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6) 성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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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정체성은 어떻게 발달할까? (6) 성인기
  • 2020.04.13 10:06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 이론가인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알아본다.

이 글은 Erikson, E. (1968). Identity: Youth and crisis. New York: Norton. 의 제3장 The life cycle: Epigenesis of identity  가운데 '성인기' 부분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성인 초기와 친밀감의 발달

성인기의 첫 번째 위기는 친밀감의 위기이다. 이는 정체성 형성이 잘 이루어져 참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이다. 친밀감은 친구, 동료, 연인과 진실하고 상호적인 관계를 맺고,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이 없는 청년은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거나 연인을 여럿 만들면서 친밀감으로부터 도망친다. 이러한 경우는 진정한 친밀감을 개발했다고 보기 어렵다.

청소년기 후기나 성인 초기까지 진실한 친밀감을 성취하지 못할 경우 자기 자신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형식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거나 깊은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만약 사회적으로 진지한 관계를 꺼리는 분위기라면 두 배로 괴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지도 못했고, 타인도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그저 남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성격 문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친밀감의 반대는 차단distanciation이다. 이는 관계를 거부하며 스스로 벽을 쌓고,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힘이나 사람을 파괴하려는 경향성이다. 차단에 대한 욕구는 타인과의 연대를 막고 자신, 또는 내집단과 외집단의 차이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에릭슨에 따르면 이러한 편견은 정치적 선동에 대한 복종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p. 136).

청소년기의 대인관계는 친밀하면서도 때로는 경쟁적이고, 전투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인기에 접어들어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있는 영역의 경계가 점점 확실해지고, 여러 관계의 성격도 분명해지면서 윤리적 감각이 생겨난다. 이는 아동기의 도덕주의, 청소년기의 추상적인 신념으로부터 천천히 이행해 온 결과이며, 성인의 표지이다(p.136).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

프로이트는 정상적으로 발달한 성인이라면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질문한 사람은 복잡하고 심오한 대답을 기대했겠지만, 프로이트의 대답은 간단했다. “Lieben und arbeiten(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 에릭슨은 이 간단한 답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생각할수록 그 의미가 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p. 136). 프로이트가 말한 사랑은 친밀하고 관대한, 성숙한 성적 사랑을 뜻한다. 또한 일은 개인이 사랑할 권리나 능력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유지되는 생산적이고 보람 있는 과업을 의미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완전한 성숙에 다다르기 위한 발달적 조건으로서 성기성genitality을 강조한다. 이는 성적 절정에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데, 단순히 생리학적인 부분을 넘어 상호적인 성적 친밀감과 민감성, 온몸의 긴장을 풀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우리는 아직 이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르가즘의 상호적 경험이 남과 여, 현실과 환상, 사랑과 증오, 일과 놀이의 대비 속에서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분노와 공격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경험은 성에 대한 강박, 파트너를 통제하려는 가학적 욕구를 낮추어 주며, 이는 성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성적 만족이 관계에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p. 136~137).'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성기성의 성숙이 일어나기 전에 성생활은 자기 자신에게 닿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상대를 이기거나 정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도 성인기 섹슈얼리티의 일부로 남지만, 두 파트너는 삶을 함께하면서 처음에는 의식적, 언어적, 윤리적 측면에서 비슷해지다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젠더와 맞는 방식으로 개별화되며 성숙해 간다(p. 137).

인간은 성적 끌림에 덧붙여 사랑의 선택적인 측면을 발달시키고, 이는 배우자 선택으로 이어진다. 이는 배우자와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 단계에서 나타나는 소외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진정한 친밀감을 나눌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친밀감의 결과인 후손과 돌봄에 대한 공포로 인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에릭슨에 따르면, ‘상호적 헌신으로서의 사랑은 (가정생활에서 나타나는) 성 역할 극화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적의를 넘어설 수 있다(p. 137).' 또한 사랑은 포착하기 어려우면서도 대단히 침투성이 높은 문화적 힘의 지킴이다. 이러한 힘은 가정생활에서의 경쟁과 협동, 생산과 양육을 비롯한 삶의 방식에 단단히 얽혀 있다(p. 137).' 성인 초기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우리우리가 사랑하는 것(We are what we love)이다라고 할 수 있다.

성인 중기와 생산성의 발달

인간은 배우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존재이다. "성숙한 성인은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필요로 하며, 성숙 자체가 돌봄을 통해 이루어진다(p. 138).생산성generativity은 다음 세대를 출산하고 양육하며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녀가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이타성을 개발하며, 창의성을 발휘함으로써 양육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성인 초기에 몸과 마음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면서 정체성의 범위를 자신을 넘어 확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잘 개발하면, 자기중심적이던 관심사는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리비도(성적 에너지)를 후손이나 일에 투자하게 된다. 이러한 발달을 이루는 데 실패하면 거짓된 친밀감에 대한 강박적 욕구로 퇴행하게 된다. 또한 침체성, 지루함, 대인관계의 빈곤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철없는 외동아이인 것처럼 행동한다. 에릭슨은 이 사람들이 가짜 개인주의를 핑계로 삼아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도 있다고 말한다(p. 138). 한편 자녀가 있거나 자녀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로 생산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에릭슨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젊은 부모들이 진정한 돌봄의 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원인은 아동 초기에 부모가 심어 준 잘못된 정체성이나, 지나친 자기애에서 찾을 수 있다. 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자신들이 낳은 아이가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생산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부모가 양육에 실패하게 되면, 자녀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생산성을 강화하고 보호하는 사회적 관습에는 성공적인 문화적 전수를 위한 윤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생산성은 인간 사회를 추동하는 힘이다. 인간의 전체 발달단계는 가정이나 일터에서의 문화적 전수를 위한 작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논의한 인간의 강점과 인간 사회는 함께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pp. 138~139).

성인 후기와 자아정체성 통합

긴 세월을 보낸 사람, 사람과 사물을 잘 돌보고, 삶이 주는 기쁨과 실망에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만이 인생 주기 전체에 걸친 긴 발달의 결실을 볼 수 있다. 에릭슨은 이러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자아정체성의 통합integr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p. 139). 그는 통합의 특징으로 삶의 질서와 의미에 대한 믿음, 과거를 인정하고 현재에서 책임을 맡을 준비도 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이를 놓을 준비도 되어 있는 정서적 안정성을 꼽는다.

통합은 자신의 유일무이한 삶에 대한 수용이자, 소중한 사람들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수용이다. 따라서 이는 부모에 대한 새롭고도 다른 종류의 사랑, 즉 부모가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하고 바라는 대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세대에 걸쳐 사회적 질서와 언어를 창조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을 지켜 온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동지애의 감각이기도 하다(p. 140).

정체성의 통합을 이룬 사람은 삶의 방식은 다양하며 사람들은 모두 삶이라는 투쟁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 삶의 방식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는 개인의 삶은 상당 부분 우연에 의해 결정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역사의 한 부분이며 한 사람의 발달적 통합은 인류의 진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pp. 140~141).'

통합의 실패는 절망으로

에릭슨은 임상적 증거, 그리고 문화인류학적 증거를 통해 자아정체성의 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절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140)'고 주장한다. 자아정체성을 통합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절망이 표현하는 것은 삶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통합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느낌이다(p. 140).' 즉 이들은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절망은 관습, 인간,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의미 있는 노년은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선물하는 통합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노년이다(p. 140).' 노년기의 강점은 지혜wisdom로 오랜 지식의 축적을 통해 무르익은 여유로운 재치, 성숙한 판단력, 수용과 이해가 특징이다. 지혜는 혼자서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사회의 전통에는 지혜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p. 140).'

종종 노년기에 철학이나 종교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에릭슨에 의하면 이는 희비가 교차하는 유한한 인생의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는지에 대한 질문 때문일 수 있다(p. 140). 그러나 위대한 철학과 종교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 당대의 문화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p. 140).' 노인들은 삶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초월을 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윤리적인 차원에서 세계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문명과 문화는 개인의 인생에 주는 의미로 가늠될 수 있다(pp. 140~141).'

글을 마치며

이제 우리는 아동기에서 노인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 전체를 여덟 개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로 나누어 모두 살펴보았다. 에릭슨은 다음의 말로 긴 글을 끝맺는다.

사회적 존재인 개인은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정체성 위기에 부딪힌다. () 믿음, 의지력, 목적의식, 능력, 충실함, 사랑, 돌봄, 지혜는 생명력 있는 사람이 보여 주는 강점이며, 사회 속으로도 흘러 들어온다.이러한 강점 없이는 사회가 시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사랑, 훈육, 돌봄의 양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관습 없이는 개인의 강점이 발현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심리사회적 강점의 계발은 개인의 인생 주기, 세대의 변화, 사회구조 모두에 달려 있으며, 이 세 가지는 함께 진화한다(p. 141).

글을 번역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전문을 그대로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다.

프로이트, 에릭슨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이 강조한 초기 발달의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인생 초기의 결핍이 인생을 결정한다거나, 그 결핍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에릭슨이 하고자 했던 말은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모두에게 힘겹고 민감한, 중대한 시기이며,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성인들의 진실하고 애정 어린 보살핌과 우리 시대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통찰력이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이 중요한 발달심리학 이론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mind

신기원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사회 및 문화심리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위험지각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심리학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꿈은 나와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의 길을 찾는 심리학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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