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의 또다른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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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의 또다른 원인
  • 2019.10.09 16:13
우리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를 흔히 뇌의 문제로 간주하고 정신자극제를 처방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동기에 오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ADHD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들 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트라우마와 ADHD의 상관관계

트라우마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하 ADHD). 언뜻 생각하면 전혀 동떨어진 개념처럼 보입니다. 트라우마는 외부에서 가해져 개인의 삶을 뒤흔들어놓는 충격이고, ADHD는 부주의와 과잉행동, 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 장애, 즉 뇌의 문제라고 이해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종종 ADHD로 진단된 적 있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약간의 의구심이 자라곤 해요. Brown 등의 연구도 비슷한 의문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Brown et al., 2017. 

어린 시절 정신질환을 앓았던 뭉크에서 누이의 죽음은 큰 충격을 다가왔다. '아픈 아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병석의 누이를 그린 작품으로 모두 6개의 모작이 있을 정도로 뭉크가 집착했던 그림이다. 뭉크 Edvard Munch,1863~1944. 아픈 아이, 1896, 캔버스에 오일, 118 × 121cm, Gothenburg Museum of Art 소장.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과 정신질환을 앓았던 뭉크에서 누이의 죽음은 큰 충격을 다가왔다. '아픈 아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병석의 누이를 그린 것으로 모두 6개의 모작이 있을 정도로 뭉크가 집착했던 주제였다. 에두바르드 뭉크 Edvard Munch,1863~1944. 아픈 아이, 1896, 캔버스에 오일, 118 × 121cm, Gothenburg Museum of Art 소장.

Brown 박사는 미국에서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ADHD로 진단된 환자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부주의’, ‘파괴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부모와 선생들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하는 ‘문제아’들이었죠. 그들이 보이는 행동 문제는 전형적인 ADHD 증상이었습니다. 하지만 ADHD의 표준 치료 지침에 따라 이들을 치료해도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박사는 이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며 환경에 주목하게 되었죠. 많은 환자들이 가정과 이웃에서 폭력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각종 스트레스가 일상에 깊게 배어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그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ADHD 진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을 가지고 2011년과 2012년에 미국에서 전국 규모로 실시된 아동 건강에 관한 설문조사 자료를 연구했습니다. 조사는 4세에서 17세의 아동을 둔 부모 혹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동에게 잠재적으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경험들과 ADHD 여부, 심각도의 관련성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어려움, 부모나 보호자의 이혼, 가족 내 약물 남용이나 정신질환, 폭력이 자주 벌어지는 동네에 사는 것, 가정 폭력, 보호자의 죽음 등의 경험을 한 경우 ADHD로 진단되는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이 중 여러 개의 경험에 해당할수록 ADHD의 비율은 더 높아졌고 증상도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림  ADHD 진단 여부에 따른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발생 빈도. 출처 Brown et al.(2017).
그림 ADHD 진단 여부에 따른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발생 빈도. 출처 Brown et al.(2017).

숨겨진 인과관계를 찾아서

이러한 결과를 섣불리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둘의 관계가 트라우마 경험의 결과로 ADHD가 발생한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죠. ADHD는 결과가 아닌 원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은 부모에게 ADHD가 있는 경우에 아동의 ADHD와 아동에게 트라우마가 되는 경험 양쪽 모두에 영향을 줄 수도 있죠. 문제를 ADHD와 트라우마, 둘 중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는 환자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트라우마 과거력에 대한 고려 없이 ADHD로만 진단되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콘서타1)로는 치료될 수 없는 문제를 겪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ADHD는 신경발달장애이지만 ADHD에서 보이는 뇌의 이상을 특정하게 보여주는 표지는 없지요. ‘ADHD 유전자’가 없는 것은 물론이구요, 신경영상학 접근을 통해서도 뇌 활성화나 연결 패턴의 집단 간 차이 혹은 경향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현재로써는 하나의 개별적인 뇌를 보고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기술은 없습니다. 결국 진단을 위해 본인 및 보호자의 보고, 그리고 행동 관찰을 통해 드러나는 증상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단 과정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정보는 흔히 간과됩니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통해 진단이 내려지고, 트라우마라는 진짜 원인은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ADHD와 트라우마가 닮은 꼴인 이유

ADHD와 트라우마 후 증상은 어째서 그렇게 닮아 있을까요? 먼저 각성 수준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저의 각성 수준이 낮고, 자극에 반응하는 역치가 높은 과소 각성이 ADHD에서 나타나는 신경계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집중을 오래, 충분히 유지하지 못하고,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자극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부주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또 원하는 각성 수준에 이르기 위해 더 크고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과잉 행동과 충동성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 시끄러운 소리, 너무 정신없는 움직임이 이들에게는 최적일 수 있는 거죠.

한편 아동기 학대와 방임, 등 잠재적 외상 경험으로 오래도록 압도하는 감정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모든 정서와 신체 감각은 강렬하게만 느껴져 혼란스럽습니다. 그 모든 정서와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정서와 신체 감각을 느끼지 않도록 차단하게 됩니다.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신경계의 적응 방식이죠. 이러한 대처가 지속되면 주변 환경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는 상태, 즉 과소각성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뇌의 구조와 기능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전전두엽 기능의 측면에서도 둘은 닮아 있습니다. ADHD에 대한 영향력있는 이론은 ADHD의 핵심적인 문제를 전전두엽 기능의 어려움으로 봅니다. 전전두엽은 계통학적으로도, 발생학적으로도 신경계에서 가장 늦게 발달하는 영역 중 하나입니다. 감각 정보와 정서를 통합하고, 조율하며, 외부 환경에서 온 정보와 경험을 통해 학습한 정보를 종합해 판단을 내리며,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을 억제합니다. 하지만 전전두엽은 정교하고 섬세한 만큼 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느린 장비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고 있을 때는 전전두엽을 사용할 겨를이 없죠.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우리 뇌는 좀 더 오래되고 빠른 경로에 의지해 생존을 위한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의 긴급 모드를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긴급 모드를 켜면 위험한 상황에 놓이거나 고립되었을 때 사용 전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화, 손전등 등 필요한 기능만 남게 되죠.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뇌는 특히 강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 긴급 모드로 전환된 스마트폰처럼 생존에 필요한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ADHD의 증상과 유사한 행동 조절의 어려움을 보이게 될 수 있습니다. 

증상 뒤의 사회적 상흔 들여다보기

그렇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뒤의 트라우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ADHD의 치료를 위해서는 정신자극제가 널리 사용됩니다. 정신자극제의 원리는 신경계의 기저 각성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자극에 반응하는 역치가 낮아짐에 따라 집중력이 향상되고 행동 조절이 보다 수월해지죠.

문제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뇌의 경우, 각성 수준의 조절에 어려움을 보이기 때문에 과소각성뿐 아니라 과각성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자극제 치료는 오히려 초조함, 과민한 기분 등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트라우마는 부주의와 과잉행동뿐 아니라 정서 조절, 대인관계, 자기개념 등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삶이 나아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트라우마 후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ADHD 진단을 내리는 것은 사회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폭력과 차별, 불평등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이 제거되고, 개인의 이상 행동만이 남게 됩니다. 진단은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되어 개인을 따라다닙니다. 개인은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한 채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이상 행동은 부적응이 아닌 비정상적인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시도가 남긴 흔적임에도요. 사회 구성원들은 이러한 문제를 전문가가 다루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사회 환경에는 관심을 덜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ADHD 뒤의 트라우마를 보지 못하는 현상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ADHD 진단과 이에 대한 처방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왔고, 반면 진단 과정에서 아동기의 트라우마 경험을 확인하는 과정은 널리 자리잡지 않은 것 같아요. 임상가로서 호기심과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만큼이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물어야 하겠습니다. ADHD처럼 보이는 누군가는 사실은 호랑이에게 물려간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요. mind

※이 글은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 홈페이지에서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1 소아 ADHD 치료제로, 메칠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계열의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참고문헌>

  • Brown, N. M., Brown, S. N., Briggs, R. D., Germán, M., Belamarich, P. F., & Oyeku, S. O. (2017). Associations between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nd ADHD diagnosis and severity. Academic pediatrics, 17(4), 349-355.
  • Ruiz, R. (2014, July 7). How childhood trauma could be mistaken for ADHD. The Atlantic. Retrieved  from https://www.theatlantic.com/health/archive/2014/07/how-childhood-trauma-could-be-mistaken-for-adhd/373328/?fbclid=IwAR3s3jBqoc_b_0Ra3khJSuuc0so3luXlcp1YRpau2j7760KXOS0lnq66fCQ
이한별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활동가 심리학 MA
임상심리전문가로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심리지원을 하고 있다. 느슨한 전두엽을 가지고 있지만 절차기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언니들이 멋있어 출근할 힘이 나는 언니 덕후. 사람마음의 기부 회원이 되어 주세요! https://www.traumahealingcenter.org:46084/page_oqyO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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