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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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가
  • 2019.12.18 15:35

UN 세계 행복보고서

2011년 7월, UN 총회는 사람들의 행복도를 조사하여 정책 입안에 참고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2012년부터 매년 World Happiness Report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150페이지 가량의 보고서에는 전 세계 행복 동향에 대한 조사결과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규명하고 정책에 참고될 만한 중요한 내용(정신질환, 양육, 일과 행복의 관계나 행복의 결과 등)에 대한 조사 결과들이 수록되어 있다. 

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Auguste Renoir.
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Auguste Renoir.

 

이렇게 되기까지는 행복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공이 컸다. 과거에도 한 사회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UN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들이 각종 수치들을 조사해 왔다. 여기에는 1인당 GDP 같은 경제지표들과 함께 의료시스템, 교육, 정신건강, 이혼율과 같은 여러 사회 지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이 분야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안녕Well-being을 객관적 지표만으로 가늠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주관적' 안녕감

한 예로, 몇몇 지표들의 경우 그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경찰관의 수'가 이에 해당된다. 경찰관이 많은 것은 국가가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지만, 그만큼 범죄율이 높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이혼률도 비슷한 경우이다. 이혼은 개인의 삶에서 기분 좋게 지향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혼이 가능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그만큼 보장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사에 포함된 수치들은 과학적 지식이 아닌 담당자들의 직관에 의해 선정된 측면이 컸다. 이에 행복을 연구하던 심리학자들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바탕으로 그들이 행복한지를 가늠해야 하며, 이렇게 측정된 주관적인 행복수준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서한을 UN에 보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를 계기로 매년 UN 행복보고서가 출간되고 있다. 매년 국가별 행복수준과 함께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발표되지만, 그 중 2017년도 보고서에는 처음으로 행복의 사회적 토대를 살펴봤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UN이 행복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 사회적 변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인당 GDP, 건강한 기대수명

정책 입안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보고서에는 1인당 GDP와 건강한 기대수명이 행복에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실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둘을 위해 필요한 조건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1인당 GDP의 경우 사회적으로 형성된 신뢰감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의 경제지표들이 신뢰가 낮은 사회에 비해 높다는 점을 밝히며, 이러한 '신뢰 문화'가 사회의 중요한 자원임을 강조한다. 사회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우리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도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한 기대수명에 중요한 것으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바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임금, 교육 수준과 직업)와 좋은 인간관계이다. 특히 돈독한 인간관계는 여러모로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넒은 인간관계를 지닌 사람들이 감기에 걸릴 확률이 낮고, 인간관계에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을 때 감기에 걸릴 확률이 두 배 가량 높았다고 한다. '너그러움(자선행위)' 또한 건강에 유익했는데, 이는 도움을 받는 사람들보다 베푸는 사람들에게서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능력

사회적 지지는 이미 학계에서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직 이러한 인식이 퍼져 있지 않은 듯하다. 따뜻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1939~44년 사이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던 268명과 보스턴에서 가난하게 자란 456명을 80년 가까이 추적관찰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연구를 30년 가량 총괄하였던 연구책임자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와 현재 연구책임자인 발딩어Waldinger는 행복과 건강에 있어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결국 인간관계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조지 베일런트는 그의 다양한 저서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능력'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UN이 활용한 자료에서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지할 만한 친척이나 친구들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가를 알아보았다.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국가마다 29%에서 99%로 다양했는데,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률이 10% 올라가는 것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국가의 1인당 GDP가 두 배 오를 때 행복을 증진하는 효과와 같다고 보고되었다.  

선택의 자유

행복에 있어 '자유'는 굉장히 중요하다. 행복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빈호벤Veenhoven은 세 가지 자유를 말한 바 있다.

  1. 경제적 자유: 구매하고 싶은 것을 구매할 수 있는지
  2. 정치적 자유: 민주화가 진전된 정도
  3. 개인의 자유: 삶의 중요한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보고서에서 말하는 자유는 개인적 자유에 가깝다. 설문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을 할 때 있어 주어지는 자유에 만족합니까?'라는 질문에 예/아니오로 응답할 수 있었다.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국가마다 26%에서 높게는 98%까지 나타났고, 평균 71%의 사람들이 만족한다고 답변하였다. 국민들이 느끼는 자유도가 10% 높아지는 것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1인당 GDP가 40% 오르는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자선행위와 행복

보고서를 직역하면 '너그러움'이지만, 실제 내용은 사람들이 봉사나 기부 등의 자선행위를 많이 하는가를 뜻한다. 설문 참가자들은 '지난 달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한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아니오로 응답할 수 있었는데,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사람의 비율이 10% 높아지는 것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1인당 GDP가 25% 높아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신뢰/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마지막으로, '정부의 부정부패가 만연합니까?' 그리고 '경제계의 부정부패가 만연합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조사한 신뢰도가 행복한 사회의 조건으로 꼽혔다. 긍정적인 응답이 가장 낮게 나온 경우는 4%, 가장 높게 나온 경우는 98%로 평균 76%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다른 질문에서와는 반대로 이 비율은 낮을수록 좋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계가 투명하다는 말에 회의적임을 알 수 있다.

언젠가 모나 살린 스웨덴 전 부총리와 관련된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최연소 장관과 최연소 국회의원을 거쳐 최연소 부총리가 된 모나 살린이 부총리직에서 사퇴한 일에 대한 보도였는데, 그 이유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법인카드로 초콜릿을 사 먹은 것이 들통났던 것이다. 모나 살린은 개인카드를 냈어야 하는데 실수였다고 해명하였지만, 정보공개를 통해 4차례에 걸쳐 법인카드로 약 34만 원이 계산된 것이 밝혀졌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부총리직에서 사퇴하였다. 이는 1995년의 일이었고, 그 후 모나 살린은 10년 간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행복한 삶, 좋은 사회가 뒷받침한다

경제력은 첫 번째 사회적 토대로 거론될 만큼 중요하고, 한국은 이 영역에서 지금까지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들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법인카드로 초콜릿 사 먹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회.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 아직은 먼 나라의 이야기라 느껴지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분명 과거보다 투명하고 자유로워졌다고 믿는다(따뜻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쪼록 UN의 권고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행복한 사회를 향해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mind

   <참고문헌>

  • Helliwell, J., Layard, R., & Sachs, J. (2017). World Happiness Report 2017, New York: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사회 및 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을 중심으로,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의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민사고 행복 수업'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현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 교과서를 집필 중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심리학 연구들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연세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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