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만큼 건강에 신경을 쓰는 국민도 흔치 않다. 보통 그들은 몸에 좋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기필코 구해서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소위 ‘먹방’이라는 수많은 TV 프로그램의 열풍도 그렇고, 건강과 관련된 운동, 의료, 식품에 대한 프로그램을 봐도 한국인의 건강에 대한 열정과 집착은 가히 엄청나다. 2017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병원을 찾은 횟수만도 평균 16.6회로 OECD 최상위다. 그럼 이런 덕택에 한국 사람들은 정말 건강한가? 그들은 자신이 정말 건강하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인 30%만 건강하다고 생각
며칠 전 보건복지부는 ‘OECD 보건통계 2019’에 나오는 주요 지표의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의 기대수명은 82.7세로, OECD 36개 국가(전체 평균 80.7세) 중 5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이 자신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OECD(전체 평균 67.9%) 최하위에 해당하는 29.5%에 불과하다.
이 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극적이다. 가령, 프랑스인과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각각 82.6세, 78.6세인데 그들의 주관적 건강 양호 비율은 67.4%, 87.9%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질병 때문에 더 많이 사망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한국, 프랑스, 미국의 십만 명 당 사망자수를 보면, 암 165.2, 197.7, 180.6명, 순환기계 147.4, 157.3, 254.0명, 호흡기계 75.9, 46.4, 81.2명, 그리고 치매 12.3, 19.8, 35.0명이다.
건강 상태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소위 '골골거리는' 80세까지 산다는 얘기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다른 나라의 통계치를 고려해 보면, 우리 국민들이 병약하게 살다 죽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실제 건강 지표는 좋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건강상태는 안 좋다고 생각할까?
건강을 위한 기준들
한 가지 이유로, 건강 혹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준이나 조건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일 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하고, 일정량의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며, 암, 고혈압, 당뇨, 심장병 예방을 위해서 특정 음식을 섭취하야 하고..... 숨 막히게 많다.
문제는 보통 우리가 이 많은 기준을 모두 충족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충족하지 못한 기준이 많다고 생각할 때, 자신이 건강하다고 확신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반대로 건강을 위한 기준이 10개가 아니라 3개만 있다면, 그 3개를 달성하기 쉽고 그래서 자신을 건강하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와 관련된 한 실험을 살펴보자Schwarz et al., 1991.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단호하게 행동한 사례를 쓰도록 하는데 한 집단에는 6개(쉬운 조건)를, 다른 집단에는 12개(어려운 조건)를 요구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단호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재미있게도, 쉬운 조건보다 어려운 조건의 참가자들이 자신을 덜 단호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어려운 조건의 참가자들이 12개 사례를 회상하는 것은 예상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해서, 자신을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건강에 대한 과도한 염려도 이러한 심리에서 설명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크고 동시에 건강하기 위한 기준이 많을 때, 사람들은 달성하지 못한 기준에 더 주의하기 쉽다. 같은 논리로,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달성하지 못한 이러한 기준에 집착해서 그것을 과대 지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달성하지 못한 기준이 실제로는 건강에 중요하지 않거나 거의 무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실적 낙관주의의 장점
건강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지나치면 비관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자신이 달성한 행위에 초점을 두는 것이 낙관주의라면, 그렇지 못한 행위에 초점을 두는 것은 비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인들이 스스로 수행하지 못한 건강행동에 집착해서 자신의 건강을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건강에 대한 꽤 비관적 시각이다. 그럼 실제 낙관주의자들이 더 건강할까, 아니면 비관주의자들이 더 건강할까?
이 질문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 결과들을 보면, 낙관주의자들이 특정 조건에서는 더 건강하다Peterson & Bossid, 2002. 즉 자신의 미래를 비현실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낙관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지만, 객관적 자료에 기초해서 자신의 건강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더 건강하다. 한국 사람들의 우수한 건강 지표를 고려할 때, 그들이 자신의 건강을 낙관적으로 봐도 그것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굳이 득이 없는 비관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건강 이상의 목표도 추구해야
건강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관심은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의 가치나 목표를 반영한다. 인간의 관심사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도 사회적 정의와 윤리, 공동체적 삶의 의미와 가치, 종교적이고 영적인 삶도 관심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이 온통 건강에 집중해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삶의 다른 가치나 목표에는 그만큼 소홀하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이 사회가 감각적인 수준의 욕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복 중에 건강 복이 제일”이라는 우리 속담처럼 건강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유기체로서 인간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건강 자체가 삶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그들에게 건강은 더 높은 이상과 가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건강은 궁극적 목표인가 아니면 수단인가? mind
<참고문헌>
- Peterson, C., & Bossid, L. M. (2002). Optimism and physical well-being. In E. C. Chang (Ed.), Optimism and pessimism: Implications for theory, research, and practice, (pp. 127-145). Washington, DC: APA.
- Schwarz, N., Bless, H., Strack, F., Klumpp, G., Rittenauer-Schatka, H., & Simons, A. (1991). Ease of retrieval as information: Another look at the availability heuristic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1(2), 195-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