재동기가 낮거나 내재동기가 매우 높은 사람에 비해서 내재동기가 약간 높은 사람의 성과가 제일 좋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권태라고 설명한다.

특별히 즐거운 과업 

일반적으로 직장인의 일은 다양한 수의 과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특정 과업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해당 과업의 특성이 복잡한지, 자율적인지 등의 요인이 내재동기와 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초점을 맞추고 있다. Shin과 Grant는 하나의 과업이 아니라 다양한 과업을 가진 상황을 고려해보자고 이야기한다. 일을 할 때 어떤 것은 특별히 더 즐거움을 주는 업무이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적인 즐거움의 정도가 전반적인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첫 번째는 설문 연구로, 백화점 직원을 대상으로 과업 별 내재적 동기 수준을 측정했다. 백화점 판매직 직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를 판매, 재고관리, 상품 배열 등으로 분류하고 각 업무 별 내재 동기를 얼마나 느끼는지를 측정했다. 직원들이 측정한 자신의 동기와 상사가 평정한 성과의 관계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특정 과업에서 아주 높은 수준의 내재적 동기를 보이는 사람들의 성과는 보통보다 약간 높은 내재적 동기를 지닌 사람들의 성과보다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비효과의 그림자

특정 과업에서 아주 높은 내재적 동기를 느끼는 것은 대비 효과contrast effect를 불러일으켜 다른 과업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감소시키고 비용을 늘이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과업에서 내재동기로 인한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느꼈다면 다음 과업을 수행 할 때 즐거움의 기준이 높아진다. 다음 과업이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권태가 강화되기 때문에 수행이 떨어질 수 있다. 너무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다음의 일을 할 때 권태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두 번째 연구를 진행했다.

두 번째 연구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유튜브를 활용한 실험 연구이다. 참가자들에게 10분 동안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영상을 다른 조건에서는(일반적으로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수학 수업에 대한 영상을 찾아서 시청하라고 이야기한다. 그 후, 지루한 수행과제를 제공하고 수행 수준을 측정하였다. 예상대로 재미있는 영상을 본 사람들이 수학 영상을 본 사람들보다 지루한 과제를 훨씬 더 지루하다고 느끼고 수행 수준 또한 낮았다

삶이 재미있는 일의 연속이 아니라면

내재동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업무의 성과가 높을 것이라는 가정에 대해 해당 연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재동기가 충만한, 아주 흥미 있는 일을 하고 나서 덜 재미있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훨씬 더 지루하게 느껴지고 그 일에 대한 수행이 떨어질 수 있다. 물론, 흥미 있는 과업에 이어서 또 흥미 있는 일을 하는 경우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과 삶이 재미있는 일의 연속일 수는 없다. 다양한 과업을 설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과업 간 즐거움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의 수준을 서서히 떨어뜨리도록 과업이나 일의 순서를 배치하는 것이 직장에서의 효과성을 유지시키고 권태를 덜 느끼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제안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권태를 자주 느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역으로 현대사회는 매우 높은 수준의 즐거운 경험을 많이 제공하는 사회일 수 있다. 달고 단 음식을 먹고 나면 쓴 음식이 더 쓰다고 느껴진다. 일터와 삶에서 느끼는 다양하고 강한 즐거움의 요소가, 지루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을 더 지루하게 만들어서 우리는 이토록 권태를 자주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매우 좋아하는 과업 후에 지루한 과업을 배치하지 않는다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너무 과한 즐거움을 유발하는 경험을 먼저 해서 자극을 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에서 권태를 많이 느낀다면 이 연구 결과를 한번쯤 적용해 보면 어떨까. mind

<참고문헌>

  • Chin, A., Markey, A., Bhargana, S., Kassam, K. S., & Loewenstein, G. (2017). Bored in the USA: Experience sampling and boredom in every life. Emotion, 17(2), 359-368.
  • Musharbash, Y. (2007). Boredom, time, and modernity: An example from Aboriginal Australia. American Anthropologist, 109(2), 307-317.
  • Shi, J., & Grant, A. M. (2019). Bored by interset: How intrinsic motivation in one task can reduce performance on other tasks.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62(2), 415-436.
박지영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산업및조직심리 Ph.D.
사람들이 왜 일을 하고, 일에서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 등 개인의 일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에 관심이 있다. 일의 의미, 지루함(권태)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세대에서 산업 및 조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인공지능과 관련된 중앙대 연구소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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