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청소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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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청소에 집착하는가?
  • 2020.01.13 09:00
깨끗해진 집을 보는 것은 즐거우나, 그 수고스러운 일에 집착하는 사람을 보면 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다. 내 안에 있는 불안에서 청소에 대한 집착의 이유를 찾아보자.

청소 안에 또아리 튼 불안

영유아, 초등이 사는 집치고 우리집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맞벌이를 하면서 집안청소하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대충 눈 감고 넘어갈 수도 있으련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집만 보면 사람들이 나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시커먼 불안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고, 심지어 그 불안은 점점 더 커져 갔다.

처음 그 불안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둘째가 태어나면서였다. 날 때부터 폐가 약했던 둘째는 50일이 지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관지염에 걸리기 시작했고, 세 돌이 될 때까지 열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모자랄 만큼 자주 병원에 입원하였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 나는 예약되어 있는 모든 심리상담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해야 했고, 회의를 연기해야 했으며,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상담센터의 다른 상담사들은 나로 인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나는 죽기보다도 싫은 ‘아이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더 청소에 집착하게 되었다.

Vilhelm Hammershøi , 1864–1916. ‘Interior, Strandgade 30’, 1902, oil on canvas, 41×33cm. ©sothebys
19세기 유럽에서는 위생담론이 확산되면서 청결은 중산층과 빈민층을 구획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네덜란드 화가 빌헤름 함메르쇼이는 다소 창백하게 보일 정도가 청소된 방을 보여준다. Vilhelm Hammershøi , 1864–1916. ‘Interior, Strandgade 30’, 1902, oil on canvas, 41×33cm. ©sothebys

불확실한 삶 속의 불안

청소와 정리는 정말 힘든 일이다. 정리해놓아도 어지르는 것은 순식간이다. 세상에 이렇게 소모적인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탈할 때도 많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렇게 청소와 정리에 매달리는 것일까?

삶은 불확실하다. 인간의 진화 과정은 불확실한 삶 속에서 나름대로 규칙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예측하고, 그에 대비한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밝히고 그런 불행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만큼 사람 미치게 하는 것은 없다.

‘내가 삶을 통제하고 있고, 삶은 대체적으로 내가 계획하고 예측하는 바대로 굴러간다’는 생각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인간이 안전감을 갖고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이 위협을 받을 때 불안을 느끼게 된다. 불안은 ‘어떤 일들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집착을 통해 통제감을 유지하려는 시도

불안의 정도가 심해지면 사람들은 몇 가지 자신만의 방법들로 불안을 다루는데 이 모든 것은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삶에 대한 통제감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일들을 가능한 모두 대비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 발표불안이 심한 한 내담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철저하게 발표준비를 함으로써 불안요소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최선을 다해 발표준비를 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발표 후에 만족스럽다는 느낌을 별로 받은 적이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기 전에 이를 회피하면서 산만하게 행동한다. 모임에서 종종 맥락에 안 맞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심각한 얘기라도 시작하면 졸고 있거나 급격히 흥미를 잃고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며 화제를 돌린다. 어떤 사람들은 불안한 상황을 직면하기 싫어서 아예 피해 다닌다.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하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어서’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졸업을 몇 달 앞둔 대학생 내담자의 말은 이러한 심리를 극명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것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들에 집착하면서 통제감을 유지하려는 경우이다. 인지신경과학자 콜린 엘러드Collin Ellard는 그의 저서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뭄바이 최대의 빈민가가 어떻게 자발적인 상업 지구가 되었는지를 개인의 통제감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물과 전기 공급도 일정하지 않고 위생상태도 엉망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으나 자신이 사는 공간에 통제감을 행사함으로써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상상컨대 자신의 집을 열심히 청소하면서, 가족의 가보와 사진, 아이들의 상장들을 벽에 붙이면서 집에 정성을 쏟으며 집에 대한 통제감을 가졌으며, 그것이 자신의 삶,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통제감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삶에 대한 통제감의 의지 표현, 그것이 청소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 당시 나의 주관적 심리상태는 뭄바이 빈민가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한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둘째 아이를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나의 경력과 미래도 불확실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청소와 정리를 ‘열심히’ 하였다. 이것은 삶에 대한 통제감을 어떻게든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나만의 개성을 발휘하여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성장의 표현이었다.

이제는 둘째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커가면서 폐 기능도 점점 좋아져서 이제는 제 누나보다 더 건강하다. 나도 그때처럼 혼란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좀 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위기의 순간,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약해지는 때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살려 나름의 방식대로 삶에 대한 통제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 모든 노력을 격려한다. 때로는 집착처럼 보이고,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이고, 어리석고 지혜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나는 자신의 삶 그리고 세상에 대한 통제감을 갖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특히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에게) 괜찮으며, 당신으로서는 당연한 것이고,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mind

    <참고문헌>

  • Ellard, C. (2016).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문희경 역). 서울: 더 퀘스트. (원전은 2015에 출판)
손영미 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 교수 심리학 Ph.D
임상 및 상담심리학 박사이자 문화사회심리학 박사로, 직장여성과 경력단절여성의 일과 삶의 균형과 진로, 여가와 행복, 정서와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박사학위논문으로는 부모자녀관계와 진로정체감의 관련성에 대한 비교문화연구를 통해 한국적 진로상담모형을 개발하는 연구를 실시하였다. 최근 저서로는 상담사례공부하기(박영사)가 있으며, 역서로는 정서도식치료: 심리상담에서 정서조절(박영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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