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는 펭수를 닮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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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는 펭수를 닮아야 하는가
  • 2019.12.02 20:59

<펭수는 자폐아를 닮았는가> 라는 글을 읽고 참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글의 제목을 적을까 하다 저격글은 아니기에 + 어떻게 완곡하게 표현해도 이미 인터넷 세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제목을 명시합니다.)

예리한 관찰과 잘 읽히는 유려한 문체로 많은 분들이 이 글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공유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했던 첫번째 이유는 정신장애인을 '자신에게 주먹질을 하는 천사들'이라는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내 마음 같은 사람도 없다,는 세 가지 대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건 저에게도 해당.. 저는 그렇게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새럼..), 이는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착한 정신장애인'이 있을까요? 그냥 정신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있을 뿐이고, 어떤 날은 누군가 보기에 착한 행동을 했고, 어떤 날은 아닐 수는 있겠지요.

천사같은 정신장애인이라는 표현은 글쓴분 처럼 선한 의도를 가진 개인이 봉사활동을 다니며 개인적으로는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경우는 참 많지요. 다운증후군을 가진 자녀의 부모님들께서도 다운증후군의 여러 특성들과 실제 자녀들이 보이는 사랑스러움으로 본인의 자녀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에 설득하는 글을 쓸 때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선의를 가지고 있기에 선한 눈에는 정신장애인 그룹이 선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 글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은 자폐인 혹은 다른 정신장애인들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이들이 펭수 같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귀엽고, 어느 정도는 반응을 보이며, 어느 정도는 자기 대신 후련한 이야기를 해 주는 모에화된 캐릭터.

선의를 가졌던 표현들은 불행히도 개인 각자가 규정한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사고의 바운더리를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이러한 틀을 벗어나는 정신장애인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의 호감은 금세 다른 종류의 것으로 바뀝니다. 왜 저렇게 공격적이지? 왜 저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왜 어른인 척 하려하지? 왜 내 도움이나 호의를 무시하지?

공감이 높은 경우 공격성이 높아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집단in-group의 구성원들에 대한 공감을 하고 있다보면 외집단out-group 구성원들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성이 높아지는 식입니다. 내 사람들을 공격하다니..!

결국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신장애인을 묘사한 글을 호의적으로 읽은 사람들에게, '펭수 같은 정신장애인'은 내가 형성한 나의 개념 안, 내집단의 일부가 됩니다. 반면 '펭수 같지 않은' 정신장애인을 보게 되면 그 불편감과 언짢음은 결국 '어쩐 일인지 뭔가 펭수 같지 않은' 정신장애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두번째로 그 글이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자폐'아'를 가족으로 하는 사람들와 자폐'인'을 가족으로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소 다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글의 제목에서처럼 이 글은 펭수를 자폐'아'에 비교하고 있기에 열 살 펭귄에 대한 설명이 그럴 듯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폐인을 가족으로 둔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이들은 성인의 시간을 축적한 정신장애인들과 성인의 삶을 공유해야 합니다. 주거, 연애, 성생활, 노부모를 보살피는 문제 등. 당면하는 문제의 질과 양은 큰 차이를 가집니다. 

다만 이 글이 많은 분들에게 찬반을 야기하는 점은 분명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어제 오늘의 관심이 많은 분들을 불편하게 할 것 같아 목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에 저도 여전히 어쩔 줄 몰라하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비틀비틀 갈지자 걸음을 걸으며 분명히 정-반-합의 과정으로 우리의 시선과 관점은 점차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나갈 것이기에,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이 글로 인해 우연찮게 던져진 여러 화두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계속해서 곱씹고 논의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의가 한바탕 지나가면 우리 시대는 조금 더 나은 지점으로 이동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과 다른 속도로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하늘이 내린 착한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신념과 그때그때의 순수한 선의를 바탕으로. mind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홍보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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