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과 마음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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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과 마음의 장벽
  • 2019.07.10 09:00
통일 후 동독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하나'라는 이상과는 달리, 그들은 적지 않은 박탈감에 고통받고 있었다.독일 사례는 통일이 단순히 정치 경제적인 수준 이상의 과제를 안겨준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일명 대안당)이 득세하고 있다. 극우정당의 등장에는 동서간 '심리적 장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30년이 지났지만, 동서독을 가르는 마음의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사진은 작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대안당 주도의 반(反)난민·반메르켈 집회 모습이다.  

우리 한민족이 부러워한 독일이 통일된 지도 벌써 29년이 되었다. 독일인들은 통일의 감격을 만끽했다. 동독인과 서독인이 서로를 친형제, 오래된 친구보다 더 반가워하며 얼싸안았다. 이렇게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이 보였다.

심리적 통일의 과제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오래지 않아 이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이웃 주민으로, 직장 동료로, 가게의 주인과 고객으로 만나면서 서로에 대해서 불편해했다. 구동독 출신인을 가난한 오씨Ossis’, 구서독 출신인을 거만한 베씨Wessi로 서로 지칭하며 내적통일Innere Einheit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공식으로 제시한 바대로 한 사회가 받은 상처 기간T40년을 더해야 치유Y된다고 하니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통일된 지 4년이 지난 1994년에 독일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서독의 풍요가 단 4년만에 이룩되지 않았음을 동독인들이 이해할 때, 그리고 동독인들은 서독 수준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서독인들이 이해할 때 비로소 심리적 통일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진정한 통일을 이루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양측 주민 간의 상호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독인의 상대적 박탈감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은 1인당 GNP가 약 8,000달러로 서독의 약 24,000달러에 비해 1/3에 불과했다(참고로, 당시 한국은 약 6,000달러). 비록 동독이 공산주의국가 중에 최고 선진국이었지만 결국 경제가 좋지 않아 국민투표를 통해 서독 연방주에 편입되었다. 그 결과, 국유재산인 동독의 공장, 토지 등이 헐값으로 서독의 대자본의 손에 90% 정도가 넘어갔다. 구동독 출신인들 중 200만명 이상(당시 구동독 출신자 수는 약 1,600만명)이 한꺼번에 해고되어 실업률이 폭발적으로 증가되었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한 경우도 구서독 출신인들의 60% 수준부터 임금이 시작하여 점차 조금씩 인상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음을 인식한 구동독 출신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갖기 시작했다.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은 경제성장에 의해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선진국에서 1966Runciman이 제안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절대적 박탈감absolute deprivation, 내용상으로는 실제 빈곤임과는 박탈감이라는 점을 공유한다. 하지만 차이점은,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적 박탈감 수준 이상에 있어도 경쟁관계에 있는 비교대상인 사람이나 집단보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이 상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돈이 없어서 라면도 못 끓여먹는 상태에서는 절대적 박탈감을 가진다. 이와 달리 돈이 조금밖에 없어서 라면을 간신히 끓여먹는 상태인데, 비교대상인 사람이나 집단은 1인당 10만원짜리 음식을 먹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은 한 개인만이 느끼는 개인적 박탈감과 두 사람이 이룬 집단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집단적 박탈감이 있다.

두 종류 모두 중요한데, 독일 통일 후에는 집단적 박탈감이 보다 더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연구 결과를 보면, 통일 된 지 12년이 지나 경제적 여건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에서 구동독 출신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특히, 개인 차원보다는 구동독 출신이란  전제, 즉 집단 차원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 이유는, 구동독 출신인 자신들이 현재 상대적으로 구서독 출신인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게 된 것은 뚜렷하거나 정통성 있는 근거도 없이 자신들을 열등한 집단으로 보고 대우하는데, 이 상태가 변하지 않고, 구서독 출신인들이 집단적 경계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오스텔지아'를 아는가

그 결과, 구동독출신인들은 더욱 더 동독인끼리의 집단을 형성하고, '오스텔지어 - 동독을 뜻하는 ‘Ost’와 향수를 뜻하는 ‘nostalgia’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 - 현상을 보여서 결국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자신들을 분단 이전보다 더 못살게 굴고 억압했던 공산당의 후신인 ‘The Left Die Linke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구동독 출신인들의 집단적 차원의 상대적 박탈감에 구서독 출신인들 중 일부가 동정을 하고 합세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과거에 상대적 박탈감은 단순히 소소한 사회적 갈등 수준을 넘어서서 대중 폭동이나 혁명 등의 파괴적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왔다. 물론 독일의 경우에 이러한 정도의 문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스킨헤드skin head 청소년들의 집단적 일탈과 범죄 등의 문제로는 나타났다.

통일 독일 이후 비교적 사회복지적 정책을 잘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경쟁이 심하고 빈부격차가 큰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구동독 출신인들의 상대적 박탈감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고 현재도 북한 이탈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북한 주민이 원하는 것

이러한 시사점을 토대로 국내에서도 2004년에 북한 이탈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다룬  연구가 있다. 연구 결과,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높을수록  개인적 정체감과 한국 국민으로서의 집단적 정체감도 높았지만 정신건강은 더 낮았다.  이러한 양상은 향후 한민족이 통일되었을 때 북한주민들에게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동독총리였던 로타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 re 남북이 통일을 꿈꿀 때 북한 주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남한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조언을 했던 점에서도 이 문제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특히, 남한 내에서도 점차 부동산 폭등 등의 문제로 주택 소유자 특히 다주택 소유자와 주택 미소유자 간에, 장년층과 청년층의 빈부격차와 직업 선택 기회의 차이 등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상황에서 현재의 북한 이탈 주민 상황과 미래의 북한주민의 상대적 박탈감 문제를 어떻게 예방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mind

 

채정민 서울사이버대 심리상담학부 교수 문화및사회심리 Ph.D.
문화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내가 아니면 누가?’라고 생각하며 통일심리학을 구축하고 있다. 심리학자의 사회기여에도 관심이 깊어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을 위해 재난안전심리 분야에서 정책자문과 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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