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조심스러운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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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조심스러운 변
  • 2019.09.05 12:00
저출산/비출산과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모여 진지한 논의를 진행했는데, 꽤나 재미있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저출산이 꽤나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다는 거죠.

필자노트: 종종, '아이를 갖는다는 일은 제게 라식 수술과 같아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살면서 절대로 누구에게도 추천해보지 않는 일'이라 말합니다. 기회가 되어,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개인의 결정들에 비교적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에 여러 심리학적 관점에서 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변을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있는 (아마도) 이성애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제가 보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환경 변화

비혼과 비출산은 분명히 긍정적인 기능도 함께 있습니다. 요즘 많은 기성세대가 ‘대화가 단절되어 있고, 진정한 정을 모른다’면서 전자기기만 들여다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불만을 표출합니다. 물론 스마트폰 사용은 영유아 아이들의 인지기능 발달을 현저히 저해하므로 엄격히 제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인의 경우 관계 단절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정보가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오가면서 서로 평생 만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의외의 관계를 형성하는 사례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SNS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SNS 친구 목록 중 몇 명이 실제 친구인지 그 비율을 확인해보면 인간관계의 확장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가 예상치 못하게 커지고 또 그 관계가 상당히 유동적이라는 것을 체득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한 사람과 꼭 평생을 같이 지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저녁 시간, 기다려주는 사람과 함께 밥을 지어 나누어 먹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일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라 여기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소위 ‘결혼적령기’에 있는 이들은 이제 집에서 나를 기다려줄 누군가를 기대하기보다, 귀갓길에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와 따끈한 치킨 한 마리를 두고 넷플릭스에 새로 나온 영화를 보는 일상을 꽤나 즐겁고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치킨이 맛이 없거나 영화가 재미있다면 SNS에 간단히 이야기를 적고 맙니다. 그러다 누군가 뜻이 같은 사람이 댓글을 달아주면 그도 좋고요.

더욱이 이전 세대와 달리 나이가 들어 결혼하지 않아도 큰 결함이 되지 않는 시대이다 보니, 대인관계에 대한 욕망이나 욕심이 전혀 없는 분들, 즉 지금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에 정신질환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곧 제외될 것으로 예상되는 ‘조현성 성격장애’로 분류되는 이들은 더욱 운신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이전에는 등 떠밀려 억지로 결혼을 했지만 이제 그런 분위기는 아니니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세대와 달리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성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하면서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히 비혼을 결심하는 사례들도 늘고 있습니다. 먼저 현재의 법 제도 안에서는 결혼할 수 없어 제도가 정비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혼인 상태에서 동거를 하고 지내며 결혼에 대한 주위의 압력은 어느 정도 무시하고 지낼 수 있는 이들이지요. 타인과 성관계를 맺는 등 성적으로 얽히는 것에 큰 관심이나 흥미 없이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는 무성애asexuality로 본인의 정체성을 지각하는 사람들도 비로소 비혼을 결심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혼과 비출산이 표면적으로는 큰 사회적 문제로 보이겠으나 그 안에는 이런 긍정적인 측면의 작은 이야기들도 많지요.

어느 시대건  결혼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 William Quiller Orchardson, 1832~1910. ‘The Marriage Of Convenience’, 1883, 캔버스에 오일..
어느 시대건 결혼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 William Quiller Orchardson, 1832~1910. ‘정략결혼’, 1883, 캔버스에 오일. 

느슨한 가족의 탄생

지금은 ‘느슨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진입하는 과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가족은 한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형태의 가족일 것입니다. 이웃집의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식이 동네에 돌기 시작하면 친한 이웃들이 먹을거리, 기분전환 할 거리를 들고 그 집으로 모입니다. 가사를 담당하던 누군가가 잠시 집안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웃들은 반찬을 한 통씩 만들어서는 그 집을 찾아가지요.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형제 등 가족보다는 주위의 친구에게서 물리적, 정서적인 지지를 모두 제공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관계로 맺어진 부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측면의 보살핌을 서로에게 제공하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널리 권장되기도 했던 덕목이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SNS를 토대로 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기민한 반응성과 확장성이 담보되기 때문에 1인 가구 및 비혼 커플과 공동거주(협동조합 형태로 집을 함께 빌리거나 구매해 함께 생활하는 형태)cohousing 가구, 그리고 이혼이나 사별 후 다른 사람을 만나 굳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노인 커플의 숫자는 점차 늘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관점에서 비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권을 위해서 원치 않게 비혼 상태에 있는 커플들을 고려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합니다. 연간 40만 건에 달하던 혼인 건수가 20년 만에 30만 건으로 추락한 프랑스에서는 비혼 상태이나 동거하는 커플의 독신 지위를 인정한 채 가족수당 및 사회보장급여, 소득세 등에서는 결혼과 비슷한 제도적 혜택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을 1999년 도입했고 이는 출산율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내에서도 생활동반자 법률안이 채택된다면 비혼 커플의 경제적,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는 출산을 위한 도구여서는 안 되며, 1차적으로 미혼모, 한 부모, 동성 커플 등의 복지를 위해 고안되어야 하겠고요.

비혼이 결혼보다 더 합당한 이유

여기에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실 부모 세대로서는 자녀에게 결혼보다 비혼을 독려하는 것이 기능적으로는 더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상, 비혼인 자녀들은 외로움도 덜 느끼고 친구 수는 더 많은, 기능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싱글이 부모와 친구를 더 잘 챙기고, 이웃들하고도 더 오래, 자주 시간을 보냅니다. 또, 기혼인 형제보다 미혼인 형제들이 구심점이 되어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일이 더 잦습니다. 이타적인 목적의 봉사단체에서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들이 비혼자입니다. 비혼자나 비출산자들이 ‘느슨한 가구’의 구심점이 된다는 내용의 연구들은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원가족과 사회 전체를 두고 보자면 오히려 지금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 비혼을 장려해야 할 정도로 기능적인 것이 비혼입니다.

사회학에는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결혼 이후 개인의 인지적, 정서적, 물질적인 자원이 자신의 새로운 가족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마 이런 문제를 이미 느끼고 있는 비혼자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형제자매가 결혼을 한 이후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것이 원가족 부양을 회피하는 면죄부가 되어온 사례들을 목격해왔을 테지요. 그런 방식으로 독립을 꾀하는 것이 그 기혼자들에게는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르나, 남겨진 비혼자녀로서는 아이가 없거나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자녀이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므로 비혼 혹은 비출산을 결심하려는 분들께 한 가지 당부를 드리자면, 원가족과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해야 하는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기를 추천합니다. 그래야 본인의 마음을 챙기고 독립된 성인으로서의 삶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지나친 죄책감은 원가족이 살던 집에 두고 가세요. mind

* 이 글은 지난 5월 발간된 『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출산율 제로 시대를 바라보는 7가지 새로운 시선』 (조영태, 장대익, 장구, 서은국, 허지원, 송길영, 주경철 공저, 김영사)에 담긴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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