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행동과 가치의 이중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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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행동과 가치의 이중구조
  • 2019.07.16 10:48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여러 측면에서 꽤 훌륭하고 인정할 만한 사회로 생각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유독 그 당사자들만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20세기 제 3세계 국가 중에서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모두 달성한 롤모델로 한국을 꼽은 적이 있다.1 실제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역경을 딛고 이룩한 지금의 모습을 보면, 우리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비난하고 한국인을 비하하기 일쑤다. 왜 그럴까?

일제 강점기, 서구 중심적 사고 가져와

우리의 부정적 사회인식에는 여러 원인이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필자는 그 중의 하나를 우리의 역사적 사실 특히, 일제 강점기에서 찾고자 한다. 구한말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자, 그 시대를 이끌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망국의 원인을 과거의 전통에서 찾았다.2 즉 근대 이전 조선시대의 여러 병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병폐 중에는 전통적 사상의 원류인 유학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식민시기 한국인들은 일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서양에서 구했다. 서양의 문물을 하루 빨리 받아들여 과거를 청산하는 것만이 나라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전통은 곧 봉건, 야만, 미개, 나쁜 것, 타파의 대상이 되었고, 서양은 곧 근대, 문화, 개화, 좋은 것, 모방의 대상으로 급부상하였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이고 맹목적인 논리는 일상의 영역까지 급속히 침투했다. 그래서 일례로 전통적 의복과 두발도 혁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가치관은 급변했다. 그들은 전통적 가치 중에서 인본주의와 이타주의처럼 긍정적으로 보이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를 폐기하면서 그 자리를 원칙주의, 평등주의, 진보주의와 같은 서구의 가치로 대체했다.2 특히 서구의 이러한 가치를 자신들 판단체계의 핵심 요소로 여겼다. 이와 함께 한국인들은 이러한 가치를 자신들이 하는 행동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잣대로 삼았다. 

박수근朴壽根, 1914~1965. '뺄래터', 1950, 캔버스 유화, 50.5 x 111.5 cm, 현대갤러리 소장.  박수근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50년대 서구 화풍을 답습하는데 급급했던 시절, 우리 산하에서 즐겨 만나게 되는 마멸된 화강암 표면을 연상시키는 기법을 통해 한국인의 서민적 삶과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나의 그림이 유화이긴 하지만 동양화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고와 행동이 따로따로인 한국인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삶은 이러한 판단체계의 가치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즉 그들의 실제 삶은 주로 이기주의, 물질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귀속주의, 편법주의처럼 서양과 전통의 부정적 가치에 근거했다.3 그래서 그들은 원칙, 평등 그리고 인본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편법, 권위주의와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말하자면 행동을 평가하는 가치와 그 행동을 지배하는 가치는 서로 대척점에 있어 그 사이의 간극이 매우 컸다.

어느 사회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표는 자신들의 현재 모습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본래 이상이나 목표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러한 간극이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나라는 과거의 전통,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의 목표가 같은 방향, 같은 선상에 있는 사회이다. 그들의 이상과 목표는 역사와 전통에 기초하여 세워지고, 그들의 삶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의 현재 삶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개선의 대상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삶은 과거의 전통이나 역사를 반영한 것도 이상과 목표를 충분히 반영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찍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청산하고자 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상으로 채택한 서구의 가치들이 자신들 삶을 지배할 만큼 그 뿌리가 탄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삶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과는 정반대로 나아갔다. 우리의 경우처럼 사회적으로 공유한 뿌리 깊은 이상과 목표가 없을 때, 그 구성원들은 이기적으로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기 마련이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한국인의 행동이 자신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원칙을 잣대로 볼 때 편법에 기반한 행동이 좋게 보일 수가 없고, 인본과 이타주의를 강조하는 눈에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물든 행동이 바람직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보이는 현재의 모습은 이상과 목표를 위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전적으로 폐기해야 할 거부의 대상일 뿐이다.

잘못은 모두 '남의 탓'

이처럼 한국인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리와 그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정반대의 속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눈에 그들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즉 한국인들이 하는 거의 모든 것이 그들의 눈에는 삐딱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삐딱한 시선을 강화하는 것이 나쁜 행동의 발생에 대한 왜곡된 지각이다.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을 범하지 않는다고 왜곡한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알아보기 위해 꽤 오래 전에 대학생과 성인들에게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행동을 자신과 남들이 얼마나 하는지 평가하도록 요청했다.4 그 결과, 참가자들은 이러한 행동을 자신보다는 남들이 훨씬 더 많이 한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했다면, 참가자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타인에 대한 평가와 그 평균이 같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가 오늘날에는 다를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 역시 찾기 어렵다.

이처럼 부정적 행동의 발생에 대한 자기중심적 인식은 한국인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한국사회를 험담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모든 원인과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회가 보이는 지금의 모습에 자기 자신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면, 남 탓만 하기 보다는 자신의 처신과 행동을 좀 더 바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실질적으로 나아지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발전, 긴 안목으로 봐야

우리가 원하는 사회적 변화는 보통 느리게 오는 법이다. 그러한 변화에 관여하는 대립적인 요인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바라거나 변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변화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꾸려 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다행스럽고 희망적인 점은 한국사회가 우리가 비난하고 분노하는 것만큼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이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개선되지 않아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안달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를 비교해 보라. 한 사례를 들어보자. 여러 대의 탱크가 대학교 정문을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지금의 대학생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이 기껏해야 40년 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짧은 시간에 우리가 이룩한 정치적, 경제적 발전은 인류의 근대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조금만 더 길게 보면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나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람들이 그저 세상에 대한 한탄이나 비난만 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노암 촘스키가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롤모델로 꼽은 것, 우리 스스로 그것이 립서비스 이상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mind

   <참고문헌>

  1. 노암 촘스키(2007, 이종인 역). 『촘스키, 사상의 향연: 언어와 교육 그리고 미디어와 민주주의를 말하다』, 서울: 시대의창.
  2. 김진송(1999).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서울: 현실문화.
  3. 정태연, 한광희(2001). 「20대가 지각한 청소년과 성인과의 세대차이」. 『한국노년학』, 21(1), 1-14.
  4. 정태연, 송관재(2006). 「한국인의 가치구조와 행동판단에서의 이중성」.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12(3), 49-68.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및문화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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