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냉동실은 왜 늘 가득 차 있는 걸까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집 냉동실은 왜 늘 가득 차 있는 걸까
  • 2019.11.01 16:53
간혹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하는가? 냉동실도 비우고 묵은 옷도 버리고 싶은데 왠지 내키지 않는가? 보유 효과가 무엇인지 알면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있다.

냉동실: 빈 방 없음!

가끔씩, 우리 집 냉동실을 열어 보면 온갖 음식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게 언제부터 있었고, 쓰다 남은 것인지, 심지어 먹을 수는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왜 우리 엄마는 이런 것들을 좀처럼 버리지 않을까? 과연 이런 일이 우리 집에서만 벌어지는 걸까?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서랍장을 열어보라. 좀처럼 꺼내 쓰지 않는 볼펜, 이젠 촌스러워져 버린 편지지, 거의 쓰지 않은 스케줄러, 어디선가 받은 USB, 심지어 내가 산 것이 맞나 싶은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을 것이다. 만약 서랍장이 텅 비어 있다면, 옷장은 어떤가? 종류별, 재질별, 색깔별, 스타일별로 사계절 옷들이 다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좀처럼 꺼내 입지 않거나 더 이상 입기 힘든 옷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따금씩 '이젠 버려야지'라고 마음먹었다가도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슬그머니 내려놓지 않았나?

단언컨대, 우리 엄마를 포함하여 우리들은 저장강박장애compulsive hoarding syndrome를 겪고 있지 않다. 아마도 나도 그렇고,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물건이 쓸모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지 못해 냉동실과 서랍장을 채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단지 ‘그걸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그냥 둘 뿐이다. 물론 ‘나중에 쓸 수 있어’, ‘갑자기 필요할지도 몰라’ 혹은 ‘아직까진 괜찮아’라는 혼잣말을 하겠지만 말이다.

Cornelis Norbertus Gysbrechts (fl. 1660–1683). ‘Trompe l'oeil. Brevvæg med kamfoder og nodehæfte’, 1668, oil on canvas, 123.5 × 107 cm, Statens Museum for Kunst.
눈에 잘 띄도록 만든 보드판에 찾기 힘들 정도로 메모가 늘어나는 일은 어느 시대나 있는 일이다.  17세기 것은 네덜란드 화가 쥐스브레히츠의 작품이다. Cornelis Norbertus Gysbrechts (fl. 1660–1683). ‘Trompe l'oeil. Brevvæg med kamfoder og nodehæfte’, 1668, oil on canvas, 123.5 × 107 cm, Statens Museum for Kunst.

내가 가진 물건은 값지다

이런 현상은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보유 효과란 ‘자신이 가진 물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그 물건을 내놓는 것을 꺼리는 현상’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중고거래를 해 봤다면, 이 개념은 매우 쉽게 이해될 것이다. 중고거래 상황에서 판매자들은 항상 물건을 싸게 내 놨다고 생각하지만, 구매자들은 언제나 그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가?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판매자들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격을 더 비싸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기 때문에 더 높은 가격을 부른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Kahneman과 동료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Kahneman et al., 1990. 사람들에게 머그컵을 주고, 서로 거래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 판매자가 언제나 구매자보다 높은 가격을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입장이 바뀌었을 때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즉, 3,000원짜리 머그컵을 3,500원에 팔려고 했던 사람이, 그 머그컵을 사야 할 때에는 2,700원만 내려고 했다. 당연한가? 팔 때는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하고, 살 때는 최대한 아끼려고 하니까? 아니다. 실제로 이윤을 얻거나 손해를 볼 일이 없는 조건(즉, 단지 교환만 할 뿐 금전적 이득/손실이 없는 조건)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직 물건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금액이 정해져 있는 쿠폰을 교환하는 경우에는 구매자-판매자 간 가격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3,000원짜리 쿠폰을 3,500원에 팔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보유효과와 손실혐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에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혹은 내가 잘 보관하고 소중하게 다뤄 왔던 것이기 때문인가? 물론, 애착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은 물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원인은 애착이 아니라 ‘내 손에서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손실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이것을 손실혐오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물건을 눈으로만 관찰한 후, 판매가격과 구매가격을 물어봤을 때에도 판매가격이 구매가격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이는 물건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무언가를 내놔야 한다는 것' 자체가 싫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부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엄마가 쓸모없는 것들을 냉동실에 모셔 두고, 우리의 책상서랍이 항상 가득 차 있는 이유는 단지 '버리기 아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유효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Park과 동료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Park et al., 2000. 자동차를 구매할 때 제시하는 옵션에 따른 선택의 차이를 확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옵션 제시방식은 1) 아무것도 없는 기본모델에서 옵션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과 2) 풀-옵션 상태에서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제외시키는 방식으로 구분된다. 두 방식 중에 어떤 것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옵션을 선택하게 했을까?

그렇다. 풀-옵션에서 하나씩 제외시키는 방식을 썼을 때 사람들은 옵션을 덜 빼려고 했고, 평균적으로 1,530만원을 지불했다. 반면, 옵션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을 썼을 때 사람들은 웬만하면 옵션을 추가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평균적으로 1,440만원만 지불했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이미 채워진 옵션을 빼는 것은 아까워한 반면, 없던 옵션을 추가할 때에는 그것이 그다지 쓸모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mind

   <참고문헌>

  • Kahneman, D., Knetsch, J. L., & Thaler, R. H. (1990). Experimental tests of the endowment effect and the Coase theorem.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325-1348.
  • Park, C. W., Jun, S. Y., &MacInnis, D. J. (2000). Choosing what I want versus rejecting what I do not want: An application of decision framing to product option choice decisions.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37(2), 187-202.
부수현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 소비자 및 광고심리 Ph.D.
중앙대 심리학과에서 소비자 및 광고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상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중이다. 왜 점심보다 비싼 디저트를 사먹는지? 왜 예쁜 쓰레기를 가지고 싶어하며, 끝내 허탈한 탕진잼의 유혹에 넘어가는지? 등과 같은 일상 생활속 비합리적 소비행동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