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술에 빠진 미국 심리학계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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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술에 빠진 미국 심리학계의 아버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의 놀라운 통찰력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심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임스는 만년에 강신술에 심취하는 등 특이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는데요, 그의 업적과 행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통찰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좋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과학적이고 엄정한 검증의 노력'과 '현상 뒤에 숨겨진 원리를 파악하는 통찰력'은 아마 과학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계에는 과학적인 검증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통찰에만 의존한, 그러면서도 심리학 역사에서 한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학자가 있다. 윌리엄 제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James Wiliam
James Wiliam (January 11, 1842 – August 26, 1910). ⓒHarvard University

예술가이자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계에서 매우 특이한 존재이다. 1842년 미국의 자수성가한 아일랜드계 이민자 집안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그림과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예술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그는 위대한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집요함이나 엄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학문, 특히 과학에 흥미를 느꼈지만 과학연구에 필요한 세밀한 분류나 측정과정은 매우 지겨워했다. 그가 꽤나 흥미와 소질을 보였던 화학과 생물학을 결국 포기한 이유도 모두 꼼꼼하고 잡다한 잔일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같은 이유로 그는 당시 막 자리잡아가던 실험심리학을 ‘지루함의 극치’로 취급했다. 그는 실험심리학을 '금속기구심리학'Brass instrument psychology라고 불렀는데, 이 말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기 보다는 엄정한 측정도구에 집착하는 실험심리학에 대한 냉소가 담겨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을 과학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 되려는 희망일 뿐”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그렇다고 제임스가 실험심리학을 이해 못했거나 아예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의 최신 실험심리학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던 하버드 대학교 구내에 작은 실험실을 설치했고, 이것이 현재 하버드대학교 실험심리학 연구동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그가 12년간 집필해서 1890년에 내놓은 『심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는 현재까지도 가장 유명한 심리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미국에서 저명한 심리학자 대부분이 이 책을 읽고 심리학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 『심리학의 원리』가 내용은 좋지만 너무 방대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이 책의 축약판을 따로 저술했는데, 1900년대 초반까지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이 두 책이 모두 심리학 강좌의 필수교재로 사용되었으며 학생들은 원래 책을 ‘제임스’, 축약판을 ‘지미’(제임스의 애칭)라고 불렀다. 미국 심리학계에서는 그를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John La Farge (1835–1910). 'Portrait of William James'. 1859. Medium	oil on cardboard.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윌리엄 제임스는 화가로서 꽤 괜찮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John La Farge (1835–1910). 'Portrait of William James'. 1859. Medium oil on cardboard.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통찰력은 양날의 검이었을까

이러한 윌리엄 제임스의 놀라운 성취의 근원은 통찰력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심리학 실험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보는 제임스였기에 그는 실험다운 실험은 단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용히 관찰하는 '내성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원리를 찾아내고 설명했을 뿐이다. 앞서 말한 <심리학의 원리>는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심리학 전공서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수필집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슬쩍 지나가듯이 언급한 여러 가지 현상이나 원리들이 거의 대부분 현대 심리학의 연구주제들이 되었고, 또 그 대부분이 사실로 입증이 되었으니 그의 통찰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정서심리학 이론인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의 제임스가 바로 이 윌리엄 제임스다. 그리고 ‘설단현상’ 이라는 것도 제임스의 책에서 처음 언급되었던 것이며, 최근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기초로 삼은 개념인 ‘사고의 흐름’  역시 제임스의 것이다. 이렇듯 통찰력만으로 대단한 업적을 세운 윌리엄 제임스였지만, 그 통찰력은 그의 인생 후반부를 위대한 학자의 길에서 벗어나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다.

강신술에 빠진 심리학의 아버지

그의 경력이 최정상에 올랐을 즈음부터, 그는 ‘강신술’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강신술은 말 그대로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오는 술법’ 으로서 당시에 많은 유명인사들(그 중에는 아서 코난 도일이나 후디니 같은 사람도 있었다)을 열렬한 지지자로 끌어들일 만큼 인기를 끌었으나, 사실은 거의 100% 속임수에 의존한 사기였다. 강신술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얄팍한 사기꾼들로 죽은 이의 영혼을 빙자해 유산을 갈취하거나 기부금을 얻어내 자신의 부를 축적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당시 심리학계는 이러한 강신술의 허위를 밝히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심리학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강신술에 빠져든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결국 심리학계를 떠나 ‘초심리학파’ 를 창설해서 죽을 때까지 자칭 강신술사나 자칭 초능력자들에 휘둘리며 살았다.

만약 제임스가 자신이 그렇게 경멸하던 그 ‘금속기구 심리학’의 기법들을 적절히 사용했더라면, 그의 통찰력은 분명히 강신술사들이 낚싯줄이나 자석 등으로 죽은 이의 편지를 움직인다던지 책상을 흔들리게 만들어 사람들을 홀린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오로지 통찰력에만 의존했다. 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지금도 분명히 흥미로운 것이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지 않고 접근한 결과 그는 심리학계의 자랑에서 수치로, 심리학의 대표자에서 심리학계가 숨기고 싶어 하는 어두운 역사의 일부로 전락한 것이다.

과학 없는 통찰력의 문제

윌리엄 제임스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매우 간단하다. 통찰력은 극적인 진보를 가능하게 해주는 위대한 지적 능력이다. 하지만 통찰력에만 의존하고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당신은 두고두고 후회할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수없이 많은 판단을 내려야 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정말로 감과 통찰만으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윌리엄 제임스를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들 대다수는 윌리엄 제임스만큼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mind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발달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온라인 게임이용자 한일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시 소재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 심리학자, 글쟁이, 그림쟁이,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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