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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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
  • 2019.10.12 14:00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은 어떨까요? 신장 차이에 따라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연구에 따르면, 직립보행이 가능한 아이과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칼 라르손 Carl Larsson 1853–1919. ’딸 브리타와의 자화상’ ‘Brita and I’, 1895, 수채화.
가족의 전원적인 일상을 자주 그렸던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이 자신의 딸을 어깨에 올려놓은 자화상을 그렸다. Carl Larsson (1853~1919), ‘Brita and I’, 1895, Watercolour, Sweden Nationalmuseum. 

아이의 눈높이에 서서

우리 집 꼬맹이들이 부쩍부쩍 클 때마다 궁금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심리학자의 시각인 만큼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뭔가 사회적, 정서적 경험과 관련된 것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아이들이 눈으로 보는 세상 그 자체에 대한 감각적 차이점을 좀 예상해보려 한다.

먼저 아이들의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른과 비교해 가장 분명한 차이는 성인과의 신장 차이이다. 내 키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위치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무래도 성인인 나의 키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아이들의 경우 물리적인 신장 차이 때문에 성인과 다소 차이가 있는 시각 환경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신장 차이에 의한 시각 경험 차이는 아이들의 운동 능력 제약과 맞물려 환경 내의 사물과 타인에 대한 감각적 판단과 접근, 조작 및 상호작용 과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흥미롭게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 중, 신장의 차이가 시각 경험에 초래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들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성인들 간의 신장 차이가 대개 30cm 이내에 머무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연구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반면에 영유아 연구의 경우에는 직립 보행이 가능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시각 경험 차이를 조사한 연구들이 발견된다.

직립보행의 시각적 경험

예를 들어 기어 다니는 유아의 이마 부위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촬영된 영상을 분석한 결과, 아이의 시선이 대개 바닥면을 향하고 있고 영상 내 등장인물의 얼굴 노출이 흔치 않았다. 반면에 직립 보행이 가능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시선의 범위가 실내 공간의 좌우 위아래로 다양했으며 주변 친구와 어른들의 얼굴 또한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노출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두 경우 어느 쪽이 자연스런 환경적, 사회적 상호작용이 원활할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높을수록 잘 보인다

그렇다면 시각 연구자 입장인 내 관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을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을까?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사물들 간의 중첩superposition 정도의 차이가 가장 분명하게 예상된다. 중첩은 바라보는 시선 상에 위치한 여러 사물들 중 나와 가까운 사물이 먼 곳에 위치한 사물을 가리고 있을 때 발생한다. 만약 눈높이가 높아진다면 먼 곳에 위치한 사물에 대한 가시성이 좀 더 확보되므로 이러한 중첩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 예상되며 결과적으로 주변 환경에 대한 시감각 처리에 있어서 양적, 질적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성인이 이러한 중첩의 영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만큼 아이들에 비해 여러 시각-운동 협응visuo-motor coordination 과제 수행 상황에서 우월한 위치에 놓이는 것은 직관적 수준에서도 분명히 예측 가능하다.

아이가 쉽게 길을잃는다면

중요한 것은, 아동들이 경험하는 이러한 시각 환경이 과연 발달적으로 어떠한 시사점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물론 나는 발달 심리학자가 아닌 관계로 정확한 예상을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관점에서는 그 시사점이 정확히 제시될 경우 아이에 대한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이해에 대한 동기 부여가 가능할 듯싶다. 아마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그려내는 세상이 왜 그리 평면적인지, 낯선 장소에서 아이들이 왜 쉽게 길을 잃는지 그리고 교통안전을 위한 도로 표지판 구성에 있어서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큰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눈높이 차이로 인해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다소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아이들이 사회적 약자이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막연히 치부했던 그 동안의 당연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가 한 가지 마련되는 셈이다. mind

  <참고문헌>

  • 김대규, 현주석. (2018). 신장의 개인차로 인한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경험된 시각장면의 감각적 특성. 한국융합학회논문지, 9(11), 217-225.
  • Clearfield, M. W., Osborne, C. N., & Mullen, M. (2008). Learning by looking: Infants' social looking behavior across the transition from crawling to walking. Journal of Experimental Child Psychology, 100, 297-307.
  • Kretch, K. S., Franchak, J. M., & Adolph, K. E. (2014). Crawling and walking infants see the world differently. Child Development, 85(4), 1503-1518.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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