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면 나타나는 본모습?
요즘 제 아내는 운전 연수 중입니다. 지난 주말 아내에게 운전 연습을 시켜주다가 (당연하게도) 싸웠습니다. 평소에는 잘 싸우지 않는 편인데도 이 날은 여지없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부부 사이에는 운전 연습 시켜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금기를 어긴 제 잘못이라 생각했습니다. 임상심리학자인 저는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관련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직업인 저로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심리학을 가르칠 때는 화가 나지 않는데, 왜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칠 때는 화가 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운전할 때의 사람을 봐야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점잖고 멀쩡하게 구는 사람들도 운전할 때는 사소한 것에도 욕을 심하게 하거나, 난폭 운전이나 보복 운전 등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말들이 생긴 거라 생각합니다. 즉, 이런 난폭한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니 조심하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몇몇의 실제로 난폭한 사람들만의 경험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운전할 때 모습이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다른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운전할 때 우리는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운전은 머리를 많이 쓰는 행위
운전은 생각 외로 인지 기능 소모가 큽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운전할 때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운전에 사용되는 인지 기능은 대부분 전두엽 기능입니다. 전두엽은 계획을 세우고 이에 맞게 실행하며,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운전할 때는 다양한 도로의 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바뀌는 도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일에도 빠르게 대처해야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운전할 때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쓰고 있습니다. 운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대부분의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는 것일 뿐, 운전은 기본적으로 전두엽 기능을 많이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우리의 인지 능력의 용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운전을 할 때, 운전 이외의 행위를 하기에는 우리의 인지 용량이 많이 모자랍니다.
아무리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한 손으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도, 남과 통화를 하며 한 쪽 손을 운전 이외의 것에 쓰는 행위가 인지 용량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추가적인 인지 기능이 필요한 돌발 상황에 대처를 잘 할 수 없게 되어 사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매일 가던 익숙한 길의 경우에는 동승자와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가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낯선 길을 갈 때는 갑자기 운전에 집중해야 하고 이야기를 지속하기 어려운 것도 낯선 길을 가는 것이 평소보다 인지 기능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활동을 같이 하면서 진행하기에는 인지 용량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화를 참는 것도 머리를 쓰는 일
우리가 화를 참을 때도 전두엽 기능이 필요합니다. 욱했음에도 이를 참고 부드럽게 얘기할 때도 전두엽의 인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남의 거친 운전에 보복운전을 했을 때 생기는 결과를 예측할 때도 전두엽 기능이 필요합니다. 욕을 하고 싶지만 일단 참아내는 능력에도 전두엽 기능이 투자됩니다. 그러나 운전을 할 때는 이미 기본적으로 전두엽 기능을 많이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두엽의 이런 ‘실행 능력executive function이나 ‘억제력inhibition’을 발휘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인지 용량이 많이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평소 보다 쉽게 화를 내거나, 위험한 보복 운전을 하거나, 곧 후회할 수 있는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의 본래 성격이 엄청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운전 연수를 시켜 주다가 화를 낸 것도 비슷합니다. 저는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평소보다 긴장돼 있었고, 아내의 운전을 포함한 주의 환경에 주의를 크게 기울이고 있었으며, 좋은 운전 선생이 되고 싶었고, 다른 부부와는 달리 운전 교습 도중 싸우지 않겠다는 목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치 채셨겠지만 이 모든 목표는 전두엽 인지 기능을 크게 소비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억제하고 갈 것에도, 크게 화를 내고 소리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 행동이 끼칠 결과에 대한 고려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5분만 지나도 땅을 치며 후회할 행동을 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용량의 한계가 문제
내가 왜 화를 냈는지 아내에게 이렇게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내 성격 탓이 아니라고. 내 전두엽 용량의 한계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뿐, 성격 문제는 아니라고. 능력이 모자란 것을 탓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면 아내의 화는 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때는 역시 아내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를 충분히 듣고, 이해하며, 공감한 후, 진실되게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라도 말씀드립니다. 제 적디 적은 전두엽 인지 용량의 한계 때문에 그런 것일 뿐, 제가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mind
글 자체의 주제도 좋지만 마지막 문단의 충분히 듣고 공감하고 진솔하게 대하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