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의 이면: 내가 속한 집단을 더 조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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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의 이면: 내가 속한 집단을 더 조심해야 해!
  • 2019.09.27 13:00
본인이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에 대해 조화를 이루고자 동기화된 문화적 맥락을 집단주의 문화라 말한다. 또한 집단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내 사람들’을 서로 믿고 의지하며 도울 것처럼 묘사된다. 과연 그럴까?

문화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저마다 집단주의를 다르게 정의한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집단주의 문화권의 구성원들이 본인이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에 대해 이른바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문헌에서 집단주의 문화권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려는 존재로서 기술된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작가, 지식인, 예술가, 출판인이 모여 자신들이 선택한 인물의 전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런던 블룸스버리Broomsbury에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토론하며  20세기 가장 지적인 집단을 만들어갔다. 초기 멤버였던 버지니아 울프는 벽면 초상화로 자신의 빈자리를 메웠다.  그림은 울프의 동생  베너사  벨의 작품이다. Vanessa Bell (1879-1961) , '전기작가 모임'The Memoir Club, c. 1943, 캔버스에 오일, 런던 National Portrait Gallery 소장. 

Liu 와 동료들은 최근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내놓은 논문에서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오히려 집단주의 문화권의 구성원들이 개인주의 문화권의 구성원들보다 ‘내 사람들’을 더 조심하고 경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저자들은 특히 집단 안에서 경쟁을 하는 상황일 때 집단 내 구성원들이 비윤리적인 의도나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이러한 ‘내집단 경계’ 경향성이 잘 드러난다고 보았다.

저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세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한 연구에서 집단주의 문화권과 개인주의 문화권의 대표격으로 중국과 미국 각각에서 참가자들을 모집하였다. 참가들에게 집단 안에서 경쟁을 하게 되는 몇 가지 상황을 읽게 하고 시나리오 속 인물이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쓰게 했다.

시나리오의 예는 다음과 같다.

“Mary(중국 버전에서는 Wang Li)는 극단의 배우이다. 극단에서 준비 중인 새 연극이 있다. Mary는 주인공 역할을 맡고 싶어하지만, 다른 배우들도 이 역할을 노리고 있다. 주인공 역할을 얻기 위해 Mary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후 참가자들이 쓴 응답을 크게 세 가지, 즉, 윤리적 행동, 비윤리적 행동, 윤리적이지도 비윤리적이지도 않은 행동으로 분류하고 두 문화권 참가자들의 응답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중국인 참가자들이 미국인 참가자들에 비해 시나리오 속 인물인 Mary 혹은 Wang Li가 비윤리적 행동은 더 할 것이고, 윤리적 행동은 덜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중국에서 높게 나타나는 뇌물 빈도나 ‘꽌시’ 경향 때문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연구에서는 중국 안에서 상대적으로 집단주의적인 벼농사 지역과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인 밀농사 지역을 나누어 비교하였는데 위 연구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즉, 어린 시절 벼농사 지역에서 자란 중국인들이 밀농사 지역에서 자란 중국인들에 비해 내집단, 즉 자기 자신의 집단구성원들에 대한 경계 경향을 더 보였다.

마지막 연구에서는 중국과 미국 참가자들에게 몇 가지 시나리오의 일부를 보여주고 그 시나리오의 이후 부분을 스스로 완성하도록 하였다. 이전 연구들과 다른 점은 참가자들을 세 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시나리오에서 구성원과 경쟁을 하는 정도를 조건마다 다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즉, 첫번째 조건의 참가자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구성원 모두에게 유리한win-win 시나리오, 두번째 조건의 참가자들에게는 자신보다 다른 구성원에게만 명백하게 유리한win-lose 시나리오, 세번째 조건의 참가자들에게는 누구에게 유리하게 될지 모르는 모호한ambiguous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 저자들은 윈-윈win-win 상황이나 윈-루즈win-lose 상황보다 모호한 상황에서 문화 차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았다.

예상대로 윈-윈 상황일 때에는 중국과 미국 참가자들 간 내집단 경계 경향성에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모호한 상황일 때에는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더 큰 내집단 경계 경향성을 보였다. 모호한 상황일 때보다는 문화차가 극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중국인들은 윈-루즈win-lose 상황일 때에도 여전히 미국인들에 비해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경계 경향성을 더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명백하게 모두에게 유리한 상황에서는 집단주의 문화권의 구성원들도 내집단 구성원들에 대해 경계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이 불명확하거나 다른 구성원에게 유리해 보이면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그 구성원들에 대해 더 경계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 연구 결과는 놀랍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한 한국에 살면서 익히 경험해 온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화심리학자들은 내집단과 조화를 이루려는 집단주의의 한 가지 부분을 강조한 나머지, 내집단 속의 치열한 경쟁이라든지 그 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을 믿지 못하는 ‘내집단 경계’라는 집단주의의 또다른 얼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간과해왔다. Liu 등의 연구는 우리가 익숙하게 느껴왔던 현상을 통제된 연구로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앞으로도 집단주의의 개념에 관한 학계의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해 보인다. mind

    <참고문헌>

  • Liu, S. S., Morris, M. W., Talhelm, T., & Yang, Q. (2019). Ingroup vigilance in collectivistic cultur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1817588.
최혜원 University of Virginia 사회심리학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 및 사회생태학적 변인과 행복의 관계, 대인 판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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