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 숨겨진 진화론적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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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 숨겨진 진화론적 비밀
  • 2019.10.31 12:54
『소비의 진화심리학』의 저자 윤선길 한신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 인간에게 소비란 무엇일까?
《소비의 진화심리학》윤선길 지음. 발행일 2019.6.5
윤선길. 2019. 『소비의 진화심리학. 커뮤니케이션북스. 

『소비의 진화심리학』이라는 다소 간결한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한 출판사에서 발간된 총서 시리즈 중 하나였다. 다윈C.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60년이 되었고 그에 발 맞추어 초판본이 얼마전 한국판으로 재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하였다. '2020 원더키디'를 못 만날 것이 명약관화하지만 그래도 무려 202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학자들이 다시 진화론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신대학교 경상대학장, 전 한국광고홍보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신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명예교수로 있는 윤선길 교수에게 책과 관련한 인터뷰를 조심스럽게 요청하였다. 인터뷰는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의 편집장인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맡았다. 

Q. ‘소비의 진화심리학’이라는 책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 저자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소비를 바라보고 있다. 상품을 구매할 때에도 꼭 진화를 알아야 하는가? 독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문제를 ‘생존과 번식’ 관점에서 보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A.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모두 다 진화의 결과라고 보면 됩니다. 여타 다른 동물들은 진화의 결과가 몸과 본능에만 남아있는 반면에, 인간은 진화의 결과가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소비제품과 소비문화에도 나타난다는 것이 절대적인 차이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들이 소비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다 ‘생존과 번식’에 이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소비상품과 소비문화 덕분에 인간은 거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지구를 제패하고 심지어 우주에까지 진출해 우주와 관련한 상품을 출시하기에 이릅니다. 진화를 알면 알수록, 인간이 정말 대단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에 식상한 독자도 있겠습니다. ‘아니,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인가?’라고 수긍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적이고 우아하며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독자분이라면 계몽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적 설명이 ‘유전자 결정론’처럼 느껴져 거부감을 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의 특성이 사회화 과정이 아니라 전적으로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이 '유전자 결정론'인데, 요새 그렇게 생각하는 과학자는 없으니 안심하시고요.

진화심리학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태어났고 진화심리학을 빌어 남성의 성희롱, 폭력성, 차별 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규정한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진화심리학을 불편하게 봅니다. 그러나 현대과학과 함께 발전한 진화심리학에 조금만 관심을 갖게 되면 생각이 많이 바뀔 것입니다. 예전에 만들어진 잘못된 인식 때문에 인간 행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또한 하나의 고정관념이 될 수 있으니까요.

Q.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의 과시적 소비를 보거나 힙합문화에서의 ‘flex'를 볼 때면 인간이 합리적 개체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 과시적 소비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실제로 일반인에게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편인가?

A. ‘과시’는 모든 동물세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방법이라면 어떠한 것도 순리라고 보는 것이 진화론의 기본 입장입니다. 자신의 유전적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여타 동물들의 성적 장식물이 인간의 경우에는 ‘소비’로 대체되었을 뿐이지요.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우수하다는 신호를 보내지만, 인간은 자신의 신체보다는 소비 능력 또는 과시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이 우수하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런 신호는 생활에서 브랜드가 담당하고요.

예를 들어, 요즘의 자동차라면 어떤 차든지 대개 원하는 만큼의 속도로 달리고 필요한 만큼 안전합니다. 아무리 작은 경차라도 사실 법적 제한속도 정도는 가볍게 넘겨 과속단속에 걸릴 수도 있지요. 일상생활을 하는데 고급 승용차의 넘치는 파워와 속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 과한 성능이 필요할까요? 넘치는 성능과 사치의 행위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그저 다 과시용으로 보입니다. 타인에게 보이려 하는 것이지요. 

내가 비싼 시계를 사고 자동차를 사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럼 누구에게 무엇을 과시하려는 것일까요? 나의 관심사 안에 들어 있는 타인들입니다. 일단은 과시로 경쟁상대를 제압하고, 그 후에 구애의 대상에게 호감 얻는 수순이 이어집니다. 이때 과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단이지요. 우리 소비세계의 '명품'은 공작의 화려한 꼬리, 사슴의 뿔, 사자의 갈기털, 맹꽁이의 큰 울음소리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재미있습니다.

Q. 플렉스는 맹꽁이의 큰 울음소리와 같다... 그렇게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외모 등 신체적 특성을 바탕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진화적 관점은 이제는 다소 진부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심리적 형질에 대한 내용은 비단 배우자 선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면에서 나와 함께 할 사람을 고르기에 중요한 참조가 될 수 있겠다. 간단한 정보를 소개를 하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A. 지금까지 우리에게 소개된 대부분의 진화심리학 책이 선정적이거나 억지 흥미를 자아내는 제목이나 내용을 많이 다루어서 그런 진부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진화심리학 책 제목이나 부제에 ‘섹스, 진화, 그리고 소비주의의 비밀,’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욕망의 진화,’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등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모두 실재하는 책들입니다. 저도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을 검토하며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다만 이미 도출된 과학적 근거를 부정하는 것 역시 과학자의 자세는 아니기에 진화에 있어 신체적 특성의 중요성은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냥 및 농사일과 관련한 남자의 신체 특성, 건강 및 출산과 관련이 있는 여성의 신체 특성이 매력도와 관련 있다는 내용들은 이미 많은 문헌들에서 제안되었던 가설들이었습니다. 현대 과학은 그런 신체적 특성이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과 같은 호르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지요.

너무 익숙한 내용들이기에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해도 되겠지요. 그러나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환경의 변화와 함께 심리적 형질이 점차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은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신체적 우수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심리적 특성이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농경문화가 시작되면서 근면성과 성실성이 필요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꾸준히 일하는 심리적 특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또한 지능은 진화적 선택과 관련해 새롭게 급부상한 개념입니다. 사회는 일반지능이 높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심지어 짝짓기 대상으로도 지능이 높은 사람을 선호하지요. 유머를 잘 사용하는 사람의 매력도가 높게 평가되는 것은 그 유머를 가능케하는 지능에 대한 추정때문이라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마지막으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개방성이나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화성은 집단생활에 꼭 필요한 특성입니다. 나의 매력도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위에 언급한 특성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차근차근 계발하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나는 성실성을, 나는 개방성을! 하면서요. 또한 이런 심리적 특성을 개발하고 교육하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지요.

Q. 일찍이 심리학의 융합적 면모가 잘 드러나는 분과는 소비자심리였다. 실제로 심리학자로서 처음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사례도 있다. 심리학자로서 더 넓은 단위의 세계를 창의적으로 바라보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A. 진화론은 심리학의 여러 영역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프레임입니다. 인지적, 행동주의적, 정신분석적, 생리심리적 관점 등을 통합하는 것이 진화론이지요. 더욱이 여러 심리학의 관점 또는 이론들이 융합되는 곳이 소비자심리 분야입니다. 최근 인공지능이나 브레인 사이언스 영역에서도 심리학의 기여도가 큰 것처럼 소비자 심리의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에서 언급하였듯이 대니얼 카너먼은 진화심리학 및 인지신경심리학을 기반으로 심리학과 경제학을 연결하는 ‘행동경제학’을 발전시켰고 심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지금의 여러 연구와 업무만으로도 심리학자들은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인간행동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보는 훈련 역시 심리학자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Q. 본인은 진화적 관점에 충실한 소비자인가? 혹시 정말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은 없는가?

A. 솔직히 평소 진화심리학을 생각하며 쇼핑하진 않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기는 하지만요(웃음). 소비를 할 때에 저는 직관에 따르는 편입니다. 느낌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구매를 결정할 때 뭔가 느낌이 안 좋으면 나중에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신체 표지 가설’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상품을 선택할 때 즐거움을 주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Q. 즐거움 역시 진화에 도움을 주니까 그런 쪽으로 어떻게든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진화심리학 책을 왜 이제야 썼나? 좀 일찍 썼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화론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심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A. 제가 심리학을 공부하던 70-80년대에는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없었습니다. 당시 심리학 영역에서는 진화론을 관상학, 텔레파시, 염력처럼 초심리학parapsychology의 한 부류처럼 생각하였지 정통 과학으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진화심리학에 관하여 많은 연구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진화심리학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나오는 심리학개론서들을 보면 매 챕터마다 진화론적 설명을 첨부하는 것이 인상적이죠. 조금 더 있으면 별도의 설명을 첨부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생각할 테니까요.  

Q. 지금도 심리학을 관상학이나 텔레파시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는가?

A. 처음에는 단행본도 아닌 총서 시리즈의 한 권인데 이렇게 책 소개까지 할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에서도 ‘진화’가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기에 혹시 모를 독자를 위해서 이번 인터뷰를 기회로 조금은 길게 설명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진화심리학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는 현실도 감안했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도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가질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소비자의 행동을 볼 때, 한번쯤은 잠시 멈춰 서서 소비자의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독자가 일반인이든 심리학자이든 그런 진화심리학적 시각으로 소비자를 보게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웃음).

사실 진화심리학의 연구 영역은 상당히 넓습니다. 우선 진화생리학에 기초하여 진화심리학을 연구하는 것이기에 기본으로 공부할 것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지구과학과도 친해야 하지요.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모듈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면 또는 인간의 마음이 그 오랜 시간동안 진화된 기제라면 이토록 연구가 방대함이 과연 당연하겠지요. 우리의 심리를 다 다룰 수는 없다면, 진화심리학이라는 거대한 영역을 ‘소비’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번 좁혀보는 것도 진화심리학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한국인지과학회 총무이사.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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